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바람에 흔들리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1
아이 하나 강으로 옵니다. 장난기 가득합니다. 막대기로 찰싹찰싹 강물을 후려칩니다. 강은 상처 가득 안고 유유히 흘러갑니다.
아이 하나 강으로 옵니다. 심술이 가득합니다. 강을 다 메워버릴 듯 돌과 흙을 퍼 나르고 풀을 뜯어 던집니다. 그래도 강은 말없이 흘러갑니다.
아이 하나 강으로 옵니다.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먹구름 하늘을 한동안 올려다보더니 강물에 한숨을 토해냅니다. 강도 함께 긴 숨을 내쉽니다.
강이 묻습니다. “무슨 일이 있니?” 아이가 답합니다. “무서워.” 어느새 세상을 무서워 할 나이가 된 거죠. “세상으로 나가래. 그런데 겁이 나서 두려워.” 아이가 떠났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풀들이 흔들립니다. 강물이 철썩철썩 하릴없이 모래톱만 할퀴고 있습니다.

2
갈대 하나 강가에 뿌리내렸습니다.
뽑혀나갈 듯 흔들리는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뿌리까지 세차게 흔들리고, 바람이 살짝 부는 날에는 고개만 갸웃갸웃거리며 자리를 잡아갑니다.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석 달…. 갈대가 갈대를 만들고, 떠돌던 갈대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 갈대숲이 우거집니다.
가끔, 강물이 몸집을 키워 갈대숲을 세차게 흔듭니다. 그럴 때면 밤새 싸악~ 하고 쓰러지는 갈대들의 날선 아우성에 잠 못 이루는 밤도 길어집니다. 시련이 있기에 지혜가 생깁니다. 갈대들은 하얀 뿌리를 동아줄처럼 엮어 강물에 저항합니다. 어른 갈대는 강물 바닥까지 뿌리를 내려 중심을 잡고, 어린 갈대들은 어른 갈대들의 뿌리 사이에 숨어 몸을 지탱하죠. 그래서 갈대는 조그만 바람에도 심하게 요동치지만, 뿌리까지 흔들리는 법은 없습니다. 어느 해, 큰물이 지나갈 때엔 제법 많은 갈대들이 강물에 실려 떠났지만, 분명 어디 한적한 강가에서 새로운 자리를 잡았을 겁니다.
갈대숲에 바람이 모여듭니다. 새들도 숨어들었습니다. 강물도 이웃집 아저씨처럼 쉬어갑니다. 어린 물고기들이 갈대 뿌리를 연신 간지럽히며 장난을 겁니다. 그리고 오래 잊고 지내던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갈대숲의 정적을 깨웁니다.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요. 갈대숲에 이렇게 많은 생명들이 모여들다니요!

3
낯익은 사람 하나 저 멀리서 걸어옵니다.
강물이 먼저 반기죠. 갈대들도 언젠가 전해들은 얼굴입니다. 검붉은 얼굴에 웃음기 가득 머금은 사람이 손을 높이 들어 흔듭니다. 그 손짓을 따라 갈대가 흔들리고 강물이 출렁입니다.
“잘 컸네. 무섭지 않았니?”
강물의 반김에 어른이 된 아이가 답합니다.
“사람들이랑 어우렁더우렁 엮여서 사는 재미가 있어. 그럼 두려움도 없어져. 저기에서 연신 흔들리는 갈대들처럼, 말이야.”
세상에 뿌리를 잘 내린 그이가 뿌듯한 듯 강물이 제자리걸음을 합니다. ‘천천히 느릿느릿.’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되나 봅니다. 올 한 해, 긴 여정의 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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