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우제훈 교무 때때로 전화기가 울린다. 모르는 번호를 받아보면 대부분 광고 전화이기도 하지만, 나는 늘 모르는 번호에 마음이 설렌다. 혹여 그 누군가가 아닐는지.오늘도 전화가 울린다. 그 누군가이다. 한 번은 스님이 되고 싶다는 고등학생의 전화를 받고, 반가운 마음에 약속 시간을 잡고 교당에서 기다리니 오지 않는다. 뜬구름이다. 또 어느 날은 교회만 다니던 조카가 갑자기 자신은 절에 다니는 사람이니 절에 가고 싶다고 난리를 친다는 전화도 있었다. 정토의 도움으로 병원에 먼저 가보고 나서 다시 연락하자고 했지만 역시나 연락은 없었
글. 우제훈 교무 프레즈노는 캘리포니아의 중간 지역에 동쪽으로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세콰이어·킹스캐년 국립공원이 있는 경치 좋고 한적한 도시이다. 물론 인구는 약 70만 명이나 되는 도시이다. 그곳에 멋지게 지어진 프레즈노교당에서 교화를 하고 있다. 30여 명의 현지인 예비교도들이 있건만 다 모인 적도, 또한 서로서로 얼굴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늘도 새로운 현지인과 함께 명상 법회를 보게 된다. 방석을 깔고 앉아, 염불 15분에 좌선 30분으로 이어지는 명상을 현지인 예비교도들은 곧잘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교 후, 문답감정
글. 이명정 교무 첫 교당 교화의 설렘의 시간이 흘러 4년째 접어들었다. 이제 어느 정도 교당 교화에 익숙해지고 특별한 노력 없이도 많은 부분들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이 들 즈음에, 한 선배 교무를 만나게 되었다. 그 선배는 내게 “이제는 뭐든 해봐야 할 때지. 배우고 준비할 때는 아니다”는 말을 해주었다. 작년부터 미주동부교구 청교협 회장을 맡게 되고, 또 교도들과 공부하면서 문답감정을 해야 하는 상황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외부 활동 기회가 많이 생기고 여러 가지로 교화 선상에서 뭔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글. 이명정 교무 초등학교 때 해마다 새 학기가 되면 아버지께서 교과서 표지를 달력으로 싸 주셨다. 새 학기에 새 마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아버지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새 공책에 새 연필, 새로운 학용품을 준비하는데 굉장히 설레었다. 그 작은 설렘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살아오다가 이렇게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어렸을 때 느꼈던 그 설렘이 점점 사라져 가고, 기관근무(원달마 센터)만 11년째 해 오던 내 삶에 다시금 그 설렘이 찾아왔다. 교당 교화! 코로나19가 한창인 시절이라 부담스럽고 힘든 시작이었다. 하지만
글. 김계원 교무 안녕하세요! 어느덧 원기 108년 12월입니다.지난 3월 1일 핀란드 반타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의 서막을 알리는 태양을 마주했습니다. 태양은 밝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핀란드는 한겨울 자락이어서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었습니다. 공항에서 버스 정류장을 향하며 느꼈던 핀란드의 차가운 기온과 눈부신 설경이 저의 개척교화 서원에 신선한 긴장을 불어넣었습니다. 긴 호흡을 내쉰 후 마음을 다잡고 선교사무소가 있는 탐페레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9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이곳
탐페레세종학당 행사에 참여하는 분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이제는 감사를 넘어 존경스럽다. 핀란드 개척교당에서 운영하는 탐페레세종학당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하반기 ‘세종문화아카데미’ 사업이다. 이 프로그램 구성 콘텐츠는 국악, 한식, 한복, 한글, 그리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 수업 등이다. 수업 준비를 하는 중 현지인 운영요원이 말했다. “교무님 강의 들으러 80세 넘은 할머니가 2시간 거리인 헬싱키에서 오신답니다.”강좌를 개설하자마자 인원을 초과했다. 다시 한번 한국 문화에 대한 핀란드 사람들의 관심에 감사했다. 또 우리 K-콘텐츠
