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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분별하는 마음이 흔들리는 거요 2017년02월호

분별하는 마음이
흔들리는 거요

글 김광원

선불교에서 달마는 초조(初祖)이다. 오조(五祖) 홍인으로부터 법을 물려받고도 육조(六祖) 혜능(638~713)은 반대파를 피해 15년간이나 은둔하며 지내야 했다. 그런 육조 혜능과 관련하여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인종 법사가 열반경을 설법하는 중에 바람이 불고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 한 스님은 “깃발이 흔들린다.” 하였고, 다른 한 스님은 “바람이 흔들린다.” 하며 논쟁을 하게 되었다. 이를 본 혜능은 말하였다.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자 스님들은 “그럼 무엇이 흔들린다는 거요?” 하고 물었다. 혜능은 “당신들의 분별하는 마음이 흔들리는 거요.”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인종 법사는 깜짝 놀랐다.
당연히 바람이 불기에 깃발이 흔들리는 것이고, 깃발이 있기에 바람이 어떻게 불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혜능은 전혀 엉뚱한 말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여기서 바람과 깃발의 관계는 원인과 결과, 인연 작용 또는 연기 작용 등의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혜능은, 평소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하는 등의 현상은 끝없이 꼬리를 물고 생멸하는 것들에 불과한 것일 뿐, 우리들 존재의 참다운 실체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통쾌하게 전해준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시사에서 최고의 명시 중의 하나로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일컬어진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이 작품 전체가 구구절절 아름답게 전개되고 있지만, 사실 이 시의 핵심은 바로 이 끝부분에 들어 있다. 님의 침묵! 님이 없는 부재의 상태에서도 님은 떠난 것이 아니라 말하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사랑 노래가 터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별과 만남이라는 현실적 처지를 떠나 내 ‘마음’에 품고 있는 ‘님’은 시간과 공간을 떠난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님의 침묵’은 바로 그런 이치를 보여주는 시다. 여기서 물론 ‘님’은 조국이요, 부처요, 애인이라 하겠고, 그러기에 이 시는 시대성, 사상성, 문학성 등의 상징성을 품는 뛰어난 작품이 된 것이다. 위의 육조 혜능의 한마디가 주변을 모두 놀라게 했듯이, 일제강점기에 이렇게 뜨겁고 초월적인 노래를 불렀다는 점에서 참 통쾌한 시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공심(空心)’ 즉 ‘텅 빈 마음’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우리들 속세의 세계에서는 대체로 이별은 슬픈 이별일 것이요, 만남은 기쁜 만남일 터이나, 상대성을 벗어난 텅 빈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별은 이별이면서 이별이 아닐 수 있고, 이별은 또 얼마든지 만남도 될 수가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처처불상 사사불공’을 말하고 싶다. 텅 빈 눈으로 보면 삼라만상이 다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 부처라는 것이고, 다 부처이기에 이 부처 앞에 서는 우리의 일은 곧 모두 불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특권 의식이 판을 치고, 특권층과 특권층이 엮어져 갑을 관계의 불균형한 세계 구조가 이루어지면 세상은 ‘아수라’ 세계가 된다.  
우리나라는 바야흐로 시민의 힘을 통하여 ‘촛불혁명’을 이루어내고 있다. 일백만, 이백만 촛불이 모여도 불미스런 사건 하나 일어나지 않고, 집회가 끝난 뒤의 거리에 휴지조각 하나 남지 않는 풍경을 보며 서구의 여러 선진국 언론들도 경이감을 표시한 바 있다. 비록 비틀리며 길고 긴 세월 흘러왔어도, 아~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위대한 역량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지닌 금강민족이요, 먼 수천 년 전에 이미 ‘홍익인간’을 개국 이념으로 내걸었던 한밝민족이 아니던가?
하나의 촛불은 미약하기 그지없으나, 함께 모여 이루는 촛불은 밤하늘의 별 이상으로 찬란하다. 동학혁명이 미완의 혁명이 되면서 조선이 맥없이 사라졌고, 일제를 청산하지 못한 탓으로 해방 이후 지금껏 이 땅은 질곡의 아픔을 겪어왔으나, 바로 이 아픔은 ‘민주주의’를 탄생시키는 큰 밑거름이 될 것만 같다. 그래서 이 땅에는 모든 사람, 모든 물물(物物)이 합당한 대접을 받는 세상, 법신불 일원(一圓)의 평등 세상이 조만간 오게 될 것이다.
바람이 불고 있다. 희망의 깃발이 나부낀다. 오늘도 새 아침의 햇살이 시나브로 다가오는 미륵정토의 세상 구석구석을 내려비추고 있다. “당신들의 분별하는 마음이 흔들리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