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성심 편집인  

 

과거에는 물질이 가난했는데 지금은 정신이 가난(빈곤)한 지경이다. 거기에 더하여 곳곳이 사람 가난이다. 

국가의 인구 정책 실패를 증명이라도 하듯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휴원과 폐원이 많아졌다. 서울 소재 초등학교도 통·폐합을 하고, 지방 대학은 문을 닫는 실정이다. 지자체마다 아이가 태어나면 주겠다는 공약금이 점점 높아진다. 빈집도 늘었다. 청·장년이 귀농하면 정착금을 주는 시대다. 

여기저기 사람 가난이다. 행사를 하려해도 사람이 모여야 한다. 모이는 곳은 유명 쇼핑몰과 흥미 있는 곳뿐이다. 흥미만 쫓으니 정신 가난의 연속일 수도 있을 것이다. 흥미 대신 의미를 찾으면 정신적 빈곤을 극복할 길이 차차 열릴 텐데…. 힘듦을 겪어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자기 실험 정신도 느슨해진 듯 도전정신이 희박하고 편리와 편의주의만 추앙하는 현상이다. 

최근 뉴스 기사에서 그랬다. 요즘은 비정규직을 선호한다고. 전문직이나 대기업이 아니면 어디 명함 내밀기도 창피하다며 아예 정규직 취업을 기피한다. 그냥 쉽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만큼 쓰면서 살겠다는 단기목표만이 존재할 뿐이다. 인생 장기계획을 세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캥거루족, 나홀로족도 많아졌다.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 냄새가 나야 이 집이 이상하다고 119에 전화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살펴볼 수 있는 시대 상황이다.

이 시대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교단 내 주위 사람에게 물어봐도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 내가 이곳에 근무하는 한 현상 유지는 하겠다는 책임감으로 임하고 있단다. 새봄이 되었건만 희망은 우리 곁에 희미한 존재인가? 

대종사께서는 ‘가난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나 부족한 것이다’고 하셨다. 얼굴이 부족하면 얼굴 가난, 학식이 부족하면 학식 가난, 재산이 부족하면 재산 가난이다. 그러니 그 가난을 인정하고 미래의 혜복을 준비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있으니 노크해 보자. 나와 연대할 팀을 꾸리고, 구성원 간 적극적 소통을 유도해 봐야 한다. 먼저 손 내밀지 않으면 쉽사리 그 누구도 손잡으려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새봄, 희망의 기지개를 활짝 켜고 새 마음을 장착해 보자. 그래서 사람 가난도 극복하고, 정신적 빈곤이나 각종 가난 극복을 위해서는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연령대별 공감 교화’에 임해보자. 분명 희망의 응답이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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