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그리움의 심장 소리…

취재. 노태형 편집인

1.
조그만 씨앗 하나가 바람에 실려 바닷가 바위에 내려앉았습니다.
잠시 머물다 떠날 줄 알았죠. 낮잠을 자나 했더니, 하루 이틀 사흘…. 천년 바위는 입김을 후~ 불어 씨앗의 잠을 깨웠습니다. 이 척박한 땅은 생명이 살 곳은 아니니까요. 기척을 느낀 씨앗이 머뭇머뭇 거리더니 “앙~” 울음을 터트립니다. 그새 뿌리가 내리고 말았네요. 이게 운명이겠죠. 
바위의 근심이 깊어집니다.
매일 같이 뿌리를 뻗는 아기 소나무가 심장을 파고들기 때문이죠. 천년을 지켜온 그 딱딱한 가슴이 이리 쉬이 열릴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혹 아기 소나무가 부러질까, 혹여 날아갈까 두려워 밤새 자기 몸을 찔러 아기 소나무를 감싸 안기도 하죠. 일 년 이 년 삼 년…. 바위는 세찬 파도에 부서지고 소나무를 가슴에 안느라 찢어졌습니다. 그렇게 우두커니 바다만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죠.
철부지처럼 쫑알대던 소나무도 말수가 줄었습니다.
배고픔의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뿌리를 내릴 땅도 부족해 몸부림이 납니다. 원망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갈라진 상처를 부둥켜안고 몰래 울음 터트리는 바위를 훔쳐본 뒤로는 뿌리 뻗는 것마저 조심스러워 거둬들이기 일쑤죠. 조심하고 참으며 살아가는 겁니다. 10년 20년 30년…. 그렇게 철이 들어갑니다. 세월을 견뎌내는 지혜가 쌓여 침묵할 줄 아는 수도승이 됩니다. 그렇게 200년…. 이게 참 사랑이겠죠.

2.
바다가 분노합니다.
저 멀리서부터 달려온 파도가 작정이라도 한 듯 그르렁 그르렁 호랑이 소리를 내며 달려듭니다. 혹 들으셨나요? 그 마지막 비명을…. 그렇게 부서지고서 물러날 때의 슬픈 하소연을. 바다의 분노는 사실 오랜 그리움의 발버둥입니다. 어찌해도 뭍으로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과,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생명들의 애절함이 산처럼 쌓인 것이죠. “보고 싶다. (미치도록) 보고 싶다.” 바다의 분노가 눈물이 되어 산산이 부서집니다.
배들의 발길이 빨라집니다.
“허허,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겠군. 쯧쯧.”
그렇게 배들은 항구로 향하고, 바다는 피신하라는 징조를 바람에 실어 보내죠. 하나의 경고입니다. 이내 바다는 텅 비고, 항구로 들어온 배들은 서로의 몸을 꽁꽁 묶어 두려움을 대비합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산더미 같은 파도를 기다리는 바위섬들의 심장 뛰는 소리가 처얼썩 처얼썩 해안가에 울려 퍼집니다. 폭풍전야, 이렇게 잠잠한 걸 보니 아무래도 바다가 한 번 크게 뒤집힐 것 같습니다.
우르르 우르르….
저 멀리 큰 산이 출렁입니다. 도망하는 것들은 꼬리부터 잘라버리고 대항하는 것들은 머리부터 부숴버립니다. 별수 없군요. 온몸에 힘을 뺍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에 몸을 맡기고 ‘숨었다 나타났다.’를 무한 반복합니다. 견딜 수 밖에요. 가끔은 숨고 견디는 게 지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시절이 있잖아요!

3.
새벽 조업에 나서는 어부들을 만납니다.
바다로 나가지 못해 안달이 난 듯 연신 시계만 들추고 있죠.
“왜 그렇게 마음이 급하세요?”
“허허, 첫 바다로 뛰쳐나가는 쾌감이 있어요. 밤새 기다렸잖아요.”
바다랑 연애라도 하는 걸까요. 땡 땡 땡~. 정각의 시계 소리와 함께 요란한 발동 소리를 내며 뛰쳐나갑니다. 여운처럼 던진 한 마디를 줍습니다.
“힘들다, 힘들다 하는 사람들, 새벽 바다로 나와 보라 그러세요. 그럼 힘이 날 거예요.”
문득, 어느 선진이 들려 준 대산 종사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마음이 옹졸해지면 바다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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