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원광>이달의원광
 
제목 : 고진하 목사 시인 2021년08월호

시와 꽃과 예술과
하느님을 낭비하자

고진하 목사 시인

취재. 장지해 편집장

그는 ‘틈’을 사랑한다.
그의 집은 70년 된 한옥이다. 흙과 나무와 돌로 지어졌기에 자주 허물어지거나 틈이 생긴다. 거기에는 갖은 벌레들이 들어와 산다. 그는, 그 존재들과의 동거를 기꺼이 수용한다.
그가 사랑하는 것이 또 있다. 매년 똑같은 날짜에 찾아와 한옥 지붕 아래에 집을 짓는 제비, 앞마당과 뒷마당 곳곳에서 알아서 자라나는 잡초 등 모든 자연의 존재가 사랑의 대상인 것. 고진하 목사(시인)에게 대자연은 그의 삶 자체이자, 글감이 된다.
그는 신학대학교를 다니던 중 메마른 언어의 신학이 싫어 문학을 시작했고,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하면서 시인이 되었다. 목사이자 시인으로 살아가며 더러 갈등과 힘듦도 겪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두 길을 함께 걸어옴을 고맙게 받아들인다는데…. 문학이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의 형식이 되어주었고, 종교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문학의 내용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는 영적인 통찰과 서정적 감수성이 흐른다’고 한 누군가의 말처럼, 그에게 있어 종교와 문학은 샴쌍둥이 같은 존재다. 종교적인 언어를 일상의 언어와 이야기, 비유를 통해 전달하는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편안하고, 그래서 더 특별하다.

● ‘불편당’이라는 집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한 서예가가 저희 집에 놀러 왔는데, 밖에 있는 화장실을 갔다 오면서 ‘아, 이 집 되게 불편하네’라고 하는 거예요. 그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글씨를 써달라고 했죠. ‘불편당’이라고 굳이 이름을 붙인 건, 불편을 즐기면서 좀 더 느리게 좀 덜 소유하고 살자는 다짐이기도 해요. 지금도 우리 집에는 실내에 화장실이 없어요. 불편한 것도 매일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제법 괜찮아요.(웃음)”

불편을 견디지 못하는 시대. 그러나 그는 불편하게 살 때 대자연과 공존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70년 된 한옥에서 13년째 살아가면서 그는 이곳에서의 불편을 있는 그대로 즐긴다. 불편도 불행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하며 웃는 고 목사다.

● 자연과 함께 살면서 자연 그 자체가 되신 것 같은데요.
“여기에 와서 ‘자연과 공생하면서 사는 삶’을 배우며 살고 있어요. 제비학교, 풀학교 등에서 정말 많이 배우죠. 제가 쓴 ‘표절 충동’이라는 시가 있는데, 시인은 표절을 하면 안 되잖아요? 예술가라면 글이든 그림이든 자기 것을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표절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아름다운 공생을 하는 대자연의 모습은 베끼고 싶고 표절하고 싶어요.”

<표절충동> 베끼고 싶은 시인의 시들은 / 이미 낡았구나 // 베끼고 싶은 가인의 노래는 / 이승의 리듬이 아니구나 // 베끼고 싶은 성자의 삶은 /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 (표절 충동은 창조자인 나를 언제나 슬프게 하지만) // 꽃의 꿀을 따먹으면서도 / 꽃에 이로움을 주는 / 나비나 꿀벌의 삶은 베끼고 싶거니 // 이런 생물들의 꽃자리가 되어주는 / 대지의 사랑은 베끼고 싶거니.

● ‘들판에서 광야를 경험하고, 잡초에서 그리스도를 본다’고 한 이유는 뭔가요?
“저랑 집사람은 잡초비빔밥을 잘 해먹는데, 마당에 풀이 없으면 그냥 들판으로 나가요. 벌레에 물리기도 하고, 뱀을 만날 위험도 감수하고, 풀 더미 속을 헤치고 가야 비로소 먹거리를 얻죠. 우리에게 먹을 것도 주고 삶의 지혜도 제공해주는 야생의 들판은 예수가 체험한 광야와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그 잡초비빔밥에 10가지 이상의 풀과, 쌀이나 보리, 된장이나 고추장이 들어가요. 잡초 비빔밥 한 그릇에 하늘과 땅, 사람이 다 들어가는 거예요. 우주가 담긴 거죠. 그렇게 보면 저에게 있어 이 풀들은, 자기를 희생해서 나를 살리는 예수와 다르지 않아요. 풀들의 죽음을 통해 내가 살아나고, 풀들은 나에게 먹이가 됨으로써 부활하는 거죠. 그런 아름다운 순환, 종교적인 순환을 이 잡초비빔밥에서 확인해요.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거창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요. 하느님이 내 곁에 그대로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그는 매 순간 자연을 통해 산 경전을 읽는다. 풀, 새, 나무, 동물들과 함께 살면서 ‘야생에서 사는 존재들의 본질은 명랑인 것 같다’는 가르침도 얻었다. “예수나 붓다 역시 녹록치 않은 삶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랑’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늘 간직하고 살아온 것 같다”고 말하며 웃는 그다.

