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훌륭하시다
글. 이현인

얼마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우리 할머니 나이, 101세.
할머니는 6·25 한국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가난한 시골 농가에서 5남매를 키우셨다. 21살에 시집와 반평생 넘게 충청도 신도안에서 사셨고, 그곳에서 만난 원불교는 할머니의 고된 삶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 되었다. 가장 마음이 착한 효녀, 우리 엄마는 할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원불교를 다니게 되었고, 그 덕분에 오빠와 나 그리고 우리 아버지까지 모두 원불교 식구가 될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약 7년 동안, 할머니는 101년의 긴 삶 중에 가장 편안하고 가장 값진 시간을 보내신 것 같다. 할머니는 운이 좋게도 굉장히 훌륭한 시설에 아주 친절한 직원들이 있는 요양원에 머무셨다. 노인성 치매 때문에 할머니 기억의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마음 하나가 남았다. 늘 고맙다는 말을 하셔서 요양원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았다.

우리 할머니에겐 장가를 가지 않고 평생 말썽만 부린 둘째 아들이 있다. 때문에 할머니의 마음엔 항상 ‘내가 밥이라도 해줘야 할 텐데….’ 하는 애착심이 있었다. 엄마와 나에게는 그것이 늘 걱정거리였다. 그런데 막상 열반의 길을 떠나시는 과정에서, 할머니는 그 마음마저 놓아 버리신 것 같았다. 우리 할머니는 할머니의 착한 딸과 아들, 사위, 그리고 손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3~4시간 동안 자손들이 일심으로 염송한 독경소리에 마음을 청정히 모으셨기 때문이다.

가끔씩 나는 할머니의 인생이 참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정말로 지루한 삶을 사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할머니의 인생이 참으로 거룩하게 느껴진다.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내신 할머니! 착한 품성으로 늘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신 할머니! 비록 글을 몰라서 <원불교 교전>을 한 번도 읽지 못하셨지만, 일원상과 대종사님, 그리고 교무님들을 모시는 정성스런 마음을 몸으로 보여주신 할머니! 더군다나 늘 감사생활을 하시고, 떠나실 때는 청정한 한 마음에 의지해서 훌훌 영을 띄우신 우리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삶을 되새겨본다. 나도 우리 할머니처럼 거룩하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내고 싶다.
 

내 생애 최초의 올림픽
글. 송정자

2월 11일,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여러 번 여행을 다니며 복지관 버스는 자주 탔었지만, 관광버스는 처음이다. 다른 여행보다 마음이 많이 흥분된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들뜬 것을 느낀다. 버스 안에 여러 어르신들도 즐거운 표정이시다.

드디어 관장님, 팀장님 등 직원분이 모두 오셨다. 기사님과 출발~! 오랜만에 나서는 여행이라 여기저기서 멀미를 하고 관장님도 머리가 아프다며 약을 찾으신다. “걱정 마세요. 이거 드세요.” 하자 관장님이 “약을 많이 가지고 다니시네요.” 한다. 다른 분들 에게도 약을 나눠주러 다니니 약사가 된 기분이다. 출발이 반이라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낯익은 거리다. 곳곳에 2018 평창동계올림픽 포스터와 현수막이 눈에 많이 띈다. 88 올림픽을 보지 못해서 후회했는데 막상 이렇게 현수막을 보니 설렘이 커진다.

여행 일정 첫 행선지는 허브나라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옆 체험관에 가서 젤 캔들을 만들었다. 향 나는 캔들을 만들어 보기는 처음이라 무척 흥미로웠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의야지바람마을이란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초콜릿과 치즈 만들기를 하는데, 내 손으로 만들고 먹으니 어찌 이리도 맛있는지!

바람마을 아니랄까, 모든 일정을 끝내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세차게 분다. 리조트 숙소에 도착해 어제부터 열심히 싼 짐을 풀어 본다. 마스크 팩과 여러 간식거리를 꺼내며, 마사지도 하고 팩도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것도 잠시, 요란스런 코 고는 소리에 거실로 쫓겨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다른 방에서도 코 고는 소리를 피해 나온 박선자 님이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 순간부터 새벽 4시까지 자는 둥 마는 둥 코 고는 소리에 맞춰서 잠이 들었다 깨었다 하였다. 그러나 짜증이나 화가 나지 않았다. 집에 있을 땐 혼자 있어서 몰랐던 이웃과 함께하는 소중한 은혜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다음날 새벽 4시에 눈을 떠서 또 얘기하고 몸치장도 하고 시간 맞춰서 아침 식사를 했다. 드디어 오늘은 정말 멋있는 곳을 간다. 강릉 아레나 건물이 눈에 띄니 반가웠다. 직원분이 표를 주시는데 그 표가 40만 원짜리다. 정말 놀랐다. 행복한 기분으로 입장을 했다. 좌석을 찾아서 자리에 착석하니 기분이 묘하다. 내가 이렇게 멋있는 관람을 할 수 있게 되다니, 우리 모두가 복지관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제일 좋아하는 피겨스케이팅, TV에서만 보다가 현장에서 보니 감개무량했다. “어머나, 어머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평생에 한번, 앞으로도 절대로 없을 것이다.
올림픽은 끝났지만 그때 찍은 사진과 티켓, 그리고 함께했던 주민들과의 추억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내 생애 최초의 올림픽이여! 그대가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


