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 품고 오래오래

검댕 속 온기를 전하는, 연탄공장

취재. 장성문 객원기자

하나, 둘…. 갓 태어난 연탄들이 대열을 갖춰 나온다. 나자마자 출전인 것이 슬픈 운명일까, 연탄은 곧바로 트럭에 실려 추위를 물리치러 달려간다.
이곳은 강원도 영월의 한 연탄공장. 하늘이 푸르고 산은 높은 만큼 날이 차건만 아침부터 공장은 분주하다. 벌써 트럭 여러 대가 배달할 연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육중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기계. 직원들도 배달원들도 연탄 맞을 준비를 시작한다.
연탄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무연탄 가루가 분쇄기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 무연탄은 석탄의 일종으로,광산에서 채굴되어 과거에는 철로로 지금은 트럭으로 공장에 운송된다. 분쇄기에 들어간 무연탄은 이물질이 제거되고 입자가 고르게 갈려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윤전기에 도착한다. 윤전기는 고운 탄가루를 스물두 개의 구멍이 뚫린 연탄으로 찍어내 공장 밖으로 뱉어낸다.
연탄이 나오자 배달원들이 양팔을 벌려 트럭에 연탄을 차곡차곡 싣는다. 대개 한 차에 실리는 연탄 수는 천 장. 한 가구가 겨우내 쓰는 연탄 수가 1,500장이니 한 가구의 겨울을 책임지는 양이다. 이 날 아침에만 대여섯 대의 트럭이 연탄을 한가득 싣고 갔다.
“연탄은 서민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해주고, 땔감을 대체했으니 산림녹화의 일등 공신이죠. 또 불 피우는 방식을 바꿔 부엌의 역사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동원연탄의 조태윤 대표가 연탄의 역사를 설명한다. 88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연탄은 전 가구의 90%가 사용할 정도로 온 국민의 생활필수품이었다. 오죽하면 전시물자처럼 취급되어 국가가 값을 조절하려고 보조금 정책을 시행하고 수백만 톤을 비축했을 정도.
하지만 소득이 올라가고 삶이 안정화되면서 석탄연료는 점차 기름과가스로 대체되었다. 전 세계적인 탈탄소 움직임도 수요 감소에 한몫했다. 90년대 말 오일쇼크 때 기름값이 급등하면서 잠깐 인기가 높아졌지만 하향세 산업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흐름. 그러다보니 전국의 많았던 공장과 종사자 수는 계속 줄고,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다보니 종사자 평균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조 대표는 오랜 세월 서민들의 삶을 지키던 연탄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 전 세계적인 탄소저감 움직임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산업화의 역군인 연탄의 과거까지 사라지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탄광이 없어지면 정부에서 지원도 해주고 박물관도 세워주는데 아직까지 연탄은 그런 게 없어요. 그래도 서민들의 삶을 지켜준 일등공신인데 대접받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하죠.”
연탄 생산만으로는 공장이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조 대표. 그래서 최근 그가 구상하는 일이 있으니, 요새 인기가 높은 관광·체험 프로그램과 연탄의 접목이다.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들에게는 추억을 불러 일으키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연탄을  통해 산업화의 과정을 교육시켜 연탄의 역사를 보존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공장 부지에 제법 큰 모형 탄광을 설치했다.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것부터 연탄을 찍어내는 모든 과정을 한 공간에서 시현하고자 함이다. 여기에 모형 부엌도 설치하여 실제 가정에서 연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까지 구현할 계획이다. “연탄에 대한 것들을 작게 보존하고 싶어요. 광산은 없어졌어도 탄광촌이나 박물관이 있는데, 연탄에 대한 건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고 정부 차원의 계획도 전혀 보이지 않거든요. 저라도 보존해야죠.” 자랑스러운 우리의 석탄 문화를 보존하는 데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는 조 대표다.
오후에도 트럭이 공장을 찾는다. 하루에 공장을 찾는 트럭은 약 열 대. 개중에는 2~3회를 오가는 트럭도 있으니 연탄공장의 하루 생산량은 약 1~2만 장 사이다. 그렇게 트럭이 오면 기계가 돌고, 트럭이 가면 정비를 하는 게 연탄공장의 하루 일과다.
어둔 곳에서 검게 태어나 따스함을 밝히고 하얗게 사라진다. 한 번 피우면 오래오래 따뜻함을 주는 연탄은 오늘도 누군가의 몸에 온기를, 마음에 온정을, 추억에 불씨를 지핀다.    Ι동원연탄 033)378-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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