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글. 조덕상  교무·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세상에는 문명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한국의 청학동 같은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서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 랭커스터 카운티의 아미시(Amish) 마을은 이러한 공동체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들

이곳을 방문하면 자전거나 마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집집마다 빨랫줄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옷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옷을 입고 있어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백 년을 살아왔습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프로판 가스를 이용해서 냉장고나 전등을 켜기도 합니다. 현대 문명을 받아들이는 일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자신의 소신에 따라 이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미시 여성들
                 아미시 여성들
                  마차로 이동하고 있는 아미시 가족
                  마차로 이동하고 있는 아미시 가족

그러던 중 2006년 가을 어떤 남자가 인근 학교에 침입하여 여러 명의 학생을 총으로 쏘아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미시 공동체는 큰 슬픔에 빠졌을 텐데도, 사건이 발생한 지 몇 시간이 되지 않아 그 살인자에게 복수의 마음을 내지 않고 그를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듯 우리도 죄인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종교적 믿음에서 온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아이들은 하나님 곁으로 갔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건은 Amish Grace라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동명의 영화로도 나왔다.
                                       이 사건은 Amish Grace라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동명의 영화로도 나왔다.

 

기본 교육과 럼스프링가

아미시의 아이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과정으로 8년간 공부합니다. 중학교 2학년 과정까지 있는 셈입니다. 이후 청소년기를 보내고 어른으로 살아가겠지요. 이러한 아미시의 교육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한 명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청소년기의 아미시 아이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를 럼스프링가(Rumspringa)라고 합니다. 주변을 돌아다니고 방황하는 시기입니다. 밖에서의 경험을 충분히 한 후에 ‘나는 이 공동체에서 살아가겠다’라고 마음을 먹기도 하고, 공동체를 떠나 새롭게 살 수도 있습니다. 럼스프링가를 마친 후 아미시 공동체의 사람이 되기를 진정 원할 때, 그때 성인으로서 세례를 받고 마을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한 개의 교실로 된 학교에서 8학년(중학교 2학년)까지 공부한다.
                              한 개의 교실로 된 학교에서 8학년(중학교 2학년)까지 공부한다.

 

유아세례와 성인세례

이러한 세례는 아미시가 지닌 종교적 신념과 관계가 깊습니다. 이 신념을 수백 년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의 종교개혁과 만납니다. 중세 후기 유럽에서는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종교개혁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때가 1517년이고, 1525년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더 급진적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전통적인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다시(再) 세례(洗禮)를 한다’라는 의미에서 ‘재세례 운동(Anabaptism)’이 일어난 것입니다.

  세례(baptism)는 그리스도교 의례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만나 자신에게 세례를 해주기를 요청했고, 이에 요한은 내가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인데 무슨 말씀이냐며 반문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장 15-17)

세례는 물을 통한 정화(淨化)의 순간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관계 맺음의 의례입니다. 그 중대함에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받았던 물의 세례를 엄격하게 바라보는 흐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를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견해인데, 물을 머리에 뿌리거나 붓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이 물속에 잠겨야 한다는 침례(浸禮)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교회에서는 이 해석을 따르기 위해 큰 욕조와 같은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미국 유타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도 침례를 택합니다.

보통의 세례이든, 침례이든, 물을 통한 정화의 의례를 중시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그래서 유아 사망률이 높던 중세 시대의 부모 입장에서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어쩌면 ‘세례’일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부모가 아무 힘이 없는 아기에게 세례를 강요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이는 너무도 급진적이기에 그 당시의 관점에서 매우 위험한 생각이었고 강한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재세례 운동의 흐름에 아미시가 있습니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가 1475년 완성한 ‘그리스도의 세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가 1475년 완성한 ‘그리스도의 세례
                                영국 런던 소재의 교회에서 온몸을 물속에 잠기게 하는 방식의 세례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 런던 소재의 교회에서 온몸을 물속에 잠기게 하는 방식의 세례를 진행하고 있다.

탈종교 시대의 재세례

  아미시의 삶에는 ‘종교의 자유’를 간직한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면, 그들은 옛 전통을 지키는 보수적인 공동체로 보일 수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대체로 보장되는 상황에서, 어떤 종교를 믿든, 또는 그 종교 안에서 어떤 해석을 따르든 그 자유가 서로 존중되는 분위기 속에서, 아미시는 더욱 보수적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문이 듭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재세례의 정신도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미시 아이들의 교육이 적절한지, 혹은 시대를 이해하는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 종교를 선택한다면, 이는 겉모습만 ‘재세례’일 뿐, 그 정신에서는 ‘재세례’가 아닐 수 있습니다. 현재는 탈종교의 시대로, 영성을 추구하지만 종교적인 것에 거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탈종교의 시대에서 종교의 자유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이번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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