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신의 차이는?

사람이 만든 최고 종교는 원불교…
하느님이 만든 가장 좋은 종교는 가톨릭(?)

글·사진. 박용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

‘사람이 만든 가장 좋은 종교는 원불교인 것 같다. 하지만 하느님이 만든 가장 좋은 종교는 가톨릭이다. 원불교가 가톨릭을 따라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이 만든 종교와 하느님이 만든 종교는 그 시스템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보산 나상호 교정원장이 지난 4월 7일 대각개교절을 앞두고 첫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가톨릭의 바티칸 공의회 버금가게… 원불교, 3년간 대대적 개혁할 것’이라는 제하의 기사에 대한 댓글을 어느 독자가 달아 놓은 것을 봤다. 즉시 묘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사람과 하느님? 구분이 될까, 실제 다를까? 다르다면 그 차이는 뭘까? 하느님은 사람이 아닌가? 하느님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까? 하느님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서 신으로 화하지 않았을까. 하느님을 믿는 교인들은 “하느님은 인간의 몸을 잠시 빌렸을 뿐 원래 인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나는 기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이 사람이라고 부르는 대종사님도 “사람의 몸을 잠시 빌려 이 세상에 왔다가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고 훌쩍 떠나셨다”라고 하면 왜 안 될까.
여기서 역사와 신화, 그리고 신과 종교의 문제가 제대로 제기된다. 예수가 기독교를 창시한 건 분명 역사적 사실이다. 하느님의 몸을 받아 이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는 사실은 인간이 만든 신화에 가깝다. 일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신화이다. 그 신화가 발전해서 결국 종교를 만들었다. 종교는 역사와 신화 사이에 존재하는 관념적 신념에 가깝다. 종교는 때로는 역사적 사실을 얘기하면서 허구에 가까운 신화적 내용도 듬뿍 담고 있다. 허구에 가깝다는 의미는 인간이 그 실체적 진실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이면(裏面)은 항상 신화를 낳는다. 중국 진시황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진시황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뒤 영토뿐만 아니라 의식적·가치적으로도 통일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통치한다. 광활한 대륙에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살던 방식을 강압적으로 단일화시켰다. 측정방식인 도량형의 일원화, 하나의 글자를 사용하기 위한 문자의 통일 등. 이러한 방식은 분서갱유와 반대파들의 대량살상으로 이어졌다. 강력한 통일정책은 물리적 영토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까지 하나로 만들었다. 진정한 통일을 이룬 것이다. 만약 진시황이 강력한 통일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중국의 통일은 수세기 뒤로 미뤄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진시황의 무자비한 분서갱유와 학살 등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 감춰진 진정한 통일을 이루기 위한 욕망은 신화와 전설로만 전한다. 이와 같이 신화는 대부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세종대왕은 한글창제를 위해 밤낮 없이 신하들을 독려했다. 신하들은 힘이 들고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 오죽 힘들었으면 성삼문은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고향에 내려가 좀 쉬겠다”고 세종에게 간청했다. 세종은 “그럴 시간이 없다”며 붙들어 한글창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다. 결국 세종은 한글창제를 했다.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죽을 고생을 한 신하들은 한글창제의 위대한 업적 이면에 가려 전설과 신화로만 전한다. 신하들이 밤낮을 꼬박 새워가며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그 위대한 업적은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의 이면이다. 그게 신화와 전설로 남는다.
우리 건국시조인 단군도 마찬가지이다. 단군이 역사인지, 신화인지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신화이지만 역사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단군은 또한 산신이 된다.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뒤 산신이 됐고, 그 때 나이 1908세라고 <삼국유사>에 나온다. 어디까지 역사이고, 어디까지 신화인지 구분이 안 된다.
예수님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주장하면 득달같이 기독교인들의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과정을 살펴보면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왕이면서 신이 된 경우와 인간이면서 신이 된 경우의 차이라고나 할까. 당시 인물과 역사적 사실은 대개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원불교는 종교이지만 아직 신화화 되지 않은 부분이 대부분이다. 역사적 사실로만 존재한다. 더욱이 교주인 대종사님은 이적(異蹟)을 이단시한 측면으로 볼 때 종교를 신화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이 미래 종교를 규정하는 것인지, 이전 종교가 밟던 신화적 과정에 대한 폐해를 알았기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믿고 싶은 부분은 있다. 원불교가 종교이기 때문에 그렇다. 미래 종교는 기존 종교와는 다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실생활에서 은혜의 실천을 강조하고, 인과를 중시하는 도덕을 지키며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게 미래 인간의 삶에는 더욱 적합하다고….
우리 역사에 산신이 된 인물이 많다. 단군도 그렇고, 고려 공민왕이나 김유신, 최영, 임경업, 남이 장군 등이 산신이 됐다. 조선 태조, 단종, 세조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면서 인간적으로도 매우 친밀감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최영 장군은 평생 좌우명을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도덕심을 품고 살았다. 산신이 된 현재까지 회자되며 더욱 존경 받고 있다. 이들이 신일까, 인간일까?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