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의 농사,
해보겠습니다

땅과 함께 성장해가는, 청년농부

취재. 장성문 객원기자

충남 홍성군 홍동면. 하늘은 푸르고 땅은 드넓다. 평야로 이뤄진 이곳은 멀리까지 논밭이 펼쳐져 여름이면 초록의 생명 에너지가 아지랑이 되어 대지에 꿈틀댄다.
이곳에 홀로 조심스레 땅을 굽어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40도에 달하는 뙤약볕에 이미 셔츠와 수건은 땀범벅. 하지만 오감으로 자연의 신호를 감지하며 바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그는 귀농 4년차 청년농부 변중섭 씨. 3년간의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올해 자신만의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다.

“그동안은 안착을 위한 시간이었고, 이제 저만의 사업을 시작한 거죠. 일반 채소보다는 과수 쪽에 흥미가 있어 품목으로 포도를 선택하였습니다. 이제 시작한 만큼 보시다시피 아직 자랑할 만한 게 없습니다. 하하!”
그의 말처럼 아직 그의 250평 하우스 두 동에는 수확할 만한 농산물이 없다. 이제 막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얇은 포도나무 줄기와 김장철을 대비한 생강은 초등학생 키만한 풀들에 비하면 보이지도 않는 수준이다. 포도를 수확해 판매하려면 3년은 기다려야 하고 생강도 11월에 수확하니, 그때까지는 꼼짝없이 참고 버텨야 할 판이다. 그래도 그는 매일 정성들여 풀을 뽑으며 땅과 농작물에 애정을 쏟는다. 자신의 땅과 농사를 위해 기다린 3년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3년은 두려움보다 기대감과 책임감의 시간이다.
“처음 귀농을 생각한 건 환경 관련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면서였어요. 어렴풋이 농촌과 자연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화학 재료나 어떠한 인위적인 처방 없이 자연 그대로의 농사를 짓는 생태농업, 유기농업에 끌려 귀농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그때가 30대 중반.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6개월간의 귀농 합숙교육까지 받는 등 결심을 밀고 나갔다. 이후 유기농업으로 인지도가 있던 홍성에 터를 잡고 선배 귀농인들의 도움을 받아 빈집과 농지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꿈과 현실은 언제나 차이가 있는 법. 주변에서는 그가 꿈꾸던 생명농업을 당장 큰 수확을 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말렸다. 망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농사를 지어 어느 정도 윤택한 생활을 하려면 농지 규모가 크거나 화학 재료를 써서 수확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자금이 많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청년이 그러기는 어렵죠. 화학 재료는 가치관상 안 맞고요.” 정부 저금리 대출 제도도 농사만으로는 상환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 모아둔 돈이 많거나 리스크를 크게 짊어지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게 그의 말이다. 그도 처음에는 지원 제도를 지양하고 스스로 자금을 모았지만 결국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지원을 받아 새 출발을 하게 됐다.

“농사도 한편으로는 사업이다보니 돈 생각이 떠나지를 않아요.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도 도시에 있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죠. 환경 의식도 오히려