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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길리 이야기 글. 이건직 교무도통리 주변을 크게 보면 좌포리와 좌산리, 외궁리가 있다. 좌포리는 물길로 도통리를 에워싸고, 좌산리는 산으로 둘러싸서 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외궁리는 활목이라 하여 활로써 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준다.이곳을 다 거치면 봉황산(鳳凰山)과 좌포(左浦)마을을 마주한다. 바로 대산 종사의 출생지다. 이 마을의 유래는 이렇다. 조선시대 원좌마을에 살던 남원 양씨 가문은 승려가 마을에 방문하면 매질을 하거나 못살게 굴었다. 어느 날 노승 역시 매질을 당했는데 그 노승은 “마을 뒤로 흐르는 물
만덕산성지 이야기
이건직
2022.03.0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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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리 이야기글. 이건직 교무전북 진안군 성수면(聖壽面)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위로는 중길리, 좌포리, 용포리와 아래로는 도통리, 외궁리, 신기리, 구산리 등 7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만덕산성지는 중길리(中吉里)에, 대산 종사 탄생지는 도통리(道通里)에 인접해 있으며 오래 전부터 이 두 지역에는 의미있는 불교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도통리는 내동산(887m)에서부터 시작인데 만덕산(762m)을 향해서 마을 들이 순서대로 형성되어 있다. 도통리의 ‘도통’의 유래는 ‘길이 사방으로 잘 트여 있다’ 하여 부르
만덕산성지 이야기
이건직
2022.01.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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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산 주변이곳저곳의 이야기글. 이건직 교무들방죽(일명 잉키방죽) 이야기최도화(삼타원)는 곤궁한 가정 형편과 어머니의 건강문제로 걱정이 많았다. 이러다가는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어머니까지 여의게 될까 두려워 어머니의 권유로 13세에 집안의 머슴(성옥)과 결혼한다. 그러나 “도인을 만나 꿈을 이룰까?” 하는 생각에 가정생활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세상을 비관했다. 28세에 잉키방죽에 몸을 날려 자살을 시도했으나, 불연(佛緣)이 깊은 사람이었는지 지나가던 비구니 정인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최도화가 살던 집(상달마을회관) 이야기
만덕산성지 이야기
이건직
2022.01.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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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산 미륵사와장군바위 이야기글. 이건직 교무정산 종사가 기거한 미륵사미륵사는 만덕산 북쪽 8부 능선에 위치해 있으며 완주군 소양면에 속한다. 미륵사 가는 길은 만덕산훈련원에서 오두재로 넘어 갈 수 있으며, 초선지에서는 능선을 타고 정상에 올라 북쪽 골짜기를 따라 2km쯤 내려가면 된다. 백제 위덕왕 재임 시절(554~598) 지명(知命)법사가 수행하기 위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본래 이름은 금강암이었다가 뒤에 미륵사로 바뀌었다는 말이 있지만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설화에 의하면 조선시대 진묵대사가 주석할 당시 도술로
만덕산성지 이야기
이건직
2021.12.0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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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 이야기 글. 이건직 교무진구사지 석등에서 만난 정산 종사와 신옹 스님은 관촌 사선대의 오원천을 지나 약 10km 떨어진 관촌면 상월리 신흥사 부근에 이르렀다.이때 신옹 스님은 정산 종사에게 “저 신흥사에 들러 저녁공양을 받고 갑시다. 신흥사는 미륵사와 가까운 절이기에 저도 가끔 들르며 주지 스님과도 막역하게 지내고 있어 저녁공양을 청하면 반갑게 해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정산 종사는 신옹 스님에게 신흥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절로 향했고, 그곳에서 신흥사 주지 스님과
만덕산성지 이야기
이건직
2021.10.2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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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구사지 석등 이야기 글. 이건직 교무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6년(1921) 9월에 정산 종사를 불러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가 보아라. 그러나 전주는 들르지 말라”고 하였다. 이에 정산 종사는 스승의 명을 받들어 고창 고부를 지나 정읍 황토재에 이르렀고, 이곳에서 동학농민운동 때 희생된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한 후 계속해서 걸었다.신태인을 지나 원평에서 금산사를 거쳐 남동쪽으로 가면 임실군 신평면이 나온다. 스승인 소태산 대종사가 전주는 들르지 말라고 하였기에 정
만덕산성지 이야기
이건직
2021.10.1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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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타원 최도화 이야기 글. 이건직 교무삼타원 최도화 선진은 교단 초창기 3대 여걸 중 한 분으로 진안지방 교화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1883년 전북 진안군 성수면 상길리에서 일곱 자녀 중 여섯 째로 태어난 삼타원(본명 인경)은 7세 때 부친을 여의고, 9세에 을 읽고 도인이 되기를 바랐다.13세에 결혼하여 슬하에 남매가 있었으나 삶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 28세 때 세상을 비관하여 연못에 몸을 던졌는데, 다행히 곁을 지나가던 여승이 뛰어들어 목숨을 건졌다. 삼타원은 자신을 살려준 비구니로부터 법문
만덕산성지 이야기
이건직
2021.09.0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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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혈 냉천(風穴 冷泉) 글. 이건직 교무풍혈 냉천은 진안군 성수면 양화(陽化)마을 대두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풍혈은 바람이 나오는 동굴이고 냉천은 찬물이 솟는 샘인데, 서로 약 20m 거리에 있다. 풍혈은 한여름에도 얼음이 엉겨붙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바위틈 사이로 섭씨 4도의 찬바람이 스며나와 20여 평 되는 동굴 안이 항상 섭씨 5~6도로 유지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는 한천 공장과 잠종(蠶種, 누에나방의 알) 저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냉천은 석간수로서 사시사철 변함없이 섭씨 3도의 찬물이 솟아난다. 한 여름철이라
만덕산성지 이야기
이건직
2021.08.0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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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터 글. 이건직 교무만덕산 초선지는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 만덕산의 8부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초선을 났던 산제당은 만덕암이라 부르는데, 비단장수 최도화가 비단을 팔러 김승지(대산 종사의 큰 증조할아버지) 집에 갔다가 부종병으로 고생하는 며느리(이현공)를 위해 치성을 드리면 낫는다고 권하여 1910년 경에 지어진 집이다.만덕암은 산신령 탱화를 모신 불단 1칸, 방 1칸, 부엌이 있는 기와집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기와의 잔재는 지금도 남아 있다.최도화는 만덕산 너머에 있
만덕산성지 이야기
이건직
2021.07.06 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