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도록 아픈 그리움


동짓달 추위에 온몸을 웅크리고 있던 초승달이 애처롭던 지난밤, 또 한 사람이 먼-길을 떠났다. 아침나절만 해도 도란도란 말들을 주고받았는데….
갑작스런 임종의 증상이 나타나고, 가족들이 모였다.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 몸부림쳤던 어제, 저만큼에서 죽음의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지만 남편은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내의 치료를 위해 생업을 뒷전으로 밀친 채 간병에만 전념하였다.
남편은 함라산 밑 공기 좋다는 곳에 헌집을 한 채 사서 황토방을 만들고, 환자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공간을 개조하였다. 급히 만들고자하니 인건비가 평소보다 훨씬 더 든다 해도 그냥 밀어 부쳤다. 부인은 퇴원을 하고 간병인과 함께 그 집으로 갔지만,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터였다.
환자를 데리고 이리가고 저리가고 하는 동안, 남편은 친정과 시댁의 의견들이 분분한 가운데 시비 속에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며칠 전 부인이 얼마 못 버틸 것 같아지자 나는 남편에게 다시 한 번 임종에 대해 설명하고, 이별의 준비를 당부하였다. 그런데 그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온 것이다. 안정실 가득히 고이는 슬픔 속에서도 “고마웠고, 사랑했습니다.”라는 말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아름다운 이별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먼저 가서 미안해요. 우리 다음 생에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래야지, 그럽시다. 먼저 가서 기다리면 나도 당신 곁으로 갈 터이니 외롭다 말고….”
운다. 남편은 소리를 죽이며 꺼이꺼이 운다. 사랑하는 어린 두 딸과 남편을 두고 이 세상을 떠날 것을 생각하는 아내의 그 마음은 어떨까. 아득한 마음을 간신히 누르면서 “감사합니다.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어요. 끝까지 사랑해주어서 고맙고 이제는 울지 않겠습니다.”라며 복수가 차 불러진 배를 움켜잡고 미소를 보이려고 했던 그녀는, 매달리며 울먹이는 아이들에게 힘이 없는 손을 들어 다독이는 시늉을 했다. 헤어짐을 못내 가슴 아파하는 남편의 눈물 속, 이 이별은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
병실에 순간 침묵이 흐른다. 머나먼 여행길을 떠나는 아리도록 아깝고 소중한 인연을 잘 배웅하기 위해서 영혼이 육신을 빠져나갈 동안 평온한 분위기 속에 머물게 하는 것이 임종자를 위한 최후의 배려임을 알기에, 안간힘으로 자신들의 북받치는 오열을 추스르고 있었다.
  사람이 한 생을 살다가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 돌아간 곳이 어디인가? 사람들은 왜 죽는다고 말하지 않고 갔다고 하며, 헤어졌다 말하지 않고 또 만난다는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이 한 생을 살다가 가면 그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다 함께 우리 곁을 떠나간다. 다시는 그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고 그와 눈을 마주칠 수도 없다.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들….
염불소리가 조용히 병실에 퍼지고 숙연해진 가운데 시댁동서가 헐떡이며 들어온다. “동서, 내가 잘못한 일 다 용서해줘. 내가 진즉 말하려고 했는데 늦어서 미안하고…. 빚진 거 있으면 다음 생에 다 갚을게. 다 풀고 가. 나 어려울 때 도와준 거 알고 있네. 내가 미안하고 고마워….” 침대에 누운 채 힘없는 눈빛이 잠시 흔들리며 아는 채를 한다. 임종하는 순간에도 의식이 있어 그동안 묻어두었던 작별인사를 하고, 마음에 거리끼던 일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자정을 넘기면서 모니터 속 그래프가 점점 요동을 치더니 끝내 일직선을 긋고 만다. 애절한 아이들의 울음소리, 남편은 생각보다 침착했다. “내가 정신을 차려야지요. 갈 사람은 가야하고… 그래도 끝에는 이렇게 편안히 갈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호스피스는 떠나는 자와 남는 자들 사이에 아픔과 상실, 슬픔 그리고 마지막이기에 느낄 수 있는 절대적인 감사와 참회, 행복한 순간을 나누는 것이다. 호스피스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 각자의 죽음을 미리미리 준비하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마지막 모습은 언제나 살아온 모습과 닮아있다.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베풀고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은혜임을 깨달으며 하루 하루를 행복으로 채워간다면, 이는 삶을 완성하는 길일 것이다. 행복한 삶이 행복한 죽음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은혜 속에 하루를 보내고 행복한 하루였던가?’를 점검하며 저만치 바라본 밤하늘에는, 가신 님들의 넋인 양 별빛들이 다복히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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