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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대산 월정사 정념 스님 2019년02월호

오대산 월정사 정념 스님
세상을
등지지 않고,
삶의 현장을 버리지 않고

취재. 장지해 편집장

‘절에서 한 10년 정도 밥 얻어먹고 나면 자유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생활. 그러나 스님이다, 절이다, 불법이다, 불교다, 하는 어디에도 걸림 없는 자유인의 삶을 살고 싶었던 것과는 달리, 결국 출가자가 되었다.
이를 두고 “밥을 먹으니까 밥값을 해야 할 일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이래 걸리고, 저래 걸려버린 거지요.”라고 말하며 ‘허허’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정념 스님. ‘밥값을 하려다 보니….’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어릴 때부터 스님들에게 듣는 불교 이야기들이 귀에 고스란히 남곤 했던 걸 보면 보통 인연은 아닐 터다.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불교’ ‘대중과 함께하는 불교’ ‘화석화되지 않은 불교’를 주장하며 세상을 향해 산사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정념 스님. 16년째 운영되고 있는 월정사 출가학교를 비롯, 천년 숲 선재길 걷기, 산사문화재 등을 통해 산사의 마당을 온통 내놓은 것만 봐도 그렇다. 어디 그뿐인가. 작년 7월에는 오대산자락 초입에 ‘자연명상마을(옴뷔, OMV, Odaesan Meditation Village의 약자)’이라는 ‘힐링 플랫폼’을 만들어, 탈종교화시대에 특정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편안히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게도 했다.
산중의 불교가 잔잔하고 고요한 모습 그대로 머물기보단, 저잣거리로 내려가 세상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정념 스님의 이야기에서 ‘불교의 현대화’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난다.

● 안거 기간임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구 본사 주지소임을 보면서도 안거를 챙기시는 게 참 인상적인데요.
“어떤 사람은 ‘주지에만 전념하면 되지, 뭐 하러 선원 입선부터 결제까지 챙기느냐.’고 말해요. 그런데 저는 왜인지 모르게 선원 결제 없이 주지만 전념하면 뭔가 빈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소임을 보면서도 참선을 통해 수행하는 일이 둘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게, 궁극적인 선불교의 지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념 스님은 이(理)와 사(事)를 병행한다. 정중(靜中)에 철저하면 동중(動中)에 일을 통해서도 그 힘이 반드시 발휘된다고 여기기 때문. 더 나아가 성직자라는 상도 내려놓고, 대중 속으로 돌아가는 일이 선불교 정신을 꽃피워내는 진정한 역할임을 강조한다.

● 최근 스님께서 만든 자연명상마을 ‘옴뷔’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입니다.
“작지만 오랜 원력이 있었어요. 도심은 발전과 더불어 삶의 공간이 너무 인위화, 규격화, 반환경적이 되어가고 있죠. 그러다보니 재충전과 자연으로의 회향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요.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은 오대산의 자연 환경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편안하게 쉬었다 가기도 하고, 각자의 수행법으로 수행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전통 불교문화가 가진 역사와 의미는 기존의 도량에서 그대로 지켜가되, 지금 시대가 요청하는 심플하고 새로운 문화의 모델을 자연명상마을을 통해 제시해보고 싶었다는 게 정념 스님의 말. 영성을 정화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역할을 해내는데 있어 ‘어느 종교’ 이름을 붙이는 게 중요한 건 아니기에, 종교적 색채도 탈락시켰다. 월정사와 멀리, 오대산의 초입에 명상마을을 꾸린 것도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부담 없이’ 오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 ‘생활 불교’ 혹은 ‘화석불교 탈피’에 대한 목소리도 많이 내고 계신데요.
 “2004년에 월정사 주지로 부임을 받으면서 ‘이 산중 불교가 현대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문화’는 살아서 계승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통 문화도 보존할 건 보존해가야 하지만, 이 시대적인 문화와 융합해 또 새로운 이 시대적 생명을 불어넣어야 하는 거죠. 그래야 세상에 의미와 메시지를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새로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소재가 필요했다. 2004년부터 출가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그래서다. 일회성으로 ‘출가’경험을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단, 출가학교에서의 경험이 일반적인 삶의 현장을 도량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큰 대아(大我)로 살아갈 수 있게 하고자 한 것. 또한 출가학교 출신들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운동을 세상 속에서 일으킬 수 있는 좋은 인재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도 기대한다는데…. 특히 16년 동안 3천여 명이 다녀간 출가학교에서 약 10%에 달하는 진짜 출가자들이 배출되었다고 하니, 그 의미를 더욱 상기하게 한다.

