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영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지난 2월 2일 원광대학교 숭산기념관에서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학술대회가 ‘원불교학의 미래’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1부 기조강연으로는 이성전 원로교무(원광대 명예교수)의 ‘정신개벽 시대와 원불교학’, 성해영 교수(서울대)의 ‘탈종교 시대와 원불교학의 역할’, 2부 주제발표로는 고시용 교수의 ‘원불교학 체계수립과 발전 과제’, 장진영 교수의 ‘원불교 마음공부의 현황과 과제’, 임전옥 교수의 ‘원불교 단전주선 장기 수행 경험에 관한 사례’, 염승준 교수의 ‘원불교 기록유산과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 정신의 회복:근대성과 원불교 교서 영역(英譯) 문제를 중심으로’가 있었다. 3부 자유발표는 6명의 발표자들이 원불교학 확장에 관련한 다양한 주제로 꾸며졌다. 

원불교학 5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원불교학의 정체성과 미래비전을 끊임없이 찾아가고자 하는 열정 가득한 현장이었다. 

이에 <원광> 3월호에서는 서울대 종교학과 성해영 교수의 기조강연 ‘탈종교 시대와 원불교학의 역할’을 요약, 발췌하여 ‘원불교학’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 방향성 고민에 함께 해 보고자 한다.   

 


 

I. 들어가는 말: 새로운 시대와 종교

이 글은 ‘원불교학’의 역할을 탈종교 시대라는 주제와 연결해 살펴보려는 종교학자의 시도이다. 필자가 받은 첫인상은 원불교학의 현재 상황이 현대 학문 분과의 하나인 ‘비교종교학(the comparative study of religion)’이 마주하고 있는 국면과 여러모로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세속화와 탈종교 시대의 급속한 전개, 그리고 한국 대학의 위기는 원불교학과 종교학 모두에게 자신의 역할과 의미를 근본적으로 되묻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원불교학의 정체성과 미래 비전에 대한 고민을 외부자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종교학 전공자이니만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고 믿는다. 또 개인의 종교 체험에 주목하는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를 전공한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소태산의 ‘대각(大覺)’ 체험은 원불교의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 체험은 동시대인들이 삶의 의미를 찾고 구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와 공동체의 바람직한 비전으로 확장되었다. 나아가 서로 다른 종교를 통합하는 근본적인 기반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필자의 세부 전공과 친근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대종사가 설파한 ‘불변의 것’과 ‘변화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통찰(『대종경』 제15 부촉품, 16장)은 원불교학은 물론 종교학과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에도 매우 큰 통찰을 준다. 

 

 II. 종교학자가 바라본 원불교학

원불교학계가 외부자에게 주는 가장 뚜렷한 인상은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모습이다. 이미 우리 사회의 저변 문화로 자리 잡은 불교, 기독교는 차치하더라도, 원불교라는 신종교를 연구 대상으로 한 학문적 연구는 ‘천도교’나 기타 자생 종교에 비교할 수 없는 성취를 보여준다. 원광대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을 기반으로 다양한 학문적 노력과 활동이 그 실례이다.1)  “원불교가 전개한 사업들 가운데 가장 괄목할 만한 분야는 역시 학술 및 교육사업이다”라는 종교학자 윤이흠의 평가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2)

원불교학은 “유불선 삼교와 관련된 기초교학으로부터 응용교학에 이르기까지 교조 소태산과 일원상 진리, 원불교 교리, 사상, 문화, 역사, 인물, 신앙, 수행 등 원불교적인 주제나 원불교 자료로 분류할 수 있는 모든 범주의 학문을 대상으로 전문적이고 학술적이며 수행 실천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3) 이 점에서 원불교학은 호교론적 관점에 기반하지만, 동시에 객관적 학문의 특성을 갖추려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 이 사실은 원불교가 대종사의 대각이라는 개인적 종교 체험에서 출발하지만, 원불교학이 그 체험과 가르침을 보편적 언어로 표현하려는 시도라는 점을 보여준다. 즉, ‘깨달음과 언어’, ‘체험과 이성적 이해’ 사이의 긴장이 원불교학에서는 ‘체험의 종교’를 어떻게 ‘문자에 의한 교리의 체계 과정’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포착되고 있다. 달리 말해 “‘깨달음의 세계’와 ‘언어의 세계’ 간의 긴장”이기도 하다.4)

그런데 원불교학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려는 국면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변화가 최근 새롭게 등장했다. 바로 탈종교 시대의 본격적인 전개이다. 무종교인이 과반을 넘는 현실에서 종교의 의미와 역할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되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종교가 우리에게 필요한가’라는 물음을 비교종교학은 물론 원불교에 뿌리를 둔 원불교학 역시 피할 수 없게 되었다.

