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푸리면 아름답다는 건 알면서도
찌푸리면 왜 아름다워지는지 모른다

글. 김정탁


 종교에서 이미지는 중요하다. 물론 교리가 종교의 핵심이지만 교화를 위해선 이미지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서양 종교가 한국에서 성공한 데는 이런 이미지 전략이 한몫 했다고 본다. 이에 반해 원불교가 최근 들어 교화에 침체를 보이는 게 이미지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가 아닐지 한 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원불교 하면 무엇이 먼저 연상되느냐?’고 물으면 가장 많은 대답이 흑석동 서울회관 건물이다. 한강변에 지어져 사람들 눈에 자주 띈 탓이다. 그런데 오래된 데다 미적이지도 못해 원불교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보다 부정적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을 것이다. 지금은 허물어 새로 짓고 있으니 완성된 후엔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본다.

 그 다음으로 많이 연상되는 이미지가 여성 교무의 복장과 머리다. 여성 교무의 복장과 머리는 정녀라는 특별한 신분과 함께 일반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한때는 원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 아이템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아이템으로 바뀌는 것 같다. 그렇다면 교화를 위해선 과감히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대종사께서 이런 복장과 머리를 정할 땐 당시 기준으로 첨단 패션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게다가 해외 교화를 위해선 변화가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이것이 평소 필자의 소견이고, 또 이런 소견을 기회가 될 때마다 피력 했는데 좀체 받아들여지지 않아 안타까웠다. 이러던 참에 이 달에 소개하는 <장자> 천운(天運)편에 필자 소견을 뒷받침할만한 좋은 글이 있어서 원문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글의 요지는, 과거의 예법이 아무리 훌륭해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자 글엔 우화적 요소가 많기에 찬찬히 읽다보면 그 내용이 가슴에 팍 와 닿는다.
           
공자가 서쪽 위나라로 유람하러 갔다.
제자 안연이 노나라 태사인 사금에게 물었다.
“제 선생님의 이번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금이 말했다. “애석하게도 자네 선생은 곤경에 처할 걸세!”
안연이 물었다. “어째서인가요?”
사금이 말했다. “제사 때 쓰이는 짚으로 만든 강아지는 제사상이 차려지기 전엔 귀한 상자에 담겨져 아름다운 비단 보자기에 싸였다가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재계를 한 뒤에는 신전에 고이 받들어지네. 이렇게 받들어질 뿐이지 제사가 끝나면 이내 내버려져 길을 가는 사람이 짚 강아지의 머리와 등을 밟거나, 아니면 벌초하는 사람이 주어다 불을 땔 것일세.
만약 주워지면 다시 귀한 상자에 담겨져 아름다운 비단 보자기에 싸여질 텐데 누군가 그 상자 아래서 유유히 누워 잔다면 그는 꿈도 제대로 꾸지 못하고서 반드시 여러 번 가위 눌리게 될 것일세.
지금 자네의 선생도 선왕들이 차려놓은 짚으로 만든 강아지를 주워다가 제자를 모으고, 그 아래서 유유히 누워 자는 걸세. 그래서 자네의 선생은 송나라에선 나무가 베어 넘어지는 협박을 당했고, 위나라에선 도망쳐서 종적을 감추어야 했고, 상나라와 주나라에선 궁지에 몰렸으니 이거야말로 악몽이 아닌가?
또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선 포위를 당해 7일간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해 사경을 헤맸으니 이거야말로 악몽이 아닌가?”
사금이 계속해서 말했다.
“물 위를 가는 데는 배를 타는 게 가장 좋고, 땅 위를 가는 데는 수레를 타는 게 가장 좋네. 그런데 배로 물 위를 갈 수 있다고 해서 땅에서 배를 밀면 평생 걸려도 얼마를 가지 못할 걸세. 옛날과 지금의 차이는 바로 물과 땅의 차이가 아닐까? 그렇다면 주(周)나라와 노(魯)나라의 차이는 배와 수레의 차이가 아닐까? 지금 주나라의 예법이 노나라에서 행해지길 바라는 건 마치 땅에서 배를 미는 것과 같네.
그러니 공자 선생은 공연히 애만 쓰고 아무런 성과가 없을 테니 틀림없이 몸에 재앙이 닥칠 걸세. 공자 선생은 예법을 유연하게 적용해서 전하는 게 사물의 변화에 순응하며 막힘이 없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네.”
사금이 계속해서 말했다.
“자네는 두레박의 틀을 알고 있지?
틀을 당기면 두레박이 내려가고, 틀을 놓으면 두레박이 올라오지. 이처럼 두레박은 사람이 놓고 당기는 대로 오르고 내리고 하지만 사람을 당기고 놓고 하지는 않네. 그래서 오르내리는 두레박은 남에게 허물을 잡힐 일이 없네.
지금의 예법이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예법과 같다는 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는가가 중요하네. 삼황오제의 예법을 지금의 예법과 비교하면 마치 돌배와 배, 귤과 유자의 차이 정도와 같은 게 아닌가! 돌배와 배, 귤과 유자는 그 맛이 서로 다르지만 사람들의 입맛에는 모두 맞네.
그러니 예법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는 걸세. 원숭이를 잡아다 주공(周公)의 옷을 입히면 원숭이는 틀림없이 물어뜯거나 당겨 찢어 옷을 다 벗어야 만족할 걸세. 옛날과 지금의 차이를 보면 마치 원숭이와 주공이 서로 다른 것과 같네.
미인 서시(西施)가 가슴을 앓아 근심으로 얼굴을 찌푸렸더니 그 마을 추녀가 그걸 보곤 아름답다고 여겨 집으로 돌아와서 가슴에 손을 얹은 뒤 근심으로 얼굴을 찌푸렸다네. 그런데 그 꼴이 너무 흉측해서 마을 부자들은 그걸 보곤 문을 굳게 잠근 채 밖으로 나가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걸 보곤 처자를 이끌고 마을을 떠났네.
추녀는 찌푸린 얼굴이 아름답다는 건 알았지만 찌푸리면 어째서 아름다워지는 지는 알지 못한 걸세. 겉만 흉내 냈을 뿐이니 자네 선생도 마찬가지야. 애석하지만 자네 선생도 곤경에 처할 걸세!”

