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음이
모인다

이문수 신부(사회적협동조합 청년문간 이사장)

취재. 장지해 편집장

여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를 3천 원에 제공하는 식당이 있다. 서울 정릉시장 내에 위치한 ‘청년밥상 문간’. 그런데 이 식당을 운영하는 건 다름 아닌 천주교 신부다. ‘밥을 굶는 청년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2017년 10월에 문을 연 이곳. 여기에서 청년들은 몸의 배부름과 마음의 위안을 함께 채운다.
시작은 2015년,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지병과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난 한 청년의 사고 소식에서다. 그 뉴스를 가벼이 보지 않은 강 세실리아 수녀로부터 “청년들을 위한 식당을 운영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는 이문수(가브리엘) 신부. “마침 그해 9월 저희 수도회 로마 총회에서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보자’는 결의가 이뤄졌었어요. 그러니 10월의 그 아이디어가 정말 반가웠죠. 저 역시 뉴스를 보며 가슴 아팠지만 구체적 생각은 못하고 있었거든요.”
이 신부는 수개월에 걸쳐 먼저 ‘청년’에 대해 공부했다. 청년들을 위한 식당이라면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그들의 입김이 담겨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청년 상담사, 청년 활동가, 청소년 그룹홈 담당자, 실제로 고시원 생활을 해본 청년 등을 만나 경청했다. 그렇게 청년들이 오고 싶은 공간을 고민하면서 ‘청년밥상 문간’을 탄생시켰다.
물 흐르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온 과정들을 “하느님에게 홀렸던 것 같다”고 말하는 이 신부. 웃음 속에 묻어나는 그간의 많은 이야기들은 최근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이라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 ‘문간’이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처음엔 ‘신부님 이름이 문수니까 문간이라고 해요’라는 식의 언어유희로 나온 말이었는데(웃음), 찾아보니까 뜻이 너무 좋았어요. 집 밖과 집 안의 중간 지점의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놀고 쉬고 밥도 먹는 친교의 공간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청년문간)가 세상과 청년들 사이에 위치해서, 세상에 나간 청년들이 지치고 힘들면 와서 좀 쉬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공간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청년들을 위한 식당 ‘청년밥상 문간’은 작년 4월부터 사회적협동조합 ‘청년문간’으로 발전됐다. ‘청년희망로드’, ‘청년공감 잇다’ 등 다양한 문화 활동으로 청년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도 하는 것. 모든 건 청년들에게 ‘경험’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의 연장선이다.

● 완전 무료가 아니라, 3천 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한 데도 이유가 있다고요.
“청년들이 대상이니까 청년들이 와야 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물이 있으면 안 되죠. 뭐가 장애물이 될까를 생각해봤더니 청년기에는 아무래도 자존심 지키는 게 중요하겠더라고요. ‘무료’라고 하면 자신의 처지가 노출되는 거라 오히려 오지 못할 것 같아서 최소 비용으로 3천 원을 정했어요. 실제로 여기는 남녀노소 누구나 오기 때문에 누가 어렵고 힘든 청년인지 알지 못해요.”
물가는 계속 오르고, 청년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면서 인건비도 발생하다보니 3천 원만 받아서는 당연히 적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 하지만 이 신부나 그가 속한 글라렛선교수도회는 이 적자가 나쁜 적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들을 위한 적자이기 때문이다.

● 올 5월에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게 화제였습니다.
“방송을 출연하고 가장 좋은 건 많은 분들이 우리와 우리가 하는 일을 알게 됐다는 거예요. 이전에는 ‘청년들을 위해 김치찌개 식당을 하고 있습니다’ 하면 ‘그걸 왜 해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제는 라이선스를 얻은 것 같다고 할까요?(웃음)”
방송 섭외 비하인드를 이야기하며 당시의 타이밍을 ‘소름 돋았다’고 표현한 이 신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후 여러 교육과 지원을 받으며 청년문간은 내부적으로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단일 식당 하나만 잘 운영해서 최대한 적자를 줄이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게 기조였지만, 전문가 컨설팅을 통해 식당 개수를 늘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라는 조언을 받은 것. 자신이 사업가도 아닌데다 개인적 욕심으로 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주님이 허락하시면 한다’는 생각으로 3월 회의에 부쳤고, 그 회의에서 ‘여건이 된다면 여러 곳에 문간을 만들어 그 지역 청년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자’고 결정이 됐다. 그리고 2호점 제안이 와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차에 방송 섭외 전화가 온 것이다.

