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마음으로 짓다

이정숙 섬유예술 자수 작가

활짝 핀 매화꽃에서 새들이 노닌다.
새의 날갯짓이 언제든 병풍 밖으로 날아갈 듯 역동적이다. 매화꽃도 방금 꽃을 틔운 듯 생명력이 넘친다. 섬세하게 그려진 한국화인가 싶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수실의 입체감이 느껴진다. 전통자수로 만들어진 8폭 병풍에 감탄하고 있으려니, 이정숙 섬유예술 자수 작가(국가자수기능사 보유자)가 “실과 바늘로 할 뿐이지, 자수는 예술이다. 그림보다 더 섬세하다.”고 말을 건넨다.
“좋은 작품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행하느냐에 따라 나오는 결과물이지요.” 지난 10년 동안 수십 번의 해외전시를 진행하고 올해 4월에는 프랑스 유네스코 본부 호안미로전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초대전을 마친 그.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정부가 선물로 증정한 ‘화문수 자수보자기’(교황청 바티칸미술관 소재)도 그의 작품이었다. 그러기에 ‘겸허한 마음이 나의 마음가짐.’이라는 그의 말이 의외로 들리는데…. 길게는 4~5년, 짧아도 1년이 꼬박 걸리는 작업이 이 작가에게는 언제나 특별하다.
“한 땀 한 땀 기도하며 수를 놓아요. 나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수행의 시간인 거지요.” 고된 작업에 몸은 힘들지만, 삶에 대한 겸손을 깨닫게 된다는 그. 그러다 보니, 그의 작업은 어느 하나도 허투루가 없다. 나만의 천과 실을 만들기 위해 일반 주단을 한 번 더 염색하고, 실도 염색해 자신이 원하는 색을 만든다. 그의 채색이 아름답다고 호평 받는 이유는 기존 실의 색상이 1~4도까지라면 그는 8도까지 만들어 그림을 풍부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기성작품이 아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제일 최근 작품인 ‘팔보문’은 진리의 바퀴인 ‘법륜’을 중심으로 티베트 불교의 여덟 가지 상징물을 전통 자수로 표현한 거예요. 15세기 직조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자수로 그 장대함을 표현하고 싶었지요.” 여기에서도 그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데…. 도안은 15세기일지라도, 채색을 달리하고 다양한 자수기법으로 현대적 감각과 색채를 더한 것이다. 견삭신장도도 라인만 그려진 것을 그 안을 자수로 채워 신장의 입체감을 표현했다. 실제로 전시회에서 작품을 본 사람은 신장도의 위용과 살아있는 듯한 근육(?)과 수염에 놀란다고.
“어떤 작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작품 기획과 준비에만 보통 1년 6개월이 걸려요. 도안과 자수기법 선정, 채도 계획, 염색 등으로요.” 작품 대부분이 대작이다 보니 수를 놓는 작업도 1~2년이 넘을 때가 많다고. 예전에는, 여명이 틀 때 비로소 손을 멈추었다가 한 두시간을 자고 일어나 다시 수를 놓았던 적도 있다며 그가 웃어 보인다.
“물론 ‘왜 이런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든 적도 있어요. 하지만 언제나 답은 우리나라 전통자수의 우수함을 세계 각국에 알리고 싶다는 거였죠.” 2010년, 한 인터뷰에서는 “어디에서 세계 전시를 하고 싶냐?”는 물음에 “일본, 미국, 프랑스 등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말대로 해외에서의 전시회 요청이 이어져 미국과 일본,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전시회를 열고, 올해는 독일에서의 전시를 준비 중이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에이전시 없이 혼자 해외전시시장을 개척하고 전시 준비를 해온 그이다.
“유네스코 전시를 하면서 느낀 것이 많아요. 전시회에 모인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작품을 보며 행복해 하는 걸 보면서 문화는 하나의 공통점이 된다는 걸 느꼈지요. 인류애였어요.” 그동안은 자신의 성찰을 위한 작품세계였다면, 이제는 인류를 위한 작품을 하고 싶다는 그. 편하게 웃어 보이는 그의 뒤로, 언제가 그가 여행에서 느꼈던 감동이 그대로 푸른 대나무 숲이 되어 벽에 걸려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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