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
 글. 노태형 편집인

가장 호감을 가지는 종교에 ‘원불교 1%’, 원불교 호감도에 대한 무반응 84%, 앞으로 원불교에 대해 알아볼 의향에 대한 질문에 87%의 부정 반응.
원불교정책연구소가 지난 6월 한국리서치 전화조사팀에 의뢰해 실시한 사회여론조사의 결과는 참 당혹스럽다. 흔히 한국사회에서 ‘4대 종교’라고 말하는 원불교의 위상에 겸손을 더하더라도, 혹은 끊임없는 종교연대를 통해 목소리를 내어왔음에도, 또 전직 대통령 열반 시 국장 참여며 군종장교 파견 등으로 한국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해 왔음에도, 원불교 교화 미래는 별로 나아질 것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두렵다.
우리는 그동안 원불교의 사회적 역할과 인지도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이것이 곧 교화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여론조사는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실시한 것이 아닌가. 그러기에 이러한 결과물이 더 참담하다. 혹 우리는 우리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이 결과물은 우리에게 몇 개의 해답을 던져준다. 먼저, 그동안의 원불교 활동들이 비용 대비 비효율적이었거나, 또는 4대 종교라는 허울에 가려 너무 과신했거나, 또는 우리끼리만의 교단(혹은 조직)에 갇혀 오만하거나 무능했거나, 또는 미래에 대한 혜안이 없거나…. 그래서 어느 일간지 기자가 제기한 ‘원불교는 아직도 100년 전의 소태산에 갇혀 산다.’는 말이 곱씹어진다.
정신 좀 똑바로 차리자. 이게 바로 원불교 100년의 현주소다. 이제라도 좀 더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당장 눈앞의 일보다는 소걸음처럼 느리더라도 원불교가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 그리고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창조적 혜안으로 깨달음의 길을 개척해야겠다.
그 첫 걸음은 우리를 제대로 아는 일이다. 그러기에 정산 종사는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이란 ‘혹 사람이 남의 허물은 잘 아나 저의 그름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대종경> 수행품 26장)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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