●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종교의 모습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종교인은 세상을 한걸음 앞서갈 수 있는 선각자적 역할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늘 해요. 분별하지 않는 자리에서 보면 중생과 부처가 따로 있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어찌됐든 중생의 아픔과 괴로움, 삶의 어려움, 고통이 존재하니까요.
세상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종교가 이 땅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세상을 정토(淨土)로 장엄해내는 어떤 방편이 영원히 유효하려면,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생의 목마름에 응답해줄 수 있어야 해요. 종교인이라면 몸은 비록 산속에 머물지라도 ‘미래에 과연 세상이, 불교가, 내가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늘 깨어있어야 하는 거죠.”

‘재욕행선지견력(在欲行禪知見力) 화중생연종불괴(火中生蓮終不壞)’라는 말을 인용하며, ‘욕망 속에서 얻은 지견의 힘은 불 속에 핀 연꽃과 같아서 끝내 시들지 않음’을 강조하는 정념 스님. 그가 동(動)과 정(靜), 혹은 이(理)와 사(事)를 병행하는 이유도, 욕망이 수없이 부딪히는 우리의 실제 삶 속에서 이뤄지는 수행이라야 진정한 귀결임을 알기 때문이다.

● 성보박물관도 만드셨고, 산사 안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들도 진행되던데요,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성보박물관 건물을 왜 현대식으로 만들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또 고요해야 하는 산사에서 어떻게 족구대회나 문화축제를 하느냐는 반대 이야기도 좀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14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도량에 새로운 걸 받아들인다고 해서 기존의 전통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달라지진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우리가 전통문화라고 하는 것들도 실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 여러 시대의 문화들이 만들어진 건데, ‘고려시대 문화가 최고야, 조선시대 문화가 최고야.’ 하면서 현대인들에게 과거의 것만 의미 있다고 외칠 수는 없잖아요? 지금 살아가는 ‘이 시대의 문화’를 담아내는 일은 너무 자연스러운 거죠. 살아있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게 문화니까, 전통적으로 지킬 건 지키면서도 융합하고 변화해야 새 생명을 만들죠. 천편일률적으로, 고정관념으로, 똑같이 해야만 된다고 하면 그건 죽은 문화예요.”

● 탈종교화 현상, 종교무용론 등 종교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종교가 가진 교의적이고 교조적인 틀에서 벗어나야 해요. 과거에는 특정 종교가 가장 높은 가르침으로 절대성을 지녔지만, 지금은 온 세계의 다양한 종교들이 만나고 문화가 되고, 그러면서 변해가고 있어요. 그리고 결국 여러 종교들의 가장 높은 가르침은 하나로 통하잖아요? 그걸 하느님이다, 일원상이다, 서로 표현을 달리할 뿐이죠. 또 요즘 서양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서도 많은 종교들이 명상문화에 접근해가는 것 같아요.
묵상, 기도, 참선 등의 방법이 결국은 마음과 영성을 위한 전통과도 같은 거잖아요? 현대인의 심리적, 정신적 병리현상의 치유 해법이 결국은 명상문화 속에서 만들어질 거라고 봐요. 시대가, 트랜드가, 대중의 요구가 그러니까요. 종교는 그 시대 중생의 고통과 요구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측면에서, 각 종교가 자신의 전통성 속에서 명상하는 법을 현대의 기법과 접목시킨 프로그램 콘텐츠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 과학의 발전 속에 있는 종교의 역할을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과학의 실증된 내용들은 받아들여야 하고, 오히려 그것이 불교의 교리를 더 명료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봐요. 4차 산업시대는 물론이고 이 시점에서도 탈종교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겠죠. 과학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에 종교가 이야기했던, 세계를 바라보고 존재를 바라보았던 관점들이 이젠 상당 부분 과학으로 해명되고 해체되는 그런 시절을 맞이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라는 관점, ‘마음이 형성되는 것도 결국 몸의 다양한 육근의 의식구조와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적 관점에 대한 해석을 이제 과학에 의해서 더 명료하게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방법들이 과학적 방법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확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해내지 못하면, 자칫 세상과 동떨어진 종교가 돼요. 종교들이 ‘그건 과학이지 종교의 영역이 아니야.’ 하고 과학의 영역에 무관심할 게 아니라, 현대과학이 규명한 내용을 잘 활용해서 오히려 더 과학적인 종교로 거듭나야 해요.”

● 세상 사람들이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법을 일러주세요.
“‘회광반조(回光返照)’ 하세요. 마음을 거둬 들여서 비춰봐야 해요. 안으로 반조 없이 바깥 환경으로부터 구하는 행복은 진정한 보배가 아니에요. 참선(명상)을 통해 내 안을 살펴서 봐도 봄이 없고, 어디에도 주(駐)한 바 없는 마음을 만드세요. 그렇게 마음의 힘이 쌓이면, 세상살이의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연꽃을 피워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