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어디에서 올까?

카네기 공대 졸업생들 “성공하는 데 전문지식은 15%, 인간관계가 85%”
글. 박정원  월간<산>부장·전 조선일보 기자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다닌다. 아니 행복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하는 만큼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다. 혹자는 행복은 성공에서 온다고 말한다. 그러면 ‘성공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당연히 생긴다.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무엇으로 그럴까?

 미국의 카네기 공대 졸업생을 추적 조사한 결과가 재미있다.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성공하는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15%밖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나머지 85%는 인간관계였다.”고 말했다. 그들은 특히 세 가지 방문을 잘했다고 주장한다. 그 세 가지는 ‘입의 방문’ ‘손의 방문’ 그리고 ‘발의 방문’이었다. ‘입의 방문’은 전화나 말로써 사람을 부드럽게 칭찬하며 용기를 주는 방문이고, ‘손의 방문’은 편지를 써서 사랑하는 진솔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고, ‘발의 방문’은 상대가 병들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대학 순위에서 최상 계층의 대학 졸업생들이 전문적인 기술보다 인간관계가 성공에 더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성공도 사회적인 성공보다는 개인이 바라는 성공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바람직하다.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성공이 바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말해 행복은 자기의 마음에서 온다는 말이다.

 오랜 친구 둘이 있다. 20대에 만나 50대 중반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이들의 모든 습관과 성향을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 이 친구들도 이제는 소속 조직에서 의젓한 간부가 됐다.

 A란 친구는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에서 전무를 하고 있다. 오너가 구속되면서 그가 속한 서울의 본부는 해체되고 수원 본사로 옮겨 근무하고 있다. 당시 부서의 핵심 책임자들은 모두 사직했다. 이전에, 그 기업에서는 퇴직한 임원들에게도 몇 년 간 월급을 주면서 최고 기업 임원으로서 대우를 해줬다. 그런데 이번에 오너가 구속되면서 몇 년 간 월급을 지급하던 것을 일시불로 지급하면서 예전의 관행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 친구는 지방에 근무하면서도 서울의 핵심부서에서 가졌던 꿈과 희망을 계속 지닌 듯했다. 즉 계열사로 내려가 사장을 한 번 해보겠다는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운명을 알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대체로 파악이 된다. A란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퇴직 수순을 밟지 않을까 싶다. 퇴직 몇 년 뒤 월급을 주던 관행을, 지금은 퇴직시키지 않고 회사에 근무시키면서 월급을 주는 게 아닌가 판단된다.  하지만 그 친구는 미련이 강했다.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나는 다른 지인에게 “그동안 연봉으로 몇 억을 받아, 모아 놓은 돈도 상당할 텐데 왜 그리 미련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생관을 조금 바꿔서 사는 게 훨씬 편할 텐데….”라고 말했다. 그 지인은 “사람이 그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본인은 현재 자신의 위치에 대해 오히려 주위 사람보다 더 못 볼 수도 있다. 그 친구의 꿈과 미련대로 그가 계열사 사장으로 내려갈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현재 편하고 재미있게 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또 다른 친구 B는 현재 국책은행의 간부를 하고 있다. 연봉도 억대다. 요즘은 특히 금융권이 월급을 많이 줘 취직준비생들에게 인기다. 이 친구는 원래 침착하고 참을성 있고, 위트도 있었다. 그런데 차츰 간부가 될수록 거들먹거리더니 언제부터인가 건방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자리를 같이 하면 할수록 말도 함부로 한다. 때로는 ‘돼지에게 다이아몬드를 쥐여준 느낌’이 들 정도다. 옛날의 그 참을성과 겸손, 위트는 다 어디 갔는지 찾을 길 없다. 자리를 불편한 상황으로 만드는 것도 예사다. “내가 다 알고 있다.”거나 “너희들은 모른다.”는 등의 말을 함부로 한다. 정말 어린애에게 감투를 씌워놓은 듯하고, 모자란 인간에게 완장을 채워놓은 느낌을 풍긴다. 더욱 심한 건 ‘내가 이 정도 하는데, 너는 그 정도 하면 안 되지.’ 하는 시기심까지 강하게 내비친다. 안타깝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두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나이 들면서 이렇게 변하는구나.’ ‘감투를 씌워 놓으니 눈을 가리는구나.’ 하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그 친구들이 행복한 줄은 모르겠다. 썩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A친구는 자식이 없고, B친구는 자녀가 한창 대학 다니고 있는데 본인의 퇴직은 몇 달 남지 않은 상태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행복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감투와 지위가 세상사 부질없는 명예에 불과하고, 가족과 따뜻한 마음을 공유하는 게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그들이 그 감투와 지위를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만 지나면 환상같이 사라진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으면 느낄 수 있을 텐데….

 이들을 보면서 다시 깨달았다. 행복은 마음에 있을 뿐 아니라 조금 더 빨리 깨닫고,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을때 훨씬 더 행복할 수 있겠다고. 세상을 경험하기 전에 아는 게 가장 좋고, 경험해서 아는 건 조금 덜 좋고, 경험하고도 모르는 건 불행의 원천이 된다. 행복은 자신의 마음에서 오고, 결코 자리라는 명예나 그에 따라서 주어지는 돈에서 오는 게 아니다. 또한 행복은 남과 비교하거나 돈이나 권력에서 결코 오지 않는다. 수필가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황후의 밥과 걸인의 찬’에서 행복이 오지 않겠나.

 그 친구들한테 묻고 싶다. “너희들은 행복하냐?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다 같이 한 번 생각해보자. 행복은 어디에서 올 것 같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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