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세요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하는 듯 했다.

글. 박화영

 교구사무국에 근무하다보니 아이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적어?매우 아쉬워하던 차, 가까운 원광지역아동센터에서 특별활동 수업 의뢰가 들어왔다. 센터를 이용하는 중·고생을 대상으로 캘리그라피 수업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첫 수업에서 강사가 교무님이라는 것을 인지만 할 뿐, 정작 나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기들끼리 장난치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먹물을 사용할 때는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줘도 금세 잊어버리고, 글씨만 몇 번 따라 쓴 후 다시 서로 장난치기 일쑤였다.

 세 번째 수업 날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민정이가 조금 일찍 와서는 “교무님, 제가 춤춰 볼게요. 잘하는지 보세요~.”라고 하더니 음악을 틀고 아이돌 그룹 춤을 열심히 춘다. ‘어디서 저런 용기가 났을까?’?평소 수업 시간에 유난히 칭찬받기를 좋아하던 아이이기에 좀 더 열렬히 반응을 하며 잘한다고 칭찬을 해줬더니, 무려 세 곡이나 춤을 춘다. 수업 시간에 맞춰 오는 언니오빠들의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교무님’만을 위한 춤을 추는 것이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아이들이 “교무님!”을 외치며 자기 글씨를 봐 달라고 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하도 기특하기에 하루는 아이들에게 치킨을 사주었는데, 민정이가 “치킨이 맛있긴 한데 토할 것 같아서 못 먹겠다.”고 했다. 어디가 아픈 건지 물었더니 얼마 전 급성위염을 앓았다고 한다.

 내가 “우리 민정이가 신경 쓸 일이 많았나보구나. 어린 나이에 급성위염이 생길 정도면 얼마나 큰 고민이 있었어?”라고 물으니 “교무님! 원래 고민 많이 하고 신경 많이 쓰면 위염 걸리는 거예요? 저 실은 요즘 학교가 너무 가기 싫어요. 전학가고 싶어요. 그래서 맨날 아파요.”라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고민을 꺼내놓는다.

 “왜 학교가 가기 싫었어? 공부하기가 싫어? 아님 선생님이 무서워? 아님 친구들이 괴롭혀?”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그랬더니 민정이가 “친구들과의 관계가 너무 어려워서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나 싫다.”고 한다. 학교만 벗어나면 너무나 행복하고, 특히 아동센터에 오면 언니오빠들이 잘 챙겨주는 덕분에 센터에 오는 일이 가장 신난다고 했다. 시간도 늦고, 다른 친구들도 있는 자리라 더 깊은 얘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민정이는 단지 ‘자기에게 관심 가져주고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하는 듯 했다.
 열 명 남짓의 아이들이 드나들며 일주일에 한 번 고작 두 시간 만나는 일이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고 그 아이들은 그 시간을 통해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으니 그것보다 큰 교화가 어디 있을까.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마음 놓고 고민을 털어놓고 기댈 곳이 있다면, 그곳이 교당이 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세상은 좀 더 맑고 밝고 훈훈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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