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외국인이었다
글. 오예슬

집주인은 말이 빠르고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거실과 욕실 주방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분리수거 하는 법, 가스레인지에 라이터를 사용하여 불붙이는 법, 청소업체에서 방문하는 요일 따위를 숨 한번 쉬어가지 않고 빠르게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열쇠 꾸러미를 들어 보이며 어느 것이 현관 열쇠이고 방문 열쇠인지 알려주곤 황급히 집을 떠났다.

집주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문 앞에서 오랜 시간 서 있었다. 처음에는 맞는 열쇠를 찾지 못해서, 그다음에는 오른쪽으로 세 번 돌려야 열린다는 것을 아예 잊거나 나중에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열쇠를 돌리며 시끄럽게 철컥 소리를 내고 있으면 거실에서 내가 언제쯤 문을 열까를 지켜보다 못한 미카나 이사벨이 웃음을 참으며 문을 열어주곤 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의 인턴십 6개월 중, 3개월을 이곳에서 보냈다. 낮에는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극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고, 저녁이면 프랑스인 미카, 독일인 이사벨,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과 거실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셰어하우스에는 이탈리아인이 아무도 없었기에 따지고 보면 모두가 외국인이었다.

그러나 스위스에서 차를 타고 이곳에 왔다거나, 이번 방학에 두 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집에 다녀올 생각이라는 이야기, 또는 EU 국가 학생들끼리 교차 지원 가능한 대학의 이름을 듣다 보면 나야말로 물리적인 거리뿐 아니라 모든 것에서부터 가장 멀리 떠나온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일상을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마트에서 미리 사다둔 빵과 시리얼을 먹고, 귀여운 지상철을 타고 출근을 한다. 아이들과 두 차례의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동네에서 가장 사랑받는 피제리아에 들려 마르게리타 혹은 화이트 피자를 한두 조각 산다. 잘 열리지 않는 대문과 한 차례 실랑이를 벌이고 집으로 들어오면 학교를 마친 미카와 이사벨이 와인이나 차를 마시고 있다. 웃으며 내게 오늘 일은 어땠는지 묻는다. 이보다 어떤 일이 더 있거나, 덜 있었던 3개월이 더 지난 후에 나의 공식적인 인턴십은 끝이 났다.

그 후, 약 한 달 동안 유럽의 몇몇 도시를 여행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3일 전, 베를린에서 로마행 비행기를 타고 다시 이탈리아 공항에 도착했다. 자연스럽게 이탈리아어로 쓰인 표지판을 따라 짐을 찾고, 도심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따뜻한 공기에 한 달 내내 캐리어 뒤를 따라다니던 뼛속까지 시린 추위가 녹아내렸다. 익숙한 말소리가 들리고 낯익은 유적지가 창문 밖으로 천천히 지나갔다. 순간 집에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이질적인 시선들마저 편안하고 또 안전하다고 느꼈다. 곧바로 이런 스스로가 우습다고 생각했으나, 어쩌면 이곳은 더 이상 내게 아주 먼 타지는 아닌 것도 같았다.
 

타국에서의 3년
글. 김경민

3년간의 영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온 지 이제 3개월이 조금 넘었다.
영국에 있는 동안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녔는데, 마지막으로 여섯 명과 함께 머물다가 한국의 내 방에 들어오니 안락하다. 내 방 한 칸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마지막으로 3개월을 지냈던 런던 집은 이층집에 여섯 개의 방이 있었다. 그 중에서 위층 한 방을 썼던 나는, 일과가 끝난 밤이면 차 한 잔을 들고 올라가 침대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방에서만 시간을 보내거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벗어나 고요한 곳에 혼자 있으면 내가 있는 이곳이 타지인지 아닌지 경계가 흐려질 때가 있다. 유난히 낮게 느껴지는 하늘과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관찰하면서 내가 타지에 있음을 실감하곤 했다.

처음 몇 개월 간은 언어가 다른 데서 오는 소통의 불편함을 차치하고 나서라도 바깥 풍경과 다른 환경의 낯선 때문인지, 익숙하지 못한 데서 오는 고독한 감정이 지배적으로 자리 잡았다. 여태껏 나에게 항상 너무 당연하게 존재했던 주변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자주 실감났다.
시간이 지나니 생경한 환경에 적응하게 되고, 새로운 사람들을 차차 알아가면서 유학 생활이 한결 수월해졌다.

