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퍼주는 교무, 강명권
함께 사는 사람이 행복하면 그게 내 행복

취재. 장지해 기자

15년도 더 된 일일 것이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생긴 피해 상황을 외면할 수 없어 찾아간 현장에서, 그는 도움 받은 이들이 맨 바닥에서 절을 하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가 줄 것은 없고….’라면서 감사하다고 넙죽 절을 하는데, 그 자리에 함께 갔던 사람들이 다 같이 울었어요.” 시간이 한참 흐른 일임에도 여전히 눈물을 왈칵 쏟아내는 강명권 교무(원봉공회). 힘든 상황에서 나누는 작은 마음과 손길이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그는 현장에서 너무나 절실히 깨닫고 있다. 그래서일까? 강 교무는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열일을 다 제쳐두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이웃종교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교무님은 ‘늘 현장에 가장 먼저 오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을 정도라고.
수시로 현장을 오가느라 주로 사무실 주방 한쪽의 작은 공간에서 쪽잠을 청하면서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더 해주지 못하는 것이 늘 미안하고 아쉽다고 말하는 강 교무.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힘듦이 분명 따라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현장을 지키는 그. 그야말로 ‘사람냄새 나는 사람’이다.

● 사람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따뜻한 마음, 연민의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을 발현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보고도 지나쳐가느냐, 아니면 한 번 더 바라보느냐 그거죠. 어려운 사람들의 상황을 한 번 더 들여다보면 챙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사실 지금의 분야와는 전혀 무관한 인터넷교당에 근무하던 시절에도 청년들과 종종 봉사활동을 다니곤 했다는 그. 당시 도움을 주는 이도, 도움을 받는 이도 모두가 즐거워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청년들이 ‘아! 교당에서도 이렇게 하고 살아야 하는데.’ 하고 외치던 말은 뇌리에 깊이 박혔다.

● 작년에 원봉공회가 대통령상을 받았죠.
“대통령상 자체가 우리 내부에서 받는 상과는 또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봉공회원님들에게 참 좋고 즐거운 일이었죠. 현장에서 활동하는데 애쓰는 봉공회원님들에게 조금의 위안이랄까, 보상이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80년이 넘는 원불교 봉공의 역사가치가 인정받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요.”
사실 대통령상 수상이 확정되면서 고민이 많았다는 강 교무. 작년 연말은 특히나 시국이 불안정하고 복잡하던 때라 대통령상을 받는 게 맞는지 괜스레 주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이 가진 가치는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게 아닌가. 무엇보다 봉공회원들에게 작은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 보람도 크지만, 고생도 많은 분야인데요.
“사람들이 저에게 ‘애쓴다. 고생 많다.’ 그렇게 말해요. 그런데 저는 막상 고생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살아요.(하하) 교단에서 발령을 받아서 오게 되었고, 이곳에 온 이상 최선을 다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힘들지만 ‘하려고만 하면 되는 이치’가 있다는 걸 참 많이 실감하고 살죠. 하려고 하니까 누구든지 저를 챙기려고 하고 대우하려고 하더라고요. 안 하는 게 문제지, 하려고 하는 건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이 자리가 힘들고 어렵다는 의식이 많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참 많이 하죠.”
봉공은 공익을 위해서 하는 일. 그러기에 그는 늘 사회적으로 어려운 약자, 힘든 사람, 심신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종교의 역할이자 원불교의 역할을 더 잘하지 못하는 게 미안할 뿐이다. 아무리 그렇대도 어디 힘든 순간이 없을까. 공을 위해 하는 일이라지만, 사실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사건사고들에 마음이 상하는 일도 여럿. 그러다 너무 힘들 땐 ‘그만둘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이내 ‘내가 교단과 사회를 위한 일을 하는데 이 정도도 감수 못 하겠나?’라면서 마음을 다잡곤 한다. 일을 하다보면 실수가 생기기도 하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 ‘세상 사람들을 책임지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면 다시금 의욕이 불타오른다는 것. 이러한 정신과 마음가짐이 교당과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길 바란다고 염원한다.