 

III. 21세기의 탈종교 현상과 ‘개인’의 부각

현대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는 중이다. 종교 역시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구 사회와 기독교의 관계가 보여주듯 종교적 세계관이 과거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잃게 된 것이다.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모든 영역이 종교적 세계관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탈종교 현상’이 세속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지적된다.

이제 대부분 국가에서 종교는 개인의 선택 대상이 되었다. 퓨 리서치(Pew Research)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의 ‘무종교인(無宗敎人)’ 혹은 ‘비종교인’은 2007년 11.77%에서, 불과 8년 후인 2015년에는 16%로 급증했다. 이 수치는 종교를 삶의 핵심적 가치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증가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종교인은 ‘종교가 없는 사람’을 뜻한다. 영어로 ‘non-religious people’이라고 표기되다가 ‘비종교적’이라는 뉘앙스로 인해, 최근에는 ‘가입되어 있지 않은(the unaffiliated)’이라는 개념이 선호된다. 조직의 소속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the religiously unaffiliated’, 즉 종교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이들을 의미한다.

무종교인의 종교에 대한 태도는 무관심에서부터, 공감적 태도, 확고한 부정에 이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무종교인은 종교 조직에 소속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다. 다종교 사회인 우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45%가 무종교인이었지만, 불과 10년 후인 2015년에는 56%로 늘었다. 한국 갤럽 역시 무종교인의 비율이 2021년에 60%까지 늘어났음을 보여준다.5) 

갤럽 조사는 무종교인의 흥미로운 특성을 증언한다. 무엇보다 나이가 낮을수록 무종교인의 비율이 높았다. 젊은 층(19~29세)의 무종교인 비율은 2021년에 78%였지만, 60대 이상의 무종교인 비율은 41%에 그쳤다. 또 종교를 갖지 않는 이유 역시 ‘종교에 대한 반발’, ‘시간적 여유가 없다’에서 ‘종교에 무관심’한 것으로 현저하게 달라졌다. 

이런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종교의 쇠퇴, 나아가 소멸까지도 예견한다. 종교가 과거의 영향력을 잃는 것에 멈추지 않고 사라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종교’라는 단어가 지칭했던 현상들이 아예 사라질까?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질문을 야기한 세속화를 필두로 한 최근의 사회 변화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또 세속화 외에도 ‘경제적 풍요, 교육 수준의 향상, 정치적 민주화’ 등의 측면도 꼼꼼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들은 유례없는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또 경제적 성장 못지않게 중요한 변화는 현대인의 교육 수준이 과거에 비해 경이로울 정도로 높아졌다. 경제적 풍요와 교육 수준의 향상은 최종적으로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경제적 풍요, 높은 교육 수준, 민주주의 제도의 확산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강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요컨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자기 삶을 결정하는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변화가 20세기 이후에 일어났다는 점이 놀랍다.

이렇게 현대 들어 개인은 자기 삶을 결정할 자유와 권리를 지닌 주체로 떠올랐다. 개인의 주체성이 존중받는 것은 여러모로 긍정적이지만, 변화의 속도와 폭으로 인해 개인의 불안과 스트레스 역시 우려할 정도로 커졌다. 선택의 권리와 자유가 확대되었지만, 개인이 그 결과를 전적으로 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책임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어서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심지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개념마저 만들어 냈다.6)  

종교 역시 이런 변화를 전면적으로 겪는 중이다. 무엇보다 종교 전통은 세속화라는 새로운 변화 외에도 과거와 현저하게 위상이 달라진 ‘개인’을 마주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확산이 가져온 개인의 권리 의식 향상은 권위에 대한 개인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또 높아진 교육 수준과 경제적 여유는 개인이 한층 더 자신의 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든 것이다. 나아가 경제적 풍요로 인해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는 일은 현대인에게 더 이상 삶의 주된 목표가 아니다. 잘 교육받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개인은 자기 삶의 의미를 직접 찾고 이를 구현하려 시도하고 있다. 사회가 개인의 주체성을 존중하며, 구성원들이 이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최초의 상황이 된 것이다.

 

IV. ‘자기’를 찾으려는 ‘개인’의 (종교적) 열망

세속화와 탈종교 현상은 피할 수 없고, 이로 인한 무종교인의 증가 역시 전 지구적인 추세로 보인다. 종교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의 출현은 종교가 마주한 위기를 뚜렷하게 증언하는데, 탈종교의 극단적인 심화는 곧 종교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종교가 위축되면, 인간의 ‘종교적’ 열망도 함께 사라질까? 여기에는 반론도 적지 않다. 세속화된 사회에서도 여전히 ‘인간은 종교적이다’라는 주장이다. 이 입장에 선 이들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연을 비롯해 자신보다 더 큰 차원을 인식하고, 그것과의 연결을 끝없이 도모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유한성을 실감할수록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넘어선 무엇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의 표현에 따르자면, 인간은 삶과 죽음의 이면에 자리한 초월적 차원에 대한 ‘궁극적 관심’을 버리기 어렵다.7)  