● 사모님과 함께, 잡초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갖고 계시는데요.
“집사람과  2015년에 <잡초레시피>, 2017년에 <잡초 치유 밥상>이라는 책을 냈을 때 참 기뻤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그 전까지 힘든 삶을 살아왔거든요. 하지만 그런 힘든 과정이 없었다면 잡초를 만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에게 힘든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소위 바닥 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땅 위에 낮게 엎드려 사는 비단풀, 질경이, 토끼풀이 보였던 거죠. 잡초는 쭈그려 앉아야 보이니까요. 힘든 과정을 통해 바닥의 잡초를 발견하고, 그래서 저나 집사람이 인생길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보면 인생은 참 묘하고, 삶이라는 건 참 신비로워요. 가난과 역경을 통해 길이 열리기도 하니까요.”

그의 아내 권포근 사모는 잡초요리 전문가다. 이들 부부에게는 뒷마당이 곧 장터인 셈. 따로 심지 않아도 저절로 날아와 자란 각종 풀들이 그들에겐 생명을 유지케 하는 존재이자, 영성을 채워주는 에너지다. 고 목사가 마당에서 막 뜯어 건넨 괭이밥을 입 안에 넣어 씹자, 시큼하면서 신선한 맛이 느껴졌다.

● 힘든 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힘들었던 순간들을 견디며 얻은 지혜가 있다면 그건 ‘주어진 것에 자족하며 살자’예요. 어떤 일이 나와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Yes 하며 받아들이는 거죠. 하늘이 나를 굴리는 대로 사는 거예요.”

<풍물시장에서> (상략) … 토종약초 파는 가게 옆 / 호호백발 할머니 난전에 앉아 인절미를 빚고 있네. / 둥글고 길게 만든 찹쌀반죽을 칼로 뚝딱뚝딱 썰어 / 팥고물에 묻히기도 하고 / 콩고물에 묻히기도 하네. // 그래, 바로 저거야. / 이젠 할머니 손길에 저를 내맡긴 인절미처럼 살 거야. / 콩고물에 굴리면 콩인절미로, / 팥고물에 굴리면 팥인절미로, // 누가 뭐라 해도 이젠 / 하늘이 굴리는 대로 살 거야. 그럴 거야.

● 다른 종교와 사상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깊으신데요.
“대학시절에 변선환 교수님이라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분에게 이웃 종교들을 공경하고, 이웃 종교들을 통해 배우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지요. 저 역시 불교며 유교며 힌두교 공부를 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생각이 더 넓어지고 깊어졌어요. 그래서 ‘내가 예수를 믿는 종교적 사유가 더 깊어지려면 다른 종교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해요. 공부를 하고 나니까 종교를 보는 눈이 확장되는 경험을 한 거죠.”

● 미래 시대의 종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아브라함 헤셀이라는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당신이 놀라는 감각을 잃어버릴 때, 헛된 자만심으로 우러러보는 능력을 위축시키는 때, 우주는 당신 앞에 장터가 되고 만다.’ 종교는 결국 생명이라는 무궁한 신비 앞에서 우러러보는 마음을 갖는 거라고 생각해요. 종교 역시 지구의 한 형식이기 때문에, 지구가 없어지면 종교도 사라질 수밖에 없죠. 우리가 거만 떨 필요가 없어요.”

대자연의 일부에 불과한 인간들이, 마치 대자연의 우두머리인양 행세 해 온 데 대해 강한 일침을 더하는 그. 토마스 베리 신부의 ‘살아있는 생명들은 창조적 자발성을 가지고 활동한다’는 문구를 소개하며, 돈만 내면 모두 파괴하거나 망가뜨려도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 나야 한다고 말한다. 우주와 지구와 그 안에 살아있는 생명들의 움직임과 순환에 담긴 신비로움을 인정할 수 있다면, 인간은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 물질만능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사실, 근래 인류역사 속에서 지금처럼 잘 살았던 시대는 없어요. 물질의 낭비는 멈추고, 오히려 시나, 꽃이나, 예술이나, 또는 하느님이나 이런 것을 낭비할 때죠. 한살림교회를 할 때 교회표어가 ‘시와 꽃과 예술과 하느님을 낭비하자’였어요.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는데 더 잘 살려고 하면서 지구를 계속 파괴하는 것 같아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톱질하는 사람들’이라는 시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자기가 톱질하고 있는 나뭇가지가 자기가 깔고 앉아있는 나뭇가지라고 생각을 못하는 거죠.”

● 삶의 이정표로 삼고 있는 말씀을 전해주세요.
“‘귀한 것이 흔한 것입니다.’ 우리 집 철학이에요. 태양, 공기, 물 모든 게 흔하지만 고마움을 잘 모르고 살죠. 어머니의 사랑도 흔하고, 우리 집 마당의 잡초들도 모두 흔한 것들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하지 않은 것, 예를 들면 금은보화, 오일, 돈이 되는 무언가를 귀하게 여기지요. ‘흔한 것이 귀한 것’이라는 화두는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자, 가장 좋은 구호예요. 흔한 것들로 우리를 살게 해주시는 조물주는 정말 은혜로운 분이고, 그 은혜는 한량이 없어요. 행복은 나에게 주어진 것에 자족할 때 깃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