내가 환경을 바꿔나가고, 생활 패턴을 의식적으로 지켜나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는 느낌도 들었다. 어차피 이방인으로 왔으니, 사회나 단체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그 사이에서 물리적으로 섞여있더라도 어떤 위치에 있는지 더 뚜렷하게 파악하려 했다. 때문에 중심을 어느 정도 잡고 있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익숙한 것과 떨어져 사는 것은 나에게 그런 이점을 주었다.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 탓에 항상 누군가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던 원래의 생활 패턴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도 나에게 큰 변화였다. 분위기에 흡수되어 붕 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내면 안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하나에 더 크게 집중할 수 있었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다시 돌아오니, 문득 어디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든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일상생활을 좌우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환경이 변했지만 절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언제나 익숙한 서울의 풍경이 창밖으로 지나간다. 하지만 유학시절 때 내가 지녔던 생각과 마음가짐을 되도록 유지하려 한다. ‘내가 지금 어디쯤인지’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은 언제나 필요하고, 이 시간은 나에게 보다 의연한 태도를 갖게 한다.
 

진짜 나는 어디에?
글. 곽다영

‘Kita stotel yra~.(다음 정거장은~.)’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어린 아시아인이 갑자기 버스에서 엉엉 울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눈 파란 금발 외국인들 인생에서 흔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 도착하여 지낸 지 3일 만에 나의 눈물샘은 터졌다. 버스를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안내방송은 뭐라는지 도통 모르겠고, 계속 구글 지도에만 의존해야하는 내 모습이 왜 이렇게 처량하게 느껴졌는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것 하나에도 의미 부여하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던 시절이다. 어느 날은 한국을 무시하는 무리와 싸움이 붙어서 분에 못이긴 채 울고 욕하고 치고 박고를 반복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서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나 싶어서 한국행 비행기 표를 찾아보는 것도 일상이었다. 너무나 외롭고 쓸쓸한데 털어놓을 곳 하나 없었다. 상당한 시차도 한몫했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걱정시키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부리고 있는 이 투정들, 겪고 있는 불편함이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꿈조차 꾸지 못할 일일 텐데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보자고. 그 이후로는 일상에서 즐거움을 하나씩 찾아가는 중이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도,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을 해주는 것도, 한국어를 가르치며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것도 참 즐겁다.

물론 아직 완전히 적응한 것은 아니다. 사실 어제도 펑펑 울었다. 한국에서 주입식 교육만 받다가 매일 토론을 하려니 너무 힘들고 나만 바보 같아서다. ‘난 왜 스스로 생각 할 줄 모르는 것이며, 이래도 멍청하고 저래도 멍청할까.’ 내 자신이 너무나 싫어졌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한국과 다른 생활을 경험하고자 이곳에 온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는 항상 꿈같고 낭만적이지만 직접 겪어보면 내 생각과 다른 부분을 정말 많이 발견하게 된다. 가끔은 내 가치관이 흔들리고, 당황스럽다. 후회스럽거나 심지어 무섭기까지 하다. 나는 온갖 경계에 휩싸여있으면서도, 결국 아무 일도 없는 척 잘 살고 있는 척 남들이 보는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게 일상이었다. ‘나안- 괜찮아.’와 ‘나- 안 괜찮아.’는 한 끗 차이기에, 슬쩍 괜찮은 척 하며 남들이 보는 내 모습만 중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조금씩 내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숨기지 않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못나 보일지라도 이 모습을 인정하고 보듬게 된다. 진짜 나를 발견하니 비로소 나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사는 것 같다. 전에는 거짓 목표를 쫓기 바빴고 거기에 얽매여서 나를 직시할 수 없었다. 고작 여기쯤인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내 위치는 원래 거기가 맞는데도 마치 누가 날 억지로 끌어내리기라도 한 듯, 그걸 바라보는 게 버거웠다. 그동안 얼마나 주인이 아닌 채 살아왔던 것일까. 언제쯤 나는 비로소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용기가 생겼으니 조금씩 더 진짜 나를 마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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