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명 소목장  

‘저 하늘은 얼마나 높고 큰 것일까?’ 어린 소태산 대종사의 표정에 의문과 궁금함이 그대로 나타난다. 또 간절하게 구하던 답이 어디에도 없음에 좌절하던 청년 소태산의 얼굴에는 ‘이 일을 어찌 할꼬’ 란 고뇌가 묻어있다. 한국 유일의 소목조각장 김정명(여주교당)의 손에서 새로이 탄생한 소태산 대종사 십상. 고부조 기법으로 조각한 십상은 세밀하고 입체적인 것은 물론, 물 흐르듯 이어지는 11개의 조각작품은 소태산의 일대기를 영상처럼 펼쳐 보여준다. 서울교화 100년 기념사업으로 제작한 ‘소태산 대종사 십상’은 3월 31일 원불교소태산기념관 1층 서울교구청 로비에 봉정되었다.  

 

작품을 옮기고 나자, 3년 동안 목재와 도안, 나무 깎는 소리로 가득 찼던 작업장이 오랜만에 빈 공간이 되었다. ‘성자의 일대기’를 표현한다는 설렘과 큰 과업을 잘 해낼 수 있을까란 두려움이 함께한 3년이었다. 

“서울교화 100년 기념사업으로 십상을 제의받고, 가슴이 매우 벅차올랐습니다.” 46년간 나무를 깎고 조각하며 화려한 수상 이력과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소태산 대종사 십상’은 남달랐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목조각일뿐더러(십상 한 점 크기 1655×1495) 위대한 한 인물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조각하는 작업은 그가 평생 꿈꾸던 대작이었던 것이다.

“학수고대라고 하죠.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자 행복과 두려움, 또 이 큰 걸 한다는 설렘, 그리고 잘해 내야된다는 각오들이 혼재했습니다.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또 순조로운 부분도 있었죠.” 도안작업을 위해 영산을 찾은 첫날, 하늘에서 빛이 쫙 내려와 영산을 반짝이는 것이 꼭 ‘관천기의상’에서 성자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 같았다. 어두운 밤, 옥녀봉에 뜬 별 하나가 영감을 주기도 했다. 영산에 머물며 초안작업을 하고 또 매일매일 대종사에 관한 독서를 했다. 그렇게 머리 속에서 구상만 하던 이미지가 굳어졌고 실물도안작업에 연필이 막힘없이 움직였다. “영산방언상을 보면 대종사님이 깃대를 꼽으면서 앞에 가고 뒤에 구인제자와 사람들이 따르면서 흙을 퍼 담고 밥을 짓는 모양들이 나옵니다. 그걸 할 때는 정말 어떻게 그렸는지도 기억이 잘 안나요. ‘이건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는 거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그가 무엇보다 고민한 것은 불교 목조각과 차별화 되는 원불교 목조각의 독창적 특성이 있는 도안과 기법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는 대종사 주위로 원을 두르고, 십상 옆 산수화를 고부조 기법(전통 입체목각)으로 입체화했다. 고부조 조각은 매우 희귀할뿐더러, 최고 난이도 작업. 지금까지 산수도를 입체화시킨 조각은 한 점도 없다. 그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원불교 목조각은 기존의 형식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성물이기에 남의 손을 빌리기가 싫었습니다. 내 손으로 해야 안심이 되었죠.” 그림과 서예, 나무를 짜고 새기는 것 모두 혼자 해낸 그. 그렇기에 일원상 법어까지 11개의 목조각 작품은 물 흐르듯 하나로 연결되는데…. 그가 나무를 짜고 조각할 수 있는 한국 유일의 소목조각장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너무 무겁고 큰 작품이라 척추에 무리가 가서 주사를 여섯 번이나 맞아야 했지만, 조각할 때는 수행자의 심정으로 파내려갔다”고 웃어 보인다.

그리고 드디어 중앙 원 안에 있는 제일 중요한 대종사님 입상 부분이 남았을 때, 그는 다시 영산을 찾았다. 그렇게 생가터, 삼밭재 기도터, 구호동 집터, 구간도실, 정관평 현장에서 마무리한 11개의 작품은 이제 그를 떠나, 우리에게 공개되었다.

“일원상 법어 조각을 보면 꽃이 무수히 많아요. 처음에는 꽉 찼다는 느낌이 들겠지만 계속 보고 있으면 비어 있다고 느껴질 거예요. 그 꽃은 우리 교도님들을 연상했고, 뒤에는 우주예요. 그 밑에 별이 박혀 있죠. 그곳을 지나서 보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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