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원광>이달의원광
 
제목 : 믿는 만큼 체받는다 2022년05월호

믿는 만큼 체받는다

글·사진 법무실 제공

결복 교운의 핵심은 '교법'
생각해보면 교단 역사 100년은 천지개벽의 역사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백여 년 전 대각을 이루고 이 회상을 열어 천지개벽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수천수만 년 묵은 여러 선천 시대의 풍토를 뒤엎어서 새로운 후천 개벽 역사를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역사 속에서 법을 믿고 스승을 믿고 이 회상에 찾아온 재가출가 전체의 혈성과 서원과 합력이 있어 오늘날 교단이 이뤄졌습니다. 평지조산으로 일궈 세계까지 뻗어가게 되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교단의 앞날을 예시할 때 ‘사오십 년 결실, 사오백 년 결복’을 이야기했습니다. 교단적으로 바라볼 때 지금 교단의 시점은 사오십 년 결실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사오백 년 결복 교단을 향해 한번 크게 나아가야 할 시점입니다. 그런 결복 교운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 우리 교단이 현재 소태산 대종사께서 밝힌 경륜을 과연 몇 프로나 구현해내고 있는지, 교법 정신을 현실에 얼마나 실현해내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결복 교운을 열어가는 핵심은 두말할 것 없이 소태산 대종사께서 밝힌 ‘교법’이어야 합니다.
지금 많은 대중이 혁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방향에 있어 무엇인가 미흡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진리가 우리에게 조금 더 분발해 결복 교운을 맞이하라는 명령을 주신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혁신의 책임은 혁신특위에만 있지 않습니다. 교단의 모든 재가출가 교도에게 혁신의 책임이 있습니다. 혁신특위는 모든 재가출가 교도들의 의견을 수합하고 소통시켜 방향을 잡고, 그것을 가지고 다시 공의를 얻는 등의 매개체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모든 대중의 뜻이 혁신으로 모였기 때문에 지금 그 방향을 잘 잡으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수월하게 그 일을 진행할 수 있고, 뜻을 하나로 모아 교단을 변화해낼 수 있습니다.
100년 동안 쌓였던 것들을 들어내서 청소도 하고 말끔하게 정리하여 스마트하고 소태산 대종사의 정신이 팔팔 살아있는 교단으로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교단혁신특별위원회 사령장 수여)

성리에 바탕해야 법 있는 심법
마음공부를 하면 세월이 지날수록 차츰 익어갑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공부가 익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의 심법을 보면 공부가 익었는지 설익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밖으로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가에서는 그분의 심법이 법다운가 아닌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법답게 형성되어 간다는 것은 수도인으로서 바람직한 인격이 형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법문을 잘하고 말을 잘해야 도인이 아니고, 마음이 잘 익어야 도인입니다.
수도가에서 마음이 익어진다는 것은 성리가 묻어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이 성리에 바탕해 묻어나야 “법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쉬운 표준으로 이야기하면 ‘평상심’입니다. 정산 종사께서도 “평상심이 도”라고 했습니다. 평상심은 곧 성리가 묻어나는 마음입니다.
평(平)은 평평하다는 뜻으로,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이 사람을 대하든 저 사람을 대하든, 미운 사람에게나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나 늘 똑같습니다. ‘평’의 마음이 나오려면 상대에 대한 어떤 생각이 내 마음에 없어야 합니다.
상(常)은 항상이라는 뜻으로, 어제, 오늘, 내일의 마음이 늘 똑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항상하다는 것도 내 마음이 경계에 묶여 있으면 절대 이룰 수 없는 마음입니다. 공부가 익어가고 심법이 익어가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사용하는 것이 ‘평’ 또는 ‘상’의 마음인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마음공부를 제대로 하면 ‘평상심’의 심법을 가질 수 있습니다.(1차 전무출신 훈련 훈증)

믿음을 크게 세우자
일원상 서원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부터 ‘무량 세계를 전개하였나니’까지는 일원상의 내역,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 받아서’부터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함’까지는 서원입니다.
일원상의 내역이 곧 진리입니다. 진리는 부처님이 만든 것도, 소태산 대종사께서 만든 것도 아닙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진리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물이 흐르는 것, 밥 먹는 것, 미워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이 진리의 작용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사용법을 잘 알아서 쓰면 유익할 것이고, 그 원리를 모르면 해(害)를 얻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일원상 서원문에서 일원상의 내역을 먼저 설명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그 내역이 이러하니 잘 알아서 그렇게 살아가자’는 당부인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진리의 내역을 먼저 설명하고, 이어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이라는 말로 서원문을 이어갑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도 중요합니다. 체받으려면 알아야 하는데, 얼핏 ‘우리 어리석은 중생’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라는 표현에서처럼 여기에도 자비심이 담겨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 가운데 진리를 아는 사람은 체받고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체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체받을 수 있게 합니다. 체받을 때의 핵심은 신(信), 즉 믿음입니다.
체받지 않으면 ‘원만’은 무조건 어그러집니다. ‘체받으려면 믿어야 한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믿는 만큼 체받는다’입니다. 10%만 믿으면 10%만 체받게 되고, 50%만 믿으면 50%만 체받게 되고, 100% 다 믿으면 100%만큼 체받게 됩니다. 믿음을 크게 세울수록 공부 길이 바르고 빨라집니다.(원불교학과 예비교무 훈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