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삶
 
현대의 불안과 치유, 그리고 소통

글. 김정현 원광대학교 철학과 교수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21세기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규율사회를 규정하는 것은 부정성이다. ‘~해서는 안 된다’, ‘~해야 한다’는 부정적 조동사에서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 조동사가 지배하는 성과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내게 된다. 시대마다 고유한 질병이 있는데, 21세기는 우울증이 고유한 질병이라고 한다.’(한병철, <피로사회>)
우리나라 통계청 자료를 살펴봤다. 지방 대도시에서 ‘코로나 시대 우울증 경험 및 가장 높은 원인’은 사회활동의 제한(20대) 〉 경제적 어려움(40대) 〉 전염에 대한 불안(10대) 〉 불명확한 감염병 정보(40대) 〉 공공서비스 이용 곤란(30대)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 우울증 해소 방안은 사회활동 제한 해제, 백신 공급, 지원금 등의 경제적 지원, 감염병 관련 정확한 정보, 일자리, 긴급 돌봄 등 사회적 지원의 순이었다. 이제 코로나19 거리두기도 전면해제 되어 우리 사회도 활력을 되찾고 있다.
‘현대의 불안과 치유, 그리고 소통’을 통해 각자가 지닌 불안을 해소하며 정신의 근육이 더욱 단단해지길 바란다.                                                 
_ 편집자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왜 불안해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철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며, 인생 후반부 설계에 도움이 될 내용을 이야기할 것이다.

성과사회와 피로·불안사회
니체에 따르면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이어지게 된다. 활동하는 자, 즉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 받은 시대는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성격의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

현대사회의 성격은 성과사회와 그 이면에는 피로사회, 불안사회의 이중성을 갖는다. 우리는 ‘내가 뭘 위해 뛰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 없이 번아웃이 되는 피로사회 속에 살고 있다. 삶의 가속도와 자기 성찰이 결여된 채 자기 삶의 방향을 잘못 잡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잉활동과 피로, 불안의 증대 등을 야기하는 등 성과적 가치(물질적 풍요)와 자기착취(소진증후)의 이중구조 속에 있는 현대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21세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집중을 못하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경계성 성격장애, 대인관계 장애, 소진 증후군 등 신경증 질환을 갖고 있다.

현대인, 왜 불안한가?
어린아이가 자기 머리를 뜯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현대인은 살고 있다. 병에 들어 쭈그리고 앉아 있듯이 현대인은 불안하고 허무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현대사회의 불안의 원인에 대해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현대사회는 우리 인간들을 원자주의와 도구주의의 사고방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말한다. 가족이 파괴되어 홀로 고독한 삶을 살아가고, 또 자기에만 몰두(타인에 무관심)하는 나르시시즘 문화가 팽배해져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의미있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진실성의 이상이 있어, 이 두 가지 요소의 내재적 긴장이 현대사회 속에 있다.

성과사회의 특징
현대 성과사회에서 사람들은 부산하며 바쁘게 살아간다. 그것을 대별해 주는 단어들이 바로 ‘지표, 평가, 효율성, 순위, 생존, 실용 취업률’ 등이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어느 속도로 가야 하는지? 내 삶의 진정한 가치와 행복이 무엇인지? 이러한 물음을 묻지 못한 채 사람들은 분주히 활동하고 있다.
분주하다는 것은 휴식 없이 살아가고 있는 무(無)정신성의 태도이다. 정신없이 살고 생각없이 살아감에 따라 삶의 활력은 소진된다. 이렇게 자신의 성찰이나 고민 없이 살아가다보니 번 아웃되는 현상도 겪게 되는 것이다. 또 닦달 즉 몰아세움도 존재한다. 이는 경쟁의 격화로 존재의 에너지 소진(탈진), 만성피로, 우울증, 분노 증세들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부산하지만 활기 없고, 바쁘지만 허둥대며, 몰아세워지며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는 성찰적 활동 부족, 즉 무정신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현대의 자아신경증
현대인의 문제는 어디서 오는가? 가장 큰 문제가 자기관계성의 위기문제이다. 이것을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화 연구자인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나는-누구인가-신경증(Wer-bin-ich-Neurose)’, 즉 ‘자아정체성의 신경증’이라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을 묻지 않고 살아가며, 진정한 삶의 의미나 행복에 대해 깊은 성찰 없이 살며 고통을 겪고 있다. 자아정체성의 신경증은 자아도취적 나르시시즘 문화의 병리적 증후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사회에서 더욱 강화된다.

정보사회
정보사회는 편집증적 자기 몰입을 강화시킨다. 정보의 양이 급속하게 증가하면 할수록 그 현상에 대한 치장과 맹목성은 확산된다. 정보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가치도 중요하다.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더라도 스마트폰만 보고 다른 사람을 보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 편집증적 자기 몰입, 인간관계의 단절은 결국 가족관계의 문제로 번진다. 흘러넘치는 피상적 정보에 대한 관심보다 중요한 일이 내가 원하는 진정한 삶을 찾는 일이다.
정보사회는 사유의 가능성을 희석시키며, 자기 몰입과 소유를 통해 자아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즉 타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내가 가진 내 소유물이 나라고 생각한다. 즉 명품 옷을 입고 명품 백을 들고 다니면 내가 명품이 된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것으로 내 존재 전체가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결코 나의 모습이 아니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의 모습을 “나라는 존재는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즉,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현대인이 소유에 매달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문화의 위기는 진정한 자아에 대한 관심이 결핍되어 있다는 데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참된 자아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열린 정신과 고독의 능력
인간이 깨어 있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아우구스티누스, 키에르케고어, 니체 등 철학자들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조건은 고독이라고 보았다. 고독은 자기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내면적 공간을 확보해 준다.
고독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홀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불안과 두려움을 일으키는 부정적 공간이다. 두 번째는 참된 자기 삶의 텍스트와 만나도록 생산적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의 긍정적 공간이다. 이때 삶의 텍스트와 만난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 삶의 고통과 분노, 열등감, 복수심, 상처와 만나 용서하고 화해하는 내적 내면의 대화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진실한 자신과 만나는 정신적 치유 공간, 진실한 내적 능력이 바로 고독에서 시작된다.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고독에 대해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내면적 성찰의 공간이다. 고독의 욕구는 인간의 내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독의 힘은 인간이 정신적으로 살아있는 표식이다. 고독에의 욕구는 인간의 내부에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표시이다. 또한 그 정신을 재는 척도이기도 하다.’(키에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고독은 자기 몰입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니라, 진정한 자신과 만나 자아 강화를 일으키는 존재의 출구이다. 자기를 들여다 볼 때 내 자신을 찾게 된다.

