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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정원열 안산국제교당 일원가족 2020년01월호

교당과 함께 쌓인 가족의 역사

정원열 안산국제교당 일원가족
취재. 이현경 기자

“교당에 혼자 오면 텅 빈 마음일 텐데, 가족들과 같이 와서 꽉 찬 마음이에요.”
“나도 형이랑 같은 생각이야!”
형 도현이와 동생 석현이는 가족과 함께 교당에 다녀 행복하다. 지난 송년법회 때도 부모님인 정기철·송현진(호적명 기철·소미) 씨와 나란히 앉아 법회를 봐, 할아버지 할머니인 정원열 법사·오신종(호적명 강길·동순) 씨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어느덧 3대를 이어온 가족의 발걸음이 ‘안산국제교당’ 역사로 쓰여지는 풍경이다.

3대를 이은 신심
“출장법회부터 시작해서, 이곳 교당 건물 벽돌 한 장 한 장까지 직접 다 날랐어요.” 정원열 법사의 교당 생활은 곧 교당의 역사와도 같다. 안산에 교당을 세우기 위해 이 지역 원불교인을 찾던 중 창립멤버로 적임인 그가 나타났던 것. 정 법사는 초창기 안산교당 교도회장을 맡으며, 특히 집(교당)을 건축할 때는 교당에서 살다시피 했다. 정 법사는 “지금도 교당 작은 일 하나 하나 제 손길이 닿아야 마음이 편해요. 교당 시설 관련 열쇠를 다 갖고 있을 정도죠.”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이 모르는 새 그가 교당 이곳저곳을 직접 고치며 손수 관리하니, 오늘날 30여 년이 넘은 교당건물이 여전히 굳건한 이유다.
그러나 그가 원불교를 처음 알게 된 건 훨씬 이전의 일이다. 신흥이 고향이던 신심 깊은 어머니 덕에 다섯 살 때부터 ‘불법연구회’를 알았던 것. 그럼에도 어머니는 “교당에 같이 가자.”는 말이 없으셨다. 결국 그는 학생 시절에 직접 교당을 찾았고, 동네 학생들을 교당으로 모아 군남교당 학생회까지 조직했다. 이후 전무출신을 서원하며 1년간 수계농원에서 생활하다가 아버지의 병환으로 인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가족교화의 문이 열린 것이다.
결혼을 통해 정 법사의 아내와 며느리가 자연스레 입교를 하였고, 그의 아들과 손자들은 법명을 호적명으로 삼으며 자연스레 원불교를 받아들였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손을 붙잡고 교당에 다녔고, 고모이신 정수덕 교무님도 계셨죠.” 정 법사의 아들 기철 씨는 유년 시절에 교당의 크고 작은 행사는 물론이요, 학생회장에 청년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의 어머니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사춘기라는 게 없었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착했던 이유가 어찌 보면 여기에 있었을 지도. 기철 씨의 아내이자 서예 작가인 현진 씨도 “학생회장 출신인 아버지 아래, 이제 아들이 어린이회장을 하고 있다.”며 웃어 보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은 손자들은 “교무님과 교당 식구들을 만나는 게 너~무 좋아요!”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넓어진 가족 범위
교당을 가까이하는 가족들 삶 속에는 교법이 묻어난다.
“새벽이면 늘 기도하고, 수시로 교전 읽기와 사경을 해요.” 새벽 다섯 시면 정 법사의 목탁 소리가 아파트를 울려 관리실에서 연락을 받은 것도 여러 번. 그러자 신종 씨는 남편을 위해 손수 뜨개질을 해서 목탁을 감싸주었다. 정 법사가 안산시립노인전문병원에서 10여 년간 관리소장으로 재직했던 시절에는, 병원 법당에서 마음껏 기도 생활을 펼치기도 했었다.
밤낮없는 정 법사의 공부는 특히 잡념을 없애는 독경에 집중되는데, 이것은 일체 다른 생각 없이 공부 길을 걷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일원상서원문, 반야심경, 참회문, 금강경, 휴휴암 좌선문을 다 외웠던 때만큼이나 꾸준히 공부하고, 오늘처럼 내 걸음으로 교당을 계속 살피고 오가고 싶어요.” 그는 법사가 되었을 때도 마음에 요란함 없이, 매일 공부하는 일상에 집중했다.
솔선수범하는 부모님처럼 기철 씨 또한 공무원으로서 녹지 업무에 20여 년간 활약 중이다. 주말에도 혹 발생할 일에 대비하여 주차장 바깥쪽에 주차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법회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업무를 하며 여러 의견을 관철할 때, 상대방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해요.”
아내 현진 씨는 교당 식구들을 만나며 가족의 범위가 넓어졌다.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 ‘따듯한 포옹’에 큰 힘을 얻은 것이다. 어느덧 가족들은 새해 둥근 해와 둥근 일원상을 보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