글. 김계원 교무 사시순환에 따라 여름휴가와 방학을 보낸 핀란드 사람들도 일상 복귀에 분주하다. 핀란드 개척사무소도 탐페레 세종학당의 가을 학기 오픈을 위해 여러 가지를 점검하는 와중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바로 한국의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핀란드 전역의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소식이다. ‘K-POP협의회’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출범시킨 문화예술 법인이다. 협회에서 가을 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KPOP-Concert’를 개최한다니, 인구가 적은 핀란드에서, 게다가 미래 문화를 선도할 젊은이
글. 김계원 교무 핀란드에 입국한 지 어느덧 6개월이 되었다.3월 1일, 처음 핀란드에 입국해서 봄의 서막을 알리는 늦겨울을 마주했었다. 핀란드 헬싱키공항 아침 7시, 온통 눈으로 덮인 대지와, 오랜 시간 이곳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던 태양이 눈부시게 밝았다. 차가운 대지와 뜨거운 태양이 핀란드의 첫인상이었다. 5월 초까지 눈이 내리고 중순이 되어서야 서서히 ‘봄 다운 봄’이 온 듯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해가 지지 않는다. 지금도 대낮 같은 밤 11시다. 이곳 여름은 정말 특별한 의미다. 왜들 저렇게 태양을 바라보고 ‘
해외 개척교화 생활을 할 때 가장 의지가 되는 것은 역시 역대 스승님들의 정신과 경륜이다. 하루하루 이국땅에서 교역자로서의 마음가짐을 챙기며 생활하고, 무슨 사업을 하던지 공도 사업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지침은 바로 ‘스승님의 경륜’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오지에 발을 디딜 때 지도(구글맵 하나면 두려움이 사라지니)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전무출신으로서 해외 개척교화를 하며 스스로의 정신을 온전히 지켜나가려면 스승님의 경륜과 지도가 절실히 필요했다. 전산 종법사님의 유럽교구 순방과 핀란드 교화개척지 방문은 내게 ‘가뭄의 단비’
글. 김계원 교무 올해는 대한민국과 핀란드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해다. 원불교 핀란드 개척사무소는 한·핀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세종문화아카데미(King Sejong Culture Academy)’ 사업과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한식진흥원에서 지원하는 ‘한식 밀키트(K-Mealkit)’ 지원 사업에 응모하여 두 사업 모두 선정이 됐다. 그리고 영산선학대학교와 원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한복을 모아 보내주니 핀란드 개척 선교사무소(탐페레세종학당, KSI in Tampere)에서도 공식적인
글. 김계원 교무 북유럽 핀란드 개척교화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핀란드 최초 원불교 교도인 ‘원주(본명 Kirsi Mustalahti)’교도 와의 인연 때문이다.원주 교도는 2012년 우리나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한 서울아트마켓(PAMS)의 프로그램 ‘한-핀 커넥션(KAMS KF Connection)’ 에서 핀란드 측 주요 인사로 우리나라를 처음 찾았다. 그리고 그 당시 연극배우 및 국제 공연기획 일을 하고 있던 내가 원주 교도의 한국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되면서 원불교와 본격적인 인연으로 발전했다. 원주 교
글. 백시우 교무 대중교통이 열악한 라오스에서 오토바이는 요긴한 교통수단이다.월 100달러도 못 버는 이들이 태반이라 모터싸이클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행여나 남의 손을 탈세라 주차장에 애지중지 모셔둔다. 비포장 길 자욱한 먼지를 가르며 학교에 다다른 학생들은 틈만 나면 수돗가에서 애마를 씻는다. 이태 전 개교했을 때는 학교 담이 허술했다. 드문드문 기둥을 세우고 철조망을 쳤을 뿐이었다. 도난 우려가 끊이지 않아 부랴부랴 속 빈 시멘트 블록으로 벽을 쌓고 주차장 지붕을 담장까지 이어 붙여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게 했다. 그럼에
글. 백시우 교무 “저는 대학행정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걸요. 경력도 없고요. 그런 저에게 왜 라오스 삼동백천기술직업학교 행을 권하시나요?”“백 교무가 적임자인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야.”문외한인 까닭에 적격이라니 아리송했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서 책을 주문했다.2021년 5월 15일 밤에 라오스 시엥쾅주 폰사반에 도착했다. 학교설립허가증에 붙은 인지 영수증에 적힌 날짜가 4월 30일이다. 완공된 지 얼마 안 된 건물이 번듯했을 뿐 교수도 학생도 사무용품도 기숙사 옷장마저도 없었다.