● 그동안 없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건데요.
“단 한 번도 새로운 걸 개척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과정 과정마다의 의미는 후에 여러 질문을 받으며 정리된 것이고, 그 당시는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나씩 했을 뿐이죠. 수녀님에게 이야기를 들었고, 수도회 신부들에게 이야기했더니 한 번에 괜찮겠다고 했고, 회의에서 안건이 통과됐고, 자연스럽게 제가 담당을 받아들였고, 준비를 했고, 이 장소를 만났고…. ‘내가 이 길을 가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될 거야’ 또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고 좋아하고 호응해줄 거야’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감사한 건, 저희의 이런 활동이 어떤 분들에게 좋은 영감과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거죠.”
특히 그에게 있어 큰 힘으로 기억되는 이들이 몇 있다. 1년 동안 모아 꽤 묵직하고 큰 돼지저금통을 전달하고 간 어떤 초등학생이 그렇고, 식사 후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식사비를 결제한(이 신부는 이를 ‘골든벨을 울린’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아주머니가 그렇다. 카페 한쪽 공간에 쌓인 쌀 포대만 보아도 ‘문간은 아름다운 마음이 모이는 공간’이라는 그의 말이 단번에 이해된다.

● 시장에서 사는 신부님의 모습은 마치 ‘성과 속의 하나 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시장 안에 살면서 식당을 운영하지만, 제가 그분들을 넘어설 수 없는 차이가 있어요. 이 많은 분들이 정말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머리로 알던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됐죠. 항상 저보다 먼저 출근하고 저보다 더 늦게까지 가게 문 열어놓고, 1년 내내 거의 쉬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미사에 빠지지 않고 성당에서 봉사활동도 하시더라고요. 종교인들보다 더 종교인답게, 더 열심히 기도하고 수도자보다 더 수도자답게 사는 분들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죠.”
이곳에서 ‘모두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엿보이는 장면 하나. ‘청년밥상 문간’이 위치한 2층 외벽은 길쭉해서 충분히 길고 큰 간판을 달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표시는 작은 간판 두어 개뿐. 좋은 일을 하는 곳이더라도 요식업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피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함께 살아감’에 대한 그 마음이 뭉클하게 와 닿는다.

●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요?
“‘그 어떤 것보다도 여러분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하려는 일, 하려는 공부, 가려는 직장… 모두 중요하죠.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도 여러분이 더 소중해요. 얼마 전에 고시 준비를 5년간 하다 내려놓은 한 청년을 만났는데, 사실 한 방향만 바라보고 가다가 멈추는 선택을 한다는 건 참 어렵고 힘든 일이죠. 그만뒀을 때 패배자라는 느낌도 들고요. 그래도, 그분은 가장 소중한 ‘나’를 지켜냈어요. 그 상황에 계속 머물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청년들도 많거든요. 실패할 수도 있고,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 실패보다 여러분이 더 소중하다는 걸 꼭 알았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의 종교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습니다.
“올 9월에 총회를 마치고 대표자들이 교황님을 알현했는데, 그때 교황님께서 ‘자신이 들은 것으로만 아는 체하는 수도자나 성직자들을 만날 때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하셨대요. 정말로 하느님을 만나고 변모해야 하는데 성경책, 교리책, 신학책에서 보고 들은 지식만으로 하느님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종교인이 많아요. 저는 그런 사람들을 ‘종교가 직업인 사람’이라고 표현해요. 사회에서는 우리를 직업 카테고리에 넣어 분류하지만, 우리는 이게 직업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우리의 Identity(신원)라고 하죠. 엄마나 아빠가 직업인가요? ‘엄마니까 또는 아빠니까 월급 이만큼 받으세요’라고 하지 않잖아요. 엄마나 아빠 역시 직업을 넘어서는 ‘신원’이죠. 종교인들도 그래야 하는데 직업으로 머물기 때문에 힘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종교가 마치 재판관처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면서 지시하고 판단 내리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에요. 종교가 가르쳐주는 사랑, 자비, 베풂, 나눔의 가치들을 그대로 실천하면 되지 않을까요? 묵묵히, 작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앞장서서 하면서요.”

●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사제 서품을 받거나 종신서원을 할 때 서품 성구(聖句)라고 해서 일생의 모토로 삼을 성경 말씀을 뽑아요. 그때 제가 뽑은 말씀이 시편 89편 2절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라는 구절이에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정말 많이 사랑하시고, 계속해서 그 사랑을 주시잖아요. 사랑의 힘으로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행복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살아보니, 고통의 순간에도 행복이 없어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저도 올해로 수도생활 23년 차인데, 매년 고통이 없었던 해가 없어요. 어떨 땐 정말 ‘죽을 만큼 힘들다’ 할 때도 있었죠. 그렇다고 제가 불행했느냐, 아니에요. 저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해요. 수도생활을 갓 시작했을 땐 고통을 없애려고 힘을 많이 썼는데, 하나의 고통이 없어지면 또 다른 고통이 생기더라고요. 3년쯤 지나서야 ‘맞아. 부처님께서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하셨지’ 하면서 깨달음이 생겼죠. 인생이 고통의 바다라는 건, 인생에 고통이 없을 수 없다는 거잖아요. 고통이 없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나니까 고통을 없애려 애쓰기보다는 고통 중에도 행복하려고 힘썼고,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게 됐어요. 간단하게 표현하면 행복은 ‘만족하는 것’이지만, 구름에 가린 해를 느끼는 연습, 행복을 느끼고 찾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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