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은
공자가 나이 들어가며 깨우친 바다

글. 김정탁

공자가 말했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고,
나이 서른에 단단히 서고,
나이 마흔에 미혹되지 않고,
나이 쉰에 하늘의 뜻을 알고,
나이 예순에 귀가 순해지고,
나이 일흔에 하고 싶은 데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위정’ 4)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順,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위정’ 4)

이 글은 공자의 압축된 자서전이다. 이런 압축된 형식의 자서전은 <논어> 시작부인 “성현의 도를 배우고 이를 늘 반복해서 익히니까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멀리서부터 찾아오니까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남을 탓하지 않으니까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1)”라는 ‘학이’ 1의 글에서도 이미 등장한 바 있다. ‘학이’ 1의 내용이 어째서 공자 자서전인지에 대해선 앞에서 설명했으므로 여기선 생략하고자 한다. 단 여기서와 차이가 있다면 ‘학이’ 1이 공자가 군자(君子) 되는 것과 관련한 자서전이라면 ‘위정’ 4에선 인간으로서 완숙한 경지에 이르는 것과 관련한 자서전이다.
그래서 공자는 열다섯 살에 지학(志學), 즉 배움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 이립(而立), 즉 단단히 일어서고, 마흔 살에 불혹(不惑), 즉 미혹되지 않고, 쉰 살에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의 뜻을 알고, 예순 살에 이순(耳順), 즉 귀가 순해지는 순서대로 자신의 삶이 변화해 온 것을 설명했다. 공자는 이런 길을 거쳐왔기에 일흔 살에 이르러서 마침내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즉 하고 싶은 데로 행동해도 전혀 법도에 어긋나지 않은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이 글은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 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무엇보다 불혹(不惑)을 유혹에 빠지지 않는 거라고, 지천명(知天命)을 천명을 아는 거라고, 이순(耳順)을 귀가 순하게 되는 거라고 직역하고 끝내기 때문이다. 물론 의역한 글을 읽어도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 건 매한가지이다. 예를 들어 지천명을 죽을 때를 안다는 식으로 의역하고, 이순을 싫은 소리든 좋은 소리든 귀에 똑같이 들린다는 식으로 의역하는데 이런 의역도 무슨 말인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공자가 이 정도 내용을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소개한 건 분명 아니다.
한번 차근차근 따져보자. 먼저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거나(志學) 서른 살에 배움에 성과가 있어 스스로 일어나는(而立) 건 학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한다. 그러니 공자만 특별히 경험하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마흔 살부터는 공자가 다른 사람과 차이를 보인다.
공자는 마흔 살에 들어서자 유혹에 빠졌다. 그 유혹은 자신이 배운 바를 세상에 펴고자 하는 유혹이었다. 공자는 이것을 어째서 유혹이라고 규정했을까?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공자의 마음이 너무나 앞서 군주로 섬길만한 대상이 누구인지 크게 문제 삼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무도한 군주라도 그를 통해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다면 공자는 그를 군주로 섬기려고 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뒤늦게 깨닫자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자신의 경솔한 판단을 유혹으로 규정했다. 이럼으로써 이런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는 교훈을 공자는 40대가 지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쉰 살에 들어서 공자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새로운 종류의 유혹으로 공자 마음이 또다시 흔들렸다. 새로운 종류의 유혹은 무엇일까? 그것은 삶의 목표를 자신의 의지대로 관철할 수 있다는 소위 자신감의 유혹이다. 그래서 배운 것을 열심히 익히고 수양하면 공자는 언젠가 군주로부터 나라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누구도 공자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자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은 운명은 하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고 하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공자는 자신의 운명을 오로지 하늘에 맡긴 채 살아가야겠다고 새삼 다짐했는데 이것이 지천명으로 50대가 지나서야 얻은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예순 살에 들어서 공자는 유혹에서 벗어났을까? 새로운 종류의 유혹으로 공자 마음이 또다시 흔들렸다. 그 유혹은 귀에 들리는 소리에 따라 반응하는 유혹이다. 좋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좋지 않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쁜 유혹이다. 또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하고,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은 유혹이다. 공자가 예순 살에 들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비난 중 하나가 ‘노나라 젊은이를 꼬드겨 제자로 만들었는데 일자리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고등 놈팡이로 만들었다’라는 말이다. 공자도 이런 말을 들을 때는 불끈하고 화났을 텐데 이는 이순의 경지에 들어서지 못해서다.

언어란 사람들 간의 약속이므로 의미는 고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 ‘개새끼’라고 말해도 내가 ‘강아지’로 해석하면 화날 일이 없다. 이처럼 언어가 지닌 의미는 실제로 그런 게 아니라 들은 사람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허상의 이미지이다. 이에 반해 귀 이외의 감각들, 즉 눈, 코, 입을 통해서 보거나 느낀 건 허상이 아니라 실제의 이미지이다. 그래서 눈으로 보아 아름다운 건 실제로 아름답고, 혀로 맛보아 단 건 실제로 달다. 공자는 이런 감각작용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아 ‘안순(眼順)’ ‘후순(鼻順)’이란 말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오로지 귀의 감각작용만 문제 삼아 이순이란 말을 등장시켰다. 공자는 그동안 귀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허상의 이미지에 일희일비해 온 걸 후회하면서 60대가 지나서야 이순의 경지에 이르렀다.
귀에 들리는 소리에 마음이 흔들렸던 게 공자에게 있어 마지막 유혹이었다. 그럴 정도로 이순의 단계에 오르는 일은 불혹과 지천명에 비해 힘든 일이다. 이제 공자는 언어가 만들어내는 감각작용의 미망에서 벗어남으로써 어떤 유혹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이것이 공자가 일흔 살에 들어서 경험한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단계이다. 이런 단계에 이르자 공자는 무슨 말과 무슨 행동을 해도 이것들이 법도에 하나도 어긋남이 없었다. 그만큼 그의 말과 행동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이런 단계는 불가가 말하는 해탈의 상태일 수 있고, 장자가 말하는 오상아(吾喪我)2)의 상태일 수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해탈의 상태에 이르려면 무엇보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수·상·행·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3)’라는 단계에 이르러야 가능하다. 이는 대상인 색(色)에 대해 수(受)의 감관작용과 상(想)·행(行)·식(識)의 심관작용이 공의 상태에 이르러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커뮤니케이션은 감관 및 심관작용으로 구성되므로 해탈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또 오상아는 본래면목의 내(吾)가 살면서 만들어진 나(我)를 초상 치러 없앤다는 말이다. 살면서 만들어진 나(我)는 주로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형성된다. 그러므로 오상아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순도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이다. 이처럼 불가와 도가는 물론이고, 유가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미망에서 벗어나는 길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Ι명예교수·성균관대학교 소통학. smilejt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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