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사람 바다를 닮다
부산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에서

바닷가 벼랑에 낡은 집들 다닥다닥 모여들었습니다.
질경이 풀씨 닮아 질기게도 엮여 있습니다. 누구는 전쟁을 피해서 왔다하고, 누구는 삶이 고달파 고향을 등졌다고 합니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의 피난처죠. 바닷바람은 그들의 욕심을 뺏는 대신 가장 안전한 영토를 내주었습니다. 도란도란 사는 게 정말 행복한 거라고 속삭이면서요. 부산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에서 말이죠.
이곳은 아직도 한국전쟁 이후 만들어진 피난민 역사의 아픔과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늙은 아버지의 힘줄처럼 굽이진 골목길이 그렇고, 이웃과의 경계가 담이 아닌 벽돌 한 장의 벽이라는 사실에 놀라죠. 어쩌면 이웃 간의 정은 그만큼 더 가까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산에 사는 사람 산을 닮고 바다에 사는 사람 바다를 닮는다 하죠.
지천명의 나이에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도 검은 바다가 고여 있습니다. 간혹 철썩철썩 파도소리가 주름살 사이로 일렁이죠. 어느새 30년 세월이 또 흘렀습니다.  
“이곳에서 조그만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도 가르쳤어요. 그때 장만한 집이 재개발 된다고 한지가 20년 가까이 됐는데, 아직도 요원하네요.”
기다림은 욕심의 갈고리가 되었다가, 기다림은 다시 분노의 꽃이 되었다가, 기다림은 결국 닳고 닳아 무심한 바위가 되었나 봅니다. 그의 주름진 얼굴 사이로 빈 배 한 척 쓱 지나가는 걸 보면 말이죠.
이곳서 50년을 산 할머니는 어린 시절 피난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북한군이 딱 우리 마을까지 내려온 거 같아요. 그래서 산 하나를 넘어 이웃 마을로 피신했죠.” 아마 할머니는 그때만 해도, 이 피난지로 시집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그녀 역시 이곳에서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로 평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 할머니의 몸에서는 평화로운 바다향기가 풍겨 나옵니다.
“이곳 바다는 해질녘이 좋아요. 가만히 앉아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죠.”
할머니에게 바다는 삶의 여백이자, 추억을 건져주는 한 폭의 그림이 되었습니다.

봄을 싣고 온 밤배가 닻을 내립니다.
은빛 물결이 잔잔히 흐르는 걸 보니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나 봅니다.
이러면 곧 여름이 밀고 올까 걱정입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창문을 여세요. 봄날은 잠깐 스쳐가는 바람이랍니다.
말은 거칠어도 속마음은 따듯한 사람들. 부산 영도에서 봄날의 그리움을 건져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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