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듣는 사람

나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이야기 들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글. 장지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더 정확하게는, ‘학생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큰 딸이라는 부담감과 집안 가게를 책임져야 할 것 같은 혼자만의 상상 때문에 괴로워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만난 담임선생님은 나의 이런 마음을 먼저 알아차려 주었고, 언제든 내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잘 들어주셨다. 그런 선생님 앞에서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나도 이런 선생님이 돼야겠다.’

그러다 고 3때 나의 추천교무님을 만났다. 이러이러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내 말에 교무님은 “교무님이 되면, 네가 되고 싶어 하는 그런 선생님이 될 수 있어.”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되고 싶은 이유를 곰곰 다시 살펴보니, 나는 결혼을 잘 하기 위해서도, 돈을 잘 벌기 위해서도,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어서도 아닌 ‘학생들의 마음을 듣는 사람’이 되고 싶어 선생님을 꿈꾸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가까이에서 지켜 본 교무님은 늘 행복해 보였다. 언제든 싱글벙글한 웃음을 보여주었고,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친구들은 원불교를 다니지 않아도 교무님을 찾아가고, 법당으로 향했다. 특정 과목 선생님보다 교무님이 되는 게 내가 원하던 모습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살 수 있겠다는 결심이 섰다.

아주 이른 나이에 교무가 되어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생각만큼 기뻤다. “전국에서 가장 젊고 예쁜 교무님을 만난 너네는 행운아야~.”라고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일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없는 여러 환경들이 때론 내 존재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어떤 불의의 사고를 접한 후, 내가 그 아이에게 아무런 역할도, 도움도 주지 못했음을 심하게 자책했다. 내가 출가한 이유, 내가 살아가고자 했던 모습에서 너무나 멀어졌음을 깨닫자 마음이 너무나 아프고 괴로웠다.(그에 대한 미안함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깊이 박혀있다.)

이후, 근무지를 옮기게 되면서 월간원광사로 발령을 받았다. 중학교 땐 교내 방송반, 고등학교 땐 지역 학생신문 기자를 하며 나름대로 언론분야에 대한 관심이 있던 터에 주어진 기회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들의 이야기 들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선생님을 꿈꾸었던 것도, 교무님을 결심했던 것도,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였던 것 같다.

요즘의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잘 정리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담아내는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변화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게 나의 쓰임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사실 나는 거창한 서원이 없다. 그저 어디에 있든, 누구를 만나든, 열린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출가 서원의 첫 시작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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