글. 백시우 교무 구름 한 점 없는 건기의 하늘은 한적하다. 이따금 창공을 가르는 새가 있어 시선을 앗는다. 누런 먼지를 일으키며 메마른 대지 위를 달리는 베이지 빛 차량 뒷좌석에 카키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두 줄 세로로 빼곡하게 마주 앉았다. 차 겉에 성조기와 MAG(The Mines Advisory Group)로고가 선명하다.오가며 자주 마주치는 그들은 불발탄과 지뢰를 제거한다. 지뢰고문단 은 2021년 한 해 동안에만 20,342개의 폭발물을 처리해서 10,361,034㎡의 강토가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월남전 당시 북베트남과
글. 백시우 교무법당 가는 길. 새날 첫걸음을 뗀다. 달 밝은 새벽, 도량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두꺼비 한 마리에 한눈판 찰라 바스러지는 소리에 놀라 발밑을 살핀다. 달팽이를 밟았다. 나직이 ‘나무아미타불’ 읊조리며 가던 길을 마저 재촉했다.아침 공양을 들 때 햇살 들이치는 창문 너머로 라오스 고깔모자 ‘꿉’을 쓴 두 아낙이 작대기로 소 떼를 몰며 교당 곁을 지난다. 바람에 실린 워낭소리가 풍경소리를 닮아 고즈넉한 정취를 자아낸다.그들은 무리를 지어 신선한 풀을 찾아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가 차가 오나마나 아랑곳없이 도로에 배를 대
선물 보따리 둘러맨 포대화상글. 백시우 교무 인천 물류센터에 모인 가지가지 상자들을 컨테이너박스에 빈틈없이 야무지게 채우는 부지런한 손길이 있다. 큰 배는 육중한 화물을 들어 올린 크레인을 뒤로하고 남녘으로 물길을 연다. 황해, 동지나해, 남중국해를 지나 타이 만에 접어들어 태국의 수도 방콕까지 20여 일간의 항해다.통관을 마친 짐들은 다시 트럭에 실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으로 향했다. 물건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은 후 뱃삯을 치르면 국내배송이 시작된다.해발 174m 비엔티안에서 고도 1,100m를 넘나드는 시엥쾅주까지, 구불구불
당신 없는 홀로서기 글. 백시우 교무 2022년 1월 19일 정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늘 편찮으셨지만, 이번엔 심상치 않았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진 부친에게 길어야 사흘이라고 의사는 말했다.한국에 갈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시엥쾅 공항에서 왓따이 국제공항 가는 길이 걱정이었다. 팬데믹으로 막혔던 하늘길이 다시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인천행 직항 정기편이 끊긴지는 이미 오래, 가끔 전세기만 떴다.황망한 마음을 추슬러 우선 국제선 표를 알아봤다. 21일 23시 30분 한국행 비행기가 있었다. 탑승 24시
교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글. 정원경 교무 또 한 명 교도 가족이 생겼다. 지산 정인덕 교무님의 자녀 정은성 교도와 남편 팀(Tim)이다. 간호사로 일하며 브리즈번교당에 다니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멜버른으로 이사 온 것이다. 함께 법회도 보고 사축이재를 모시며 교당의 모습이 점점 안정되는 듯하였다. 그러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재난이 찾아왔다. 간호사인 은성 교도는 더욱 바빠져서 교당에 나오기 힘들어지고, 백도정 교도님 가족은 회사 복귀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코로나로 인하여 각종 모임에 규제가 생기고 활동 자체를 할
개척교화의 기쁨, 우리 법회 봅시다글. 정원경 교무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하고 얼마 뒤 둘째 은서가 태어났다. 은서가 태어나고 5주쯤의 일이었다. 정토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여러 번 복통을 호소하여 응급실에 갔는데, 담석이 발견되었다.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라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급히 입원하여 담석 제거술을 시행하였다. 하지만 출산 후 장기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시기라 담석을 제거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합병증으로 급성 췌장염이 온 것이다. 담석을 제거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다. 마침
교당 터전을 마련하다글. 정원경 교무 생업, 그리고 인연 맺기먹고 사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높은 물가와 공과금, 집세…. 한국에서 마련해온 돈은 빠르게 사라졌다. 구인 정보를 찾아보고 처음으로 구한 일이 돌을 바닥에 까는 Paving 일이었다. 하루에 호주 달러 120$ 받는 일이었다. 그나마도 비가 와서 일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여러 고민을 한 끝에 목수 일을 하면 어떨까 마음먹었다. 학교에 다니고 자격증을 땄지만, 다른 지원자들보다 늦은 나이여서 일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직 숙련되지 못하여 많은 돈을 받진 못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