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광에 담는 삶의 지혜

‘뚝딱뚝딱’ 뭐든지 고쳐내는, 구두방

취재. 장성문 객원기자

“이거는 만능박사, 맥가이버가 돼야 해. 손님들은 보면 딱 알아. ‘아 여기는 잘 하는구나.’ 그러니까 손님 마음에 들게 해야 해. 돈이 문제가 아니야. 손님 마음에 들면 비싸도 ok고, 싸도 개떡 같으면 다신 안 와.”
전자제품과 손목시계의 메카 종로 세운스퀘어 앞 노상 구두방. 그 좁은 공간에 한 사람의 삶과 꿈이 웅크리고 있다. 서울에서만 구두방을 운영한 지 50년. 주웅철(74) 씨는 그렇게 구두와 한 인생을 같이 했다. “가죽은 거의 귀신이지. 운동화서부터 구두, 부츠, 가방도 하고, 수선에서 광택, 염색까지…. 말하자면 종합병원이야. 기술이 있다 보니 우산도 가져오고, 하여간 사람들이 별 걸 다 맡겨.”
그가 구두 일을 시작한 건 1970년대 초반. 고향인 충북 청주공고를 졸업하고 울산현대조선에 입사한 그는 2년만에 퇴사하고 상경했다. 원체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기에 회사 생활이 적성에 안맞았던 것. “매여있는 것도, 남 밑에 있는 것도 못하겠더라고. ‘이러다 언제 젊은 꿈을 펼쳐보겠냐’ 하고 서울로 왔어. 아주 배고픈 시절이었지.”

그러다 우연히 구두 일을 하던 고향 후배를 만난 게 이 일의 시작이 되었다. 후배의 구두방은 안국동 한국일보 본사 앞에 있었는데, 13층 건물에 근무하는 직원이 4천여 명이었고 지근 거리에 내무부 건물도 있었다. 말 그대로 일거리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는 후배를 도우며 구두 일에 눈을 떴다. “이게 돈이 되더라고. 또 일을 해보니까 손재주가 좋아서 빨리 배웠지.”
‘이거다’ 싶어 권리금을 내고 자리를 물려받은 주 씨는 직원 두 명을 고용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주 씨가 사무실을 돌며 구두를 수거해 오면 직원들이 구두를 닦는 방식이었다. 당시 수선 기술이 없던 그는 수선 일감을 기술자에게 물어다 주고 수익을 6대 4로 나눠 갖는 수완도 발휘했다. 구두 주인 얼굴은 몰라도 구두만 보면 몇 층, 무슨 과에 몇 번째 책상인지 알 정도였다는 그. “그렇게 8년 열심히 해서 돈을 꽤 벌었어. 그 돈으로 고향 내려가서 장가도 가고 지금으로 말하면 편의점인 연쇄점도 차려서 제법 자리를 잡았지. 근데 욕심을 내서 고기집 열었다가 홀딱 말아먹었어. 하하!”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그는 홀로 서울로 올라와 구두 일을 다시 시작했다. 기술만 있으면 돈 나갈 게 거의 없는 게 이 일의 장점. 그렇게 종로, 용산, 명동에서 50년 세월이 흘렀다. 그 긴 시간, 그의 구두 인생도 수선을, 광택을, 염색을 거쳤다. 예전에는 기술을 몰라 그냥 돌려 보내야했던 손님들도 이젠 문제없다. “나는 이 일에, 내 기술에 자부심이 있어. ‘나는 어디 가서도 안빠진다. 일을 해놓으면 누구나 다 좋아하니까!’ 그런 자부심을 갖고 이때까지 해왔지. 얘들한테도 ‘네 아빠 구두 닦는다고 어디 가서 절대 기죽지 말라’고 했어. 그렇게 삼남매 다 대학 보내고 큰 손주가 벌써 고3이야.”
손님들에게 ‘멋쟁이에, 믿음이 간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는 주 씨. “예전에 용산에 있을 때 앞에 학교가 있었는데, 학생들 운동화나 실내화 뜯어진 거는 한 푼도 안 받고 고쳐줬어. 지금도 조금 떨어지고 그런 거는 어지간하면 돈 안받아. 그러면 다음에 손님이 또 와. 내가 욕심만 내면 1회로 끝나지만 손님한테 베풀면 또 와. 그리고 새끼를 쳐서 계속 데려와. 자기 집 앞에도 구두방 있어. 근데 굳이 나한테 와. 그렇게 내 얼굴 안 깎아먹고 최선을 다하는 게 내 노하우야.”

오후가 되자 구두방 안에 색소폰 소리가 가득 찬다. 손님이 없을 때는 독서와 색소폰 연주를 한다는 그. 코로나19로 손님들 방문이 유독 줄었고,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일거리도 조금씩 줄어 점점 개인시간이 늘었다. 요즘은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신발들도 견고히 잘 나와 사람들이 구두방을 찾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면 3~4년 후까지만 일하고 꿈꿔왔던 자전거전국일주를 하고 싶다. “난 말년에 행복감을 느껴. 자식들 앞가림 다 하고, 자산은 없어도 손 안 벌리고 능력껏 일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돈이) 있으면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없으면 죽는 소리 안 하고. 마음을 곱게 쓰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어. 열심히 일하고, 어울릴 땐 열심히 어울리고, 쓸 땐 쓰고, 그게 행복이야.”
그에게 구두 일은 어떤 의미일까. “구두 일은 내 인생이다! 중간중간 다른 일도 했지만 이 일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도 부양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연쇄점 이후로 난 이 일에 끝까지 매진했어. 내 인생의 전부고 행복이지.” 햇볕 좋은 오후, 그의 색소폰 소리를 따라 손님들이 구두방을 찾아온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