실제로 종교인이 급속하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개인들이 제도화된 종교 영역 밖에서 혹은 종교와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기 삶의 깊은 의미를 직접 탐구하려는 움직임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불교 사찰에서 진행되는 ‘템플스테이(temple stay)’와 스페인의 가톨릭 성지인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템플스테이는 단기간 사찰에 머물면서 명상과 같은 불교 수행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려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고즈넉한 사찰에서 불교로의 개종이 아니라, 각자의 몸과 마음을 깊이 치유하려 시도한다. 불교 신도가 해마다 줄어드는 상황에서 뜻밖에도 비불교인들이 사찰에서 불교 수행을 체험하려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으로 이어지는 긴 순례길을 현대인들은 고생스럽게 걷고 있다. 종교적 배경과 무관하게, 그것도 그렇게 먼 곳까지 엄청난 수고를 자초해서 말이다.

왜 세속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불교 사찰과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종교적’ 공간을 찾고 있을까? 통상 이들의 활동은 자기 존재의 깊은 차원을 발견함으로써 심신의 더 큰 위안을 찾겠다는 ‘힐링(healing)’의 시도로 해석된다. 종교적 장소라는 점에서 종교 전통이 오랫동안 제공해 준 치유와 위안이 힐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달리 말해 신자들이 과거에 종교에서 찾았던 심신의 위안이 최근 들어 힐링이라는 단어로 바뀐 것이다. 그러니 이런 활동들을 제도화된 종교의 테두리 밖에서 ‘종교적인’ 그 무엇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아도 적절하지 않을까? 

유사한 사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서울대의 교양과목으로 개설된 ‘명상과 수행’ 수업 역시 이런 흐름에 연결된다. 흔치 않은 제목을 가진 이 수업은 매 학기 100여 명 내외의 학생들이 수강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명상은 대표적인 종교적 수행법이지만, 수강생의 80% 내외는 무종교인이다. 수강의 동기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극복해 자기 삶을 더 잘 꾸리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템플스테이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명상이 개인의 심리적 안녕을 제공하는 유용한 방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처럼 제도 종교 밖에서 인간의 종교성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추구되는 현상은 최근 ‘영성(spirituality)’이라는 개념으로 축약된다.8)  비슷한 맥락에서 ‘무종교의 종교’,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9) ‘종교를 넘어선 종교’와10) 같은 역설적인 표현들 역시 이런 변화를 묘사한다. 물론 참여자들의 무의식적인 모색 노력을 ‘종교적’이라 부를 수 있는가의 논란은 여전하겠지만 말이다.

 

V. 맺음말: 탈종교 시대의 종교학과 원불교학

이제 종교학과 원불교학은 세속화를 필두로 한 최근의 탈종교 현상을 전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알던 종교가 미래에 사라진다면 종교학과 원불교학 역시 그 미래가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탈종교 현상과 함께 ‘주체적인 개인’이 부상하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종교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 변화를 더욱 꼼꼼하게 살피고 반영해야만 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수행 전통으로서의 종교의 역할’, ‘노년층의 증가에 수반되는 사회적 수요’, ‘종교의 사회 통합 기능 회복’ 등을 제안할 수 있다.

‘템플스테이’, ‘명상과 수행 수업’, ‘순례길 여행’과 같은 현상은 수행 전통으로서 종교가 개인의 정체성을 확장하고, 심리적 위안과 힐링을 주어야 함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동시에 우리 사회의 급격한 노령화 추세는 과거와 다른 종교의 새로운 역할을 다각적으로 요청한다. 특히 고독사 등 노년층이 어떻게 죽음과 죽음 이후를 수용하는가라는 물음은 향후 복지를 포함해 한국 사회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주제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종교의 사회 통합 기능 회복 역시 절실하다.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갈등 지수가 높다.11) 세대를 필두로 종교, 성별, 남북, 계층, 정치적 입장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갈등과 긴장이 넘쳐난다. 그렇지만 급속한 변화로 인해 개인과 공동체를 지탱시켜 온 전통적 가치관은 무너졌고, 사회 통합에 꼭 필요한 새로운 가치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탓에 사회는 파편화된 개인들로 가득하다.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 지수가 이를 보여준다.12) 이런 상황에서 종교는 개인에게 삶의 의미를 제공하고, 나아가 공동체를 통합하는 역할을 다시금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종교는 모든 변화의 근간으로 개인의 교육 수준과 권리 의식 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사실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화 및 선교를 포함해 교단의 운영 방식이 과거와는 전면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출가자와 재가 신도, 종교 지도자와 평신도의 관계와 종단 내부에서의 역할 역시 전면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처럼 종교의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는 이른바 ‘후천개벽’과 같은 패러다임의 전적인 변화를 의미한다.13)

