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현생을 산다는 것은, 결국 내생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속 깊은 걱정입니다.
낙엽이 질 때, 잎이 뚝 떨어진 자리에는 다음 잎이 나올 자리인 ‘움’이 생깁니다. 올해에 영양가를 잘 흡수한 움은 다음 해에 반드시 잘 자라지만, 그렇지 못한 움은 다음 해가 아무리 좋아도 크게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지금 이 현생을 어떻게 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생사대사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애착과 탐착입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집착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봐서 그 집착을 녹여내고 그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이 중요합니다. 집착한 상태에서 열반을 맞이하면, 그쪽으로 향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총부에 와서 살겠다고 약속했던 한 교도님이 어느 날 못 오겠다고 하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 집에 감나무 몇 주가 있는데 가을이 되면 감이 어찌 그렇게 잘 익는지 그걸 두고 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좋든지 나쁘든지, 어느 한편에 집착을 하면 그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집착이 무섭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과거든 미래든, 어딘가에 집착해서 마음을 굳히면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내가 현재 집착하고 있는 그 대상도 결국엔 공(空)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무집착(無執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101. 12. 04. 故 설타원 전덕업화 대호법 열반 추도식)

정기일기를 꼭 쓰길 바랍니다. 하루에 노트 반장 정도로 끊임없이 쓴 것이 모이면 자서전이 되고, 법문집도 됩니다. 글을 쓰면 머리를 향상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떤 분은 “하루에 다섯 가지 감사한 일을 제목만이라도 기재하다보면, 늘 감사하고 보은하는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삶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가 달라진다는 의미겠지요.
정기일기에는 감각감상과 심신작용처리건이 있는데, 감각감상의 경우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다.’ 정도의 감상일기에 그치기가 쉽습니다. 현상 속에 숨어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것이 심화되면 각(覺)이 됩니다. 단순히 ‘나는 무엇을 보고, 누구와 재미있게 이야기했다.’에 그치지 않고 원인과 과정을 생각하면서 ‘아 이래서 그랬구나.’ 하는 것을 찾아 쓸 줄 알아야 깊은 지혜가 생깁니다.
심신작용처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신작용처리를 기록하는 것은 마음공부를 실재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기분이 굉장히 나빴다. 그래서 화를 벌컥 낼 생각이 났는데, 이러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라앉히고 또 가라앉혔다.’는 줄거리를 직접 글로 쓰면 자기 마음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보다 쉽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됩니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법과 마를 구분하는 혜안이 생깁니다. 그것을 심안(心眼)이라고 합니다.
또, 일기를 쓸 때는 깊이 생각하고 법문에 연결해서 써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세상을 쳐다볼 때 법문에 대조해서 세상을 봐야 합니다. 세상의 여러 현상에 대해 더 깊숙한 인과관계를 잘 발견하는 방법은 법문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일기를 쓰면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의 폭이 넓어집니다. 대종사님과 선진들이 사용한 언어를 나의 것으로 익혀야 합니다. 문화전승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문화가 이어지기도 하고 끊기기도 합니다. 어떤 언어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101. 12. 18. 원불교학과 서원관 해제식)

원불교가 오늘의 역사까지 흘러온 것을 살펴보면서 요즘 특히 느끼는 것은 ‘아, 정말로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구나.’입니다. 세상에 공들이지 않고 되는 일은 없습니다. 공을 들이면 법신불 사은님께서는 반드시 공들인 만큼 돌려주십니다.
마이산에 가면 돌탑이 있지요. 무너지지 않고 오랜 세월을 잘 버티는 것이 신기해서 돌탑을 쌓는 분에게 물었더니 “돌을 쌓기 위해서 연구도 많이 하고, 기도도 올리고, 무엇보다 청정한 마음으로 쌓으면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공들여 쌓은 돌탑이라야 무너지지 않듯, 우리도 마음과 일과 사람에게 공을 들이는 한 해가 되어야겠습니다.
돌탑을 쌓는 것은 그 결과가 현상으로 나타나니까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보이지 않아서 공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공들이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가치 있으며, 또한 영원한 공을 들이는 것입니다.
내 안의 운전수, 마음 소, 그 고삐를 잘 잡아서 운전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심 우(牛)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로 뭉치면 힘이 생기고, 뭉치지 않으면 흩어집니다.
운동을 통해 몸에 근육과 힘이 생기듯, 주문을 많이 외우거나 좌선과 기도를 많이 하면 마음에 근육이 생깁니다. 그것이 심력(心力), 마음의 힘이 됩니다. (102. 01. 01. 신정절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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