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혁명의 거대한 파도

글. 홍진관 원남교당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고 일하고 있는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혁명의 직전에 와 있다. 이 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 등은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바프(KlausSchwab) 회장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그 속도와 범위, 체제에 대한 충격의 세 측면에서 3차 산업혁명과 확연하게 다르다고 강조하면서 화두로 던진 말이다.
그럼 요즈음 회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클라우딩 컴퓨팅, 모바일 등 지능정보기술이 기존산업과 서비스에 융합되거나 3D프린팅, 로봇공학, 생명공학, 나노기술 등 여러 분야의 신기술과 결합되어 실제 세계의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사물을 지능화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사물을 지능화 한다.”는 데에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컴퓨터, 인터넷에 의한 정보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제3차 산업혁명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으로 초연결(Hyper Connectivity)과 초지능(Super Intelligence)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기존 산업혁명에 비해 더 넓은 범위에 더 빠른 속도로  영향을 끼치고 경제와 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혁신적인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7만년 인류역사 이래로 기계화와 전기화에 의한 1, 2차 산업혁명을 거쳐 정보화에 의한 3차 산업혁명까지 불과 200여년 남짓한 시간동안 인류는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 숨 가쁜 호흡을 고를 틈도 없이 이제 우리는 또 다시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변화, 그 규모와 범위, 복잡성면에서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의 물결 속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그 개벽의 외침은 이러한 변화의 시대를 관통하여 지금 오히려 더 생생히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다.
2016년 3월 세기의 대결이라 불리었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우리에게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을 여실히 보여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둑에서만은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 이유로, 바둑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인간이 기초 데이터를 입력하는데 한계가 있어 컴퓨터가 이를 다 커버할 수 없을 것이라 보았다. 이러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것은 컴퓨터가 인간처럼 판단하고 학습하도록 하여 사물이나 데이터를 군집화하거나 분류하는 데 사용되는 이른바 “딥러닝(Deep Learning)”이란 기술이다.
딥러닝의 고안으로 인공지능이 획기적으로 도약하게 되었고, 초기 인공지능은 그 규칙을 컴퓨터에 주입하는 지도학습법이 활용되었다. 또한, 인터넷의 등장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되면서 수많은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는 이른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계학습)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머신러닝에 인간의 뇌를 모방한 신경망 네트워크를 더한 딥러닝 알고리즘은 인간의 두뇌가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발견한 뒤 사물을 구분하는 정보처리 방식을 모방하면서 기존 머신러닝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즉, 머신러닝이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상관관계와 특성을 찾아내고 여기에 나타난 패턴을 통해 결론을 내리는 데 비하여 딥러닝은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만 하지 않고 이 데이터를 통해 학습까지 하는 이른바 기계학습의 능력을 활용해 최적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좀 더 진화된 딥러닝 알고리즘을 적용한 알파고 마스터는 프로기사들과의 인터넷 바둑시합에서 60전 전승을 기록하였다. 최근에는 바둑 랭킹에서 현재 세계 1위인 프로기사 커제와의 3연전을 모두 이기고, 5인의 다면기에서도 모두 인간기사들을 간단히 제압하였다. 커제와의 3번기에서도 내용면에서 포석단계, 중반전, 끝내기에 이르기까지 알파고가 커제에게 한 번도 밀린 적이 없다고 한다. 바둑의 포석단계에서 정확한 수읽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은 직관과 감각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알파고가 포석단계부터 인간을 앞서 나간다는 것은 인간의 ‘직관과 감각’을 계량화해서 각 경우의 수의 가치와 이의 우선순위를 알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알파고는 포석단계일지라도 30초라는 짧은 시간 내에 가장 큰 이득을 볼 수를 순식간에 계산해 낸다. 이세돌과 커제를 상대로 한 알파고와의 ?바둑시합은 특정분야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고 현재 의료, 금융 및 마케팅 분야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럼 인공지능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보다 편리하고 스마트한 삶을 선사하는 진실한 충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인류를 혼란과 불행으로 안내할 파멸의 시작이 될 것인가?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예측과 낙관적인 견해가 상충되고 있다. 낙관적인 견해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친구나 멘토, 심지어 애인으로 다가오고, 또한 인간의 언어장벽을 허물게 하고 인간의 평균수명을 늘리게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예측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인간을 초월한 초인공지능의 출현과 함께 인공지능으로부터 파생되는 윤리적이고 법적인 문제이다. 