원불교는 어떤 종교보다도 시대 변화에 예민하다. 즉,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적절한 응답 정신이야말로 원불교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이다. 물질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시대에 우리의 정신이 개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원불교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에 존재하는 긴장과 갈등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이를 조화롭게 통합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영육쌍전, 내외겸전, 내외 문명의 병진, 이사병행, 무처선, 사사불공’과 같은 표현은 원불교의 시대 변화에 대한 예민성과 함께 통합적인 정신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원불교는 여타 종교와 달리 일상과 수행, 정신과 물질 등 이원성을 아우르는 종교적 해답을 제시하려 노력했다. 이 점에서 소태산 대종사는 ‘무종교의 종교, 종교를 넘어선 종교, 종교 이후의 종교’와 같은 역설적 표현에 담긴 변화의 요구를 한발 앞서 포착했다고 여겨진다. 다른 한편으로 탈종교와 세속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종교 간 만남은 물론 종교인과 무종교인이 공존해야 하는 시점에 종교 통합의 가르침은 주목할 만하다. ‘유불선 삼교를 통합하여 일원화’하자는 것이나, ‘세계의 모든 종교의 교지도 이를 두루 통합 활용하여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자’가 되자는 대종사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핵심은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에서 종교학과 원불교학이 종교와 원불교에 얼마나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니 ‘비판적 교학 연구에 대한 교단의 인식 제고 필요성’을 강조한 의견은 필히 경청되어야만 한다.14) 원불교학은 물론 원불교 역시 지금까지의 자기 규정에서 벗어나 더 넓은 정체성을 모색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원불교의 저변 확대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 종교가 사라지면 종교학이 그 의미를 확보하기 어렵듯이, ‘원불교’라는 뿌리가 없고서는 ‘원불교학’이라는 줄기와 가지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컨대 관건은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다. 원불교는 우리 사회, 그리고 세계화된 지구촌이 필요로 물음에 적절한 종교적 해답을 제공해야 한다. “시대와 인식을 따라 실생활에 맞는 법을 취하면서도 한편에 기울어지지 않는 초역사적인 본질에 대한 출발이 목표점”이라는 언급은 시공을 넘어선 보편적인 진리를 시공에 부합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지혜를 강조한다.15)소태산 대종사의 삶과 가르침처럼 ‘본질’의 ‘유연한 활용’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1) 양은용, 「원불교 학술활동의 현황과 과제: 원불교사상연구원의 학술·연구활동을 중심으로」,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47집(2011), 111-160쪽, 양은용, 「원불교학 연구의 회고와 전망」,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제67집(2016), 251-273쪽.  

2) 윤이흠, 「민족종교」, 『사회변동과 한국의 종교』,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7), 202쪽.

3) 김성장, 「원불교학의 범주와 개념 연구」, 『원불교 사상과 종교문화』 45집(2010), 223-252쪽.

4) 이현승, 「원기 100년대와 원불교학의 정체성 문제」, 『원불교 사상과 종교문화』 58집(2013), 1-38쪽.  

5) “무종교인 비율 갈수록 높아진다” (『기독신문』. 2021.6.29.)  

6)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서울: 휴머니스트, 2020), 김석희 옮김.  

7) 폴 틸리히, 『믿음의 역동성』(Dynamics of Faith) (서울: 그루터기하우스, 2010), 최규택 옮김  

8) 성해영, 「‘무종교의 종교(Religion of no Religion)’ 개념과 새로운 종교성: 세속적 신비주의와 심층심리학의 만남을 중심으로」, 『종교와 문화』 32집(2017), 1-28쪽.  

9) Sven Erlandson, Spiritual but Not Religious: A Call to Religious Revolution in America, (New York: Iuniverse Inc, 2000).

10) 최준식, 『종교를 넘어선 종교』 (서울: 사계절, 2005).

11) “증오의 말들이 정치테러 만들었다...갈등공화국 오명 속히 벗어야 한다” (『국민일보』. 2024.1.8.) 우리 사회의 갈등지수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지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2018년을 100이라는 기준으로 삼았을 때, 지난 2022년의 한국 사회 갈등지수는 178.4로 불과 몇 년 사이에 무려 2배 가까이 치솟았다.”  

12) “부동의 1위 자살률에 우울증 환자만 100만 명, 정신과 구인난까지 겹쳤다”(『조선비즈』. 2023.12.5.) 기사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2명으로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이다.

13) 한류 문화의 세계적 확산 역시 천도교, 원불교가 제시한 ‘후천개벽’의 단적인 사례일 가능성이 크다.

14) 김성장, 「원불교학 연구의 당면 과제」,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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