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 원불교 상시일기가?

10년간 스리랑카 아이들에게 장학금 지원, 최서연 교무

취재. 장지해 기자

“아이들이 기다리는데 어떻게 오지 않을 수 있겠어요.”
지난 4월 21일에 벌어진 스리랑카에서의 부활절 폭탄 테러. 이에 스리랑카가 여행 자제국으로 지정되자 최서연 교무(외국인센터)의 고뇌는 깊어졌다. 스리랑카의 시골 4개 마을(바달가마, 나라말라, 마스포타, 비지타프라) 아이들에게 장학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해 만반의 준비를 하던 터. 주변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가야 하냐며 말렸다. 하지만 여러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올해도 스리랑카행을 결정했다. “아이들이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교무님(Gyomunim)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스리랑카 아이들이 점검하는 상시일기

“다음, 네뜨미~.”
이름이 불리자 뱅크북(통장)과 밸런스북(지출기입장)을 챙겨 최 교무에게 오는 아이들. 그런데 함께 내미는 노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뭔가 하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더니, 현지용(?) ‘일상 수행의 요법’이다. “교무를 일 년에 한 번 만나더라도, 뭔가 공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상시일기 점검을 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이에 쉽게 풀어 만든 현지 버전이 바로 ‘프라미스 투 붓다(Promise to Buddha)’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자성의 정을 세우자.’는 ‘I'm Peaceful.(나는 평화롭다.)’ ‘감사 생활로 돌리자.’는 ‘I thank everyone for everything.(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감사한다.)’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는 ‘I like to help others.(나는 다른 사람 돕기를 좋아한다.)’
우리가 일상 수행의 요법을 대조하듯, 아이들 역시 매일 이 조목을 적고 외우며 생활을 점검하게 하는 것. 계문 번수를 체크하듯 상시일기를 점검해 가장 우수한 사례를 보여준 바달가마 지역의 학생 네뜨미(Nethmi)는 “프라미스 투 붓다를 기록하면서부터 실제로 옛날보다 화를 덜 내게 됐고, 어리석은 게 적어졌다. 생활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라고 말해 방문단을 기쁘게 했다. 마스포타 지역의 학생 파신두(Pasindu) 역시 “이 조항들은 삶을 잘 살기 위해 아주 필요한 덕목이다. 상시일기 점검 덕분에 올A학점을 받았다.”며 자랑하기도.
최 교무가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데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 일 년에 세 번 교무님에게 편지를 보내야 하고, 지출기입장을 잘 기록해야 하며, 상시일기도 잘 써야 한다. 조건 아닌 조건(?)을 잘 수행한 아이들에게는 1년 장학금인 1만2천 루피(한화 약 10만원)에 추가 장학금을 더 주기도 한다. 약속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성인이 되었을 때 더 나은 역할을 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쉴 틈 없는 순교 일정

최 교무의 스리랑카 장학사업의 역사는 사실 2001년부터 시작됐다. 우연한 기회에 스리랑카 의대생 한 명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한 것이 벌써 20여 년에 가까워진 것. 그러다가 외국인센터에서 인연을 맺은 스리랑카인들의 현지 사정을 전해 들으며 초·중·고등학생들에게까지 확장한 게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의대생들에게는 1년에 4만5천 루피(한화 약 40만원)를 장학금으로 지급해요. 어린 학생들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의대생들에게는 ‘장학론(LON)’을 조건으로 빌려주고 의사가 되면 원금을 갚아서 다른 어려운 학생을 돕겠다는 서약을 받죠.” 실제로 작년 방문 때 만난 의사 한 명은 그동안 받았던 장학액 전부를 현금다발로 들고 나와 방문단을 놀라게 했다는데….
그의 스리랑카 방문 일정은 늘 매우 촉박하다. 쉽게 말해 ‘순교’가 주를 이루기 때문. 일정과 일정 사이사이, 최 교무는 현지에서 그의 이동 전부를 돕는 틸락(Thilak) 씨와 함께 장학금을 받는 대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하고, 의사가 된 이들을 여럿 만난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원불교 장학론으로 키워낸 현지 의사가 벌써 40여 명. 그러니 이들의 가정과 병원을 찾아다니는 일정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닌 것이다.
본래 스리랑카 교화에 서원이 있었던 최 교무. 그러나 현지에 교당이라는 건물을 만드는 일보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장학론으로 인연을 맺은 현지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언젠가 스리랑카 땅에 본격 교화를 시작하는 이에게 큰 힘이 될 거라고 믿어요.” 그의 장학사업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해외교화 모델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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