우리 주변의 인공지능은 아직까지 약인공지능이고 진짜 사람처럼 느껴지는 강인공지능은 아직 실현되고 있지 않았다. 아마 2040년경이 되면 이게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 구분이 안가는 강인공지능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영리하게 되면 인간은 인공지능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인공지능에는 선악의 개념이 없다. 이 문제에 잘 대처하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남겨진 몫이다. 알파고의 개발자인 데미스 허사비스도 인공지능에 대해 윤리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일을 빼앗기는 것은 아닌지, 인공지능에 의해 인류가 지배당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근심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인간의 지능을 닮은 로봇으로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된다면 인간은 많은 분야에서 직장을 잃어버리고 대량실업이 발생하게 될까? 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세계가 도래하는 것은 아닐까?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역사적 시점이 언제일까에 대해 레이 커즈와일(RayKuzweil)은 2006년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 라는 저서에서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특이점이란 미래에 기술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그 영향이 매우 깊어서 인간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시기를 말한다. 그는 특이점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인간과 기술 간의 구별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커즈와일의 설명대로 기술과 인공지능의 융합으로 인공지능이 우주로 그 영역을 확대하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특정분야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어떠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성립되려면 결국은 인과의 법칙을 위배할 수는 없다. 특정분야에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해, 특정영역에서 작동하는 인과 세계의 현실화된 단면을 인공적으로 창출할 수도 있다.
과연 우주로 인공지능을 확장하는 것이 현실화 될 수 있을까? 우주에서 작동하는 초인공지능의 탄생은 가능할 것인가? 학습을 통해 생각하는 컴퓨터의 등장, 단순한 운영체제가 아니라 컴퓨터가 ‘또 하나의 의식’이 되고 그 의식의 범위를 우주로 확장하게 된다면 인간은 어떤 일을 해야 하며, 우리의 삶에서 종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러한 의문들이 이미 현재진행형 미래가 되고 있는 시점에 와 있다. 과연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 의문에 답하기 전에 기계와 인공지능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자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기계화를 이룬 1차 산업혁명과 지능화를 이루어가는 4차 산업혁명의 여정에서 기계와 인공지능의 뒤편에 물끄러미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자화상 같은 인간의 마음과 마주하여 대면하게 된다.
  기계를 만든 인간, 인공지능을 필요로 하고 이를 만들어낸 인간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가? 한걸음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 마다 우리는 그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긍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위하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레이 커즈와일이 말한 특이점의 시대에 이르러 인간과 기술 간의 구별이 사라질 때가 온다면 그 순간에도 우리는 우리의 본래 마음을 철저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기계를 만들어낸 인간의 마음, 인공지능을 필요로 하고 이를 만들어 낸 인간 본래마음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항상 깨닫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닌가? 어떤 일을 통해서 어떤 실수를 통해서, 또 일상의 사물을 대하면서 우리는 항상 깨달음을 얻으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를 위한 위대한 여정인 인간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원기 이십육년 일월에 대종사께서 게송을 내리신 바 있다.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10 01 ,,, 10 01)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10 00   00 11)
  이것은 우주의 원리이고 자성의 원리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나 인공지능이 이 게송을 ‘컴퓨터 언어(10 01 ,,, 10 01, 10 00 00 11)’로 받아들이고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지 않는가?
이는 우리의 본래마음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인간이 함께 궁굴리고 궁굴려야 할 인간본연의 문제이다. 레이 커즈와일이 말한 특이점의 시대에 도달하여 물심일여의 시대가 눈앞에서 이루어지더라도 진정으로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는가? 오직 기계와 인공지능을 만들고 사용하는 그 마음에 모든 미래가 달려 있다. 그 마음을 잘 알고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 삶의 영원한 명제이다.
어떠한 것도 그것을 사용하는 마음에 달려있다 그래서 일체유심조가 아니던가? 인공지능은 인류가 새로운 지식영역을 개척하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로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미래로 전진할 때 마다 오히려 더 역설적으로 인간의 본래 마음을 항상 찾고 살펴서 잘 사용해야 할 것이다. 산 정상에서 모든 길이 하나 되어 만나듯이 모든 인간의 행복한 미래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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