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장자의 꿈

취재. 노태형 편집인

나는 나비입니다. 아니 장자입니다. 아니, 나비네요.
봄만 되면 이렇게 헷갈립니다. 어딘가로 훨훨 날아가고픈 마음이 앞서 나비가 되기도 장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 어깨 아래에 몰래 감추어 온 날개를 꺼내어 힘차게 날아볼 작정입니다. 막상 도시를 떠나려니 미련이 남습니다. 아등바등 모아놓은 재산이며, 겨우 장만한 집 한 채가 발목을 잡습니다. 잠시 마음에 갈등의 소용돌이가 일어납니다. 많은 시간을 도시에 의지해 살면서 욕망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비가 되려합니다.
한동안 욕심에 가려 잊었던 날개를 펼치려 딱딱해진 어깨를 두드립니다. 툭 소리와 함께 겨드랑이 사이로 화려한 날개가 솟아납니다. 온몸에 찌들었던 욕심들을 털어내자 무게가 한결 가벼워집니다. 서너 번 날개를 펄럭입니다. 가벼워진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봄꽃을 찾아 남쪽으로 날아갈 겁니다. ‘쉬익~ 쉬익~’ 날개의 파닥이는 소리에 봄바람이 휘파람 소리로 응답합니다. 산을 하나 넘습니다. 사람 몇이 삐죽삐죽 땀을 흘리며 산길을 오릅니다. “자네, 이번에 집값이 얼마나 올랐어?” “자넨 신도시에 땅을 사놓았다며. 횡재했네 그려.” 자연의 맑은 바람을 쐬며 한다는 이야기가 고작 도시의 속물이야기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시 강 하나를 건넙니다. ‘삐거덕 삐거덕.’ 빈 배들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도대체 배를 어떻게 묶어놓아 서로 부딪히게 하냐고요. 흠집이 생겼잖아요!” “그대 배가 흔들려 내 손가락을 깨물었소. 이건 당신 잘못이오.” 온통 남 탓으로 돌리는 악다구니. 인간 군상들의 염치없는 소리에 어이가 없어집니다. 그러든 말든 빈 배들은 잔물결에 몸을 흔들며 봄을 재촉합니다. 부질없는 싸움에 끼어들 마음이 없는 거죠.
그렇게 마을을 지나고 언덕을 넘고 또 들판을 지나, 강과 산이 만나는 언덕에서 봄을 맞습니다. “아휴, 흰 꽃은 눈처럼 금방 녹을까 눈물이 나고, 노란 꽃은 물감을 뿌려놓은 듯해 웃음이 터지네.” 어느 집 담벼락 아래 핀 풀꽃들이 이 소리에 재잘재잘 흉을 보며 시기합니다.
무언가 섬뜩합니다. 누군가 잔뜩 째려보고 있는 듯 한 예감. 사방을 둘러봅니다. 나비를 향해 돌진하는 새의 부리가 매섭습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는 사력을 다합니다. 이유 없는 추격이 이어지고, 나비는 겨우 가시덤불 속으로 몸을 숨깁니다. 구사일생. 그렇게 안도하는 순간, 지친 몸에 피로가 내려앉고 눈꺼풀이 처집니다.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그 사이, 나비는 장자가 됩니다.
말끔한 옷차림의 장자가 건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장자를 보자마자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합니다. 제법 자수성가한 티가 납니다. 높은 건물 넓은 창가에 앉은 장자의 표정에는 여유가 흐릅니다. 지나온 시간을 더듬는 장자의 눈에 고향을 떠나온 풍경이 아스라이 스치고, 산전수전 우여곡절의 순간들이 창가에 비칩니다. ‘참 힘들었지. 그래서 오늘이 있는 거야.’ 그래도 다행, 이만큼 성공을 이뤘으니 참 운이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도 잠깐. 비서가 혼비백산 달려와 무언가를 보고합니다. 장자의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그놈이 어떻게 나를…!” 손이 부르르 떨리고 목에 검붉은 핏줄이 섭니다. 믿었던 오랜 친구의 배신과 회사의 부도. 모든 것을 잃는 순간입니다. 불행은 수명을 다한 전구의 깜빡임처럼 연속적입니다. 늘 다정하기만 했던 아내의 매몰찬 외면, 목숨과도 같았던 아이들의 불상사, 그리고 성공의 뒤안길에 내팽개쳐진 삶의 멍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분노는 폭풍이 되어 장자를 삼킵니다.
갑자기 현기증처럼 아지랑이가 피어납니다. 뚝~. 전기가 나갔나 봅니다. 지나온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애지중지 쌓아온 삶의 흔적들도 하나씩 하나씩 지워집니다. 캄캄한 밤이 지나갑니다.
다시 날이 밝습니다. 마른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나비 고치가 바람에 흔들립니다. 꿈틀꿈틀, 번데기 한 마리가 고치 속에서 깊은 낮잠에 빠졌습니다. 장자가 나비가 되려나봅니다. 일장춘몽은 다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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