내 마음의 개교
글. 최진방

원기 59년도에 입교한 이래 ‘개교의 동기’를 수없이 많이 읽었습니다. 이제는 저절로 외워지는 경지에까지 왔습니다.
최근에 ‘개교의 동기’를 주제로 강연을 준비하다가 ‘나는 개교를 했는가? 내 마음의 개교를 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크게 보면 두 번 정도 개교를 한 것 같습니다.

입교가 저의 첫 번째 개교였습니다. 원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입니다. 사실 개교를 했음에도 정확한 공부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교전을 가까이하고, 수없이 법문을 듣고 스승님들과 인연을 맺고, 또 훈련 참석도 많이 했지만 나의 육근이 개교를 못했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 마음공부를 하면서도 내 자신은 볼 줄 몰랐고 상대방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사생활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개교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제가 저를 토닥거립니다. 그건 참 잘한 일이라고요.

덕분에 두 번째 개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개교는 4~5년 전부터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경계를 당할 때마다 퇴굴심이 났습니다. 인연에 끌려다니다 보니 실망도 하게 되고 원망심도 나타났습니다. 또 ‘잘사는 길은 물질이 풍부해야만 된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물질과 인연의 속박 속에서 자유로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기도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위력에 대한 믿음과 정성이 약하다 보니 하다말다를 반복했습니다. 혹 기도를 하더라도 내 사업과 내 가족만을 위한 아주 작고 좁은 기도를 했습니다. 훈련에서 어느 교무님이 “기도하지 않는 신앙인은 껍데기 신앙인.”이라고 하신 말씀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최원심 교무님으로부터 작은 기도를 큰 기도로 돌리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교무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생령·인연·자녀를 위한 기도를 해주십니다. 저도 이제는 크게 기도합니다. 이 세상 모든 생령,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는 인연들이 모두 화하게 해달라고 한 후에야 저의 작은 바람을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계속 올렸더니 정말 제 마음이 변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가까운 인연들이 부처로 보이기 시작하고, 불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감사함이 상대방한테서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주 가까운 아내와의 관계도 2~3년 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자녀들과의 관계도 의무와 책임감이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 연결되었고, 이제 그 사랑을 느낍니다.

감사함을 자주 느낍니다. 개교의 참 뜻을 체받아서 일원은 곧 사은임을 깨닫고, 내 주위가 온통 부처님인걸 알아차리고, 공들이고 공들여서 은혜를 발견하여 감사생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은 기도생활이 제 마음의 개교의 동기입니다.


생각의 힘을 믿자!
글. 황정진

나는 가전회사에서 MD로 근무하고 있다.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편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힘은 힘대로 드는 상황이 닥쳐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험한 말과 짜증이 표출된다. 그래도 생각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긍정적으로 하는 쪽으로 노력하려고 한다.

아침에 기상하면 유튜브를 켜서 명상음악을 재생시킨다. 그리고 길지도 짧지도 않은 5분의 시간 동안 명상을 한다. 내가 하는 명상법은 간단하다. 어쩌면 눈 감고 생각을 되뇌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명상하면서 하는 생각의 첫 번째는 ‘오늘 하루 어떤 새로운 사람을 만날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자.’ 두 번째 ‘어떤 일이 생겨도 절대 속단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자.’ 마지막 세 번째는 ‘사람은 생각의 차이다. 긍정의 힘을 믿자.’ 난 이 세 가지를 항상 아침에 5분 동안 생각한 뒤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면 ‘카르페 디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어느새 나에게 노여움을 줬던 일들이 지나간다. 결국 하나의 큰 산을 긍정의 생각으로 버텨낸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세 가지 문장 중 나는 ‘사람은 생각의 차이’라는 말을 정말 좋아한다. 긍정적인 생각에 대한 힘을 직접 느꼈던 때는 군 복무 시절이었다. 일병 때쯤 우연히 <시크릿>이라는 책을 보았다. 책의 내용은 구절구절 많았지만, 결론은 사람이 생각한 대로 일도 흘러가게 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참 힘든 군대 시절에 읽었던 책이기에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지 모른다. 실질적으로도 그 책을 읽고 사람은 생각대로 흘러간다는 마인드를 조금씩 가지게 되었을 때쯤, 난 군 생활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나 역시 힘든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습관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인생을 살면서 힘든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다 시간이 지나면 끝나게 되어있다. 긍정의 힘을 믿어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 뜻하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염원하고 항상 생각하자. 그럼 어느새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완전히 도달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근처까지 올라온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춘들에게도 내 생각과 말 한마디가 힘이 되길 바란다. 각자 원하는 결과를 이루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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