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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숲에서 얻는 작은 행복 2018년09월호


숲에서 얻는 작은 행복

두려워 마라
화내지 마라
용서하라

취재. 노태형 편집인

아이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흐릅니다.
“엄마, 있잖아. 그거~.”로 시작되는 자기 주변 이야기가 쉴 새 없이 흘러넘치면, 엄마는 그저 “응, 그래~.”로 응답하며 눈길을 숲으로 던지죠. 아마 아이의 마음이 모처럼 편안한 모양입니다. 도시에서는 꽤 까탈스럽고, 벌레라면 기겁을 하는 아이인데도 숲길에서는 그저 부채 하나로 벌레를 쫓으며 길을 걷는 게 말이죠. 엄마는 내심 그런 모습을 신기해합니다. 애초 마음먹었던 짧은 산책길이 어느새 산 하나를 빙 둘러오는 것으로 이어졌으니까요.

사실 아이의 숲은 늘 편안했습니다. 아니, 엄마의 긴 기다림이 숲처럼 이어진 거죠.
칭얼대고 투정부리고 고집을 피워도 엄마는 달래고 참아가며 그 숲을 가꾸어 왔습니다. 어디 천둥 번개 치는 날 없었겠습니까. 가끔은 소나기 쏟아지고 숨 막힐 것 같은 무더위가 한동안 맴맴 도는 날들도 모두 이 숲길처럼 지나온 거죠. 기다렸더니 어느새 스르륵 자리를 잡고 엄마 걱정도 가끔 내뱉으니, 그 모습이 대견해 슬쩍 숨은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아마 아이의 숲은 가족과 함께 서 있었기에 든든하고 안심이 되었겠죠.

다 큰 아이의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립니다. 그렇게 20년 넘는 세월이 훌쩍 지났네요. 숲처럼 말이죠.
숲을 가장 잘 간직하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그 첫째는, 인간이 간섭하지 않는 것일 겁니다.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숲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숲에 관여되면서 숲은 불타고 무너지고 황폐화 되었습니다. 다시 숲을 살리겠다는 것이 오히려 숲의 변형을 가져와 망가뜨립니다. 그래서 불에 탄 숲은 그대로 두는 자연복원이 가장 빠른 보호라고도 합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기다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긴 합니다. 간섭하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으니까요.

경남 함양에는 인간이 가꾸어 놓은 천년 숲이 있습니다.
함양 상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숲으로 알려져 있죠. 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군수로 부임한 최치원이 조성한 것이라고 하니, 그 세월만도 천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곳에는 현재 서어나무, 굴참나무, 회화나무, 개암나무 등 2만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그 광경이 아름다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하죠. 자기 당대에 덕을 볼 생각을 가졌다면 숲 조성은 엄두도 내지 않았을 텐데요. 이처럼 숲은 오랜 세월 기다리고 참고 보호하며 길러내야 거목이 되나 봅니다.

숲을 지나며 생각의 길을 거닙니다.
꼬부라진 산길만큼이나 가팔랐던 순간이 있었는가 하면, 크고 작은 무수한 수풀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스치며 인연을 맺어 왔습니다. 가끔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처럼 설?는가 하면,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지나온 순간들도 있었죠. 두려움에 불같이 화를 내며 충돌했던 사람들. 이 모든 게 나의 숲이 너무 작아서 그랬나 봅니다. 이제 다시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웁니다. 숲에서요.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제 용서하고 품으며 살아요.’ 숲의 속삭임이 귓가에 맴돕니다.
더위가 한풀 가시면 숲가에서 노닐어 보세요. 그럼 숲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