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간이역에
서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빨리 일어나~ 학교 늦겠다.”
엄마의 반복되는 재촉에 겨우 눈을 뜨고 시계를 봅니다.
“흑, 늦었다.”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가방을 챙겨 대문을 나섭니다.
“밥은 먹고 가야지~.”
“학교 늦었단 말이에요. 배 안 고파요.”
“쯧쯧.”
저 멀리서 기차가 달려옵니다. “꽤~액~.” 오늘, 잔뜩 화가 났다는 듯 내지르는 기적 소리에 발걸음은 더욱 바빠지죠. 헐레벌떡 개찰구로 나서면 역무원 아저씨의 걱정이 앞섭니다. “빨리 가. 이러다 열차 못 타겠다.” 급한 마음에 열차 선로를 가로질러 달려갑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이놈아, 아무리 급해도 그리로 가면 어떡해. 사고 나려고. 쯧쯧.” 겨우 객차에 몸을 싣자 열차는 아쉽다는 듯 무겁게 몸을 움직입니다. ‘오늘 이 게으른 놈, 안태울 수 있었는데….’
“겨우 탔네.” 친구의 반김에 한숨을 돌리며 화답하죠. “아, 하마터면 놓칠 뻔 했어. 휴~.” 가슴까지 차오른 숨을 내쉬자, 기차 굴러가는 소리가 온몸으로 전해집니다. ‘치익~칙~ 덜컹덜컹~.’ 그 반복되는 리듬으로 열차는 기차굴로 빨려 들어가죠. 사방이 캄캄해지고 귀가 멍해지는 순간, “야~~~~~~” 친구의 긴 고함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왜 그래?” “굴 속에 들어오면 괜히 소리를 지르고 싶어.” 사춘기가 막 지난 소년은 아마 누군가가 무척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기차굴을 벗어나자 친구가 키득키득거리더니 짤막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줍니다.
“옛날에 엄마랑 딸이 기차를 탔는데, 앞에 젊은 총각이 앉았다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그랬대. 열차가 굴 속에 들어가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너 그때 앞에 앉은 남자를 조심해야 된다고. 그리고 잠시 후 기차가 굴을 빠져 나왔는데 딸이 엄마에게 물었대.” “뭐라고?” “엄마, 다음 굴은 얼마나 더 가야 나와요? 키득키득.” “왜?” “하여튼 넌 어려.” 안다고 뻐기는 놈이나 모른 채 묻는 놈이나 거기서 거길 텐데. 그런 시절이 있었죠.
하교하는 저녁시간이면 아이들은 역으로 모입니다. 거기에는 통학하는 아이도 있고, 통근하는 선생님도 있고, 일 보러온 아저씨 아줌마들이 섞여 북새통을 이룹니다. 오늘도 저녁 통근 기차는 언제나 그렇듯 어김없이 느림보 걸음으로 달려옵니다. 10분 늦는다는 방송은 예사이고, 20~30분 늦을 때도 허다하죠.
“또 늦어. 완행열차는 이게 문제라니까. 급행열차 다 비켜주고 오니까 이렇지.” 
친구의 투덜거림을 달래려, 선로 위에 올라서 두 팔을 벌리고 멀리 걷기 놀이를 합니다. 이내 짜증은 사라지고 누가 멀리 가는지 시합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삑~.” 저 멀리서 들리는 호각소리. “야, 이놈들아! 위험하다, 얼른 올라와.” 그래도 연신 키득키득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죠.
옛날 기차에는 참 많은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먼 세상으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가 기차였기 때문이죠. 어린 나이에 밤기차를 타고 도회지로 도망간 동네 형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떠돌았고, 그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절규가 가끔 어둔 밤을 가로질러 흘렀습니다. 또 서울로 유학 간 출세한 아들을 보기 위해 밤기차에 몸을 실었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연이며, 밤기차 소리에 고향이 그리워 눈물 베개를 베고 잤다는 젊은 시절의 추억들. 참, 느리게 흘러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먼 곳에 있는 지인을 보기 위함입니다. 휙~, 기차가 달려갑니다. 눈이 아른거립니다. 예전의 바깥 풍경은 한참을 지나야 사라져갔는데, 이제는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니 바깥 풍경을 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세상이 너무 빨라져 멀미가 난다고 하죠. 그래서 간이역을 찾았습니다. 세상 좀 천천히 여유롭게 살아보려고요. 지금 당신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지요?
간이역이 아름답다는 경북 의성 화본역에 서서 지난 시간을 돌아봅니다. 여긴 아직도 시간이 느리디 느리게 흐르던 100여 년 전 증기기관차 풍경이 기차길 옆 높이 솟은 급수탑에 그대로 머물러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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