니체의 고독관
니체의 사상은 아모르 파티(amor fati) 사상으로 귀결된다. 이는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말이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만나야 하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만남의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 니체에게도 고독의 공간이다.
우리 모두 인생 후반부는 저녁 무렵 마치 물 위에 흐르는 음악같이 경쾌한 고독, 그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 경쾌한 고독은 내면에서 자기 투쟁을 하는 공간이자 인간적 성숙을 위한 조건이다. 누구든지 인생 후반에는 성숙되어야 한다. 소유물에 집착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고, 정리할 것도 정리해 내가 진정 내 자신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인생이 되도록 해야 한다. 독립적인 인간, 자유정신이 되기 위한 길은 고독(자기 만남)의 훈련에서 시작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마음성찰
아우구스티누스는 외적인 인간(지상적 인간, 묵은 인간, 낡은 인간)으로부터, 내적인 인간(천상의 인간, 새로운 인간)이 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은 기독교 사상의 토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에게 종교적 활동이란 바로 치유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마음에는 두 가지 마음이 있다고 했다. 즉 무질서의 마음상태(cupiditas)로부터 질서 잡힌 마음상태(caritas)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쾌락이나 호기심, 교만의 마음상태로부터 벗어나 사랑과 올바른 의지를 지니고 살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밖으로 나가지 말라. 그대 자신 속으로 돌아가라. 진리는 인간의 내면에 있다.
(Noli foras ire. in te ipsum redi. In interiore homine habitat ueritas)”는 말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우리가 참된 삶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고독과 성찰, 소통
고독은 자기 자신과 진실하게 대면하는 생산적인 만남이며 관계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삶의 집착과 타인에 대한 의존성에서 자유로워지는 정신적 성찰의 공간이 필요하다. 내려놓음(Gelassenheit)은 삶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불필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을 정리하는 삶의 능력이자 태도이다. 특히 50대 후반부터는 내려놓음을 할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할 때 성숙한 휴머니즘이 발효되는 장소도 자기 만남의 과정에서 나온다. 타인과 만나고 인간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개인의 성숙한 정신세계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 어쩌면 인간적인 소통의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진실한 자기 만남은 미성숙이나 불통을 벗어나서 진정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첫 걸음이다.
소통이란 홀로 있으면서 동시에 더불어 있는 어울림의 미학이다. 진실한 자기 만남을 통해 성숙해진 자아가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 타인과 공동체의 가치, 인간적 가치를 함께 나누는 연대적 삶의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독을 응용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깨어있는 정신, 소통미학
현 시대는 피로사회, 성과사회, 소진사회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과잉행동, 경쟁의 격화, 현실의 불확실성, 냉소주의적 태도, 불신, 우울증, 만성피로, 불안, 불통 등 성과주의를 강요하는 사회적 속성이 만연해 있다. 오늘날 현대인이 겪고 있는 집착과 의존성, 소진 증후와 반사회적 성격장애, 학교 폭력과 소통의 부진(불통, incompetence) 등은 시대의 문제이자 사회적 문제이며 동시에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아 신경증은 문명과 시대, 사회가 만들어낸 병리현상이지만 각각의 개인이 담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고통은 가족 관계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가족의 고통은 사회적 문제로 되기도 한다. 서로 얽혀져 있고 영향을 주고 있는 ‘불안의 관계’를 도표로 보면 아래와 같다.

현대인의 불안
 

자아 신경증 해결 방법
우리는 육신의 근육을 단련하듯 자아를 강화하는 일, 즉 정신의 근육 훈련을 해야 한다. 이는 정신적 성찰능력을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 정신의 근육 훈련을 했을 때,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영혼의 주인이 되도록, 진정한 자기 만남 속에서 삶의 생산적 에너지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기 몰입의 배타적 고독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열린 정신 속에서 ‘더불어 어울림’을 만들 수 있는 생산적 소통이 필요하다. 

깨어있는 정신, 실존의 소통미학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철학자 에픽테투스(Epictetus)는 ‘인간의 행동 감정이나 여러 가지 생각의 노예에서 벗어나서 삶의 주인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물었다. “인간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다”는 그의 말은 오늘날에도 삶의 문제를 보는 방식을 제시해주며, 여러 상담이론의 기초가 되고 있다. 내가 어떤 관점, 어떤 시선,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는가가 문제이지 그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대의 불확실성, 나르시즘적 문화의 성격을 이해하고 비판적 성찰적 사고의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 자기 긍정감을 찾고 열린 정신으로 자기 자신 및 타인과 생산적 만남을 하는 것은 깨어있는 정신이 가져오는 실존의 소통미학이다. 그러므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기 자신에게 깨어있자!’는 말이다. 내 삶의 후반부에는 정신이 깨어있어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성숙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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