 주(周)나라 예법은 공자가 모범으로 삼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논어>에 이런 견해가 자주 등장한다. 공자는 주나라 예법을 도입해서 자신이 살던 춘추시대를 경영하는 게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렇지만 장자의 생각은 다르다. 주나라 예법이 아무리 훌륭해도 시간이 흐른 춘추시대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건 무리이다. 그래서 장자는 주나라 예법이 춘추시대 노나라에서 행해지길 바라는 건 마치 땅에서 배를 미는 것과 같다는 것에 비유한다. 그러니 여성 교무들의 복장이 과거에는 좋은 평가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걸 고수하는 건 땅에서 배를 미는 것쯤에 해당하지 않을까? 땅에서 배를 밀면 얼마를 가지 못하듯 교화에서도 애만 쓸 뿐 이렇다 할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유가가 이상으로 삼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예법을 지금 고집하는 건 무리이다. 삼황오제의 예법을 지금 예법과 비교하면 돌배와 배, 귤과 유자의 차이만큼 크지 않아서이다. 그러니 삼황오제의 예법이 지금의 예법보다 조금 낫다고 해서 삼황오제의 예법을 고집해선 안 된다. 그러니 여성 교무의 복장을 바꾸는 경우 바뀐 복장이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과거 복장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일반인은 바뀐 복장과 과거 복장에서 그 내용상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해서이다. 그렇지만 이미지 형성과 관련해선 표면상 차이는 크다. 그러니 바꿀 복장이 설령 마음에 차지 않아도 원불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 형성을 위해 과감히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은 복장을 바꾸는데 여전히 주저하는 원불교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 부분의 내용은 서시가 가슴을 앓아 근심으로 찌푸린 얼굴 모습이 아름다워 그걸 본 마을의 추녀도 똑같이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 꼴이 너무 흉측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외면했다는 것이다. 추녀는 찌푸린 얼굴이 아름답다는 건 알았지만 찌푸리면 어째서 아름다워지는 지는 알지 못했다.

 대종사께서 제정한 여성 교무 복장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시대에 앞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장도 지금에 맞게끔 당연히 바꿔야 한다. 이것이 대종사의 뜻이자, 또 장자의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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