● 봉공은 특히나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함께 필요하잖아요.
“손이 많이 필요하죠. 지금도 봉공회원님들은 기본적으로 일주일에 서 너 개의 활동을 하고 있어요. 봉공에 대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늘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그동안 우리가 봉공을 너무 ‘육체적인 노동’에 한정 지어서 바라봐온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봉공이 마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듯이 그 가치가 많이 하락하고…. 또 정해진 사람(봉공회원)만 해야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게 많이 아쉽죠. 교리적으로 봉공이 가진 의미(무아, 멸사, 헌신, 호법)는 매우 큰데 너무 옹졸하고 작은 범위로만 생각하고 있는 거죠. 그러한 생각을 벗어야 대종사님의 말씀이 살아나고, 교단도 더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좌불(坐佛)이 아닌 진정한 활불(活佛)로서요.”
아울러 어려운 이웃을 향한 이웃종교들의 다양한 사례들을 ‘지자본위’의 자세로 적극 수용하고 배우려고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강 교무. 긴 역사에 비해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고 수행해 나가는 부분이 아무래도 약한 원불교이기에, 우리의 인력만으로 새로운 사업을 해내기가 어려울 때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서울시에서 맡기려던 사업이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인프라 구축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포기해야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때 전략적으로 ‘우리’ 혹은 ‘원불교’라는 틀이나 제한을 두지 말고 이웃종교와 이웃종교인들의 도움을 받는 게, 우리가 더욱 성장하는 방법이지 않겠냐며 아쉬움을 전한다.

● 현장에 대한 관심이 활동으로 이어지는데 큰 역할을 하죠?
“보는 만큼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나 출가교역자들의 경우 예비교역자시절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교화·교육·자선 세 방면으로 다양하게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설교 연습을 많이 하면 설교 단상에 서는 것이 저절로 편해지듯이, 노숙인, 쪽방촌 등등 우리 주변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장을 자주 보고 만남을 가지다보면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기겠죠. 교화가 잘 되고, 안정되어 있는 현장만이 아니라 약간 험하고 어려운 곳을 경험하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때도 도움이 많이 될 테고요. 성직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많이 담당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곳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이태석 신부, 테레사 수녀 등)에 대한 조명은 단순히 종단을 넘어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져주잖아요.”
그런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울림이 되는 한 마디는 故 길광호 교무의 ‘만일 우리의 이웃이 굶어 죽는다면, 그것은 법신불 사은님이 돕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과 내가 돕지 않아서입니다. 만일 우리의 이웃이 죄악에 시달린다면, 그것은 법신불 사은님이 가호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과 내가 나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이다.

● 후배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현재 처한 환경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사실은 어려운 일을 할수록 주변에서 더 많은 도움과 호응을 주거든요. 두려워하지 말고 차고 나갈 수 있는 힘과 실력을 갖춘 후배들이 많이 생기길 바라요. 그게 원불교를 만들어 온 창립정신이잖아요.”

● 올해는 원봉공회 40주년이기도 합니다.
“40주년 기념대회도 의미가 있지만, 이번 40주년 행사 중 눈여겨볼 부분은 바로 학술대회예요. 사실 그동안 ‘봉공활동을 하라.’고 강조하면서도 ‘봉공’에 대한 역사나 해석에 대한 학술적 기반이 약했던 측면이 있었죠. 대종사님께서 밝혀주신 봉공이란 무엇인지, 교리사적인 봉공은 어땠고 현재의 봉공은 어떠한지 재조명하는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고 보여요. 이러한 내부적 성찰을 기반으로 외부와도 봉공에 대한 담론을 나누는 기회들을 확장해나가야죠.”

● 세상 사람들이 은혜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세요.
“눈이 내리던 지난 겨울 언젠가 길에 노숙인 한 분이 누워 계시는데, 제가 다가가서 손을 잡았더니 의식이 없으면서도 그 손을 안 놓아요. 위안이 되는 거죠.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하면 그게 내 행복이 되잖아요. 서로 위안을 주고 또 받으면서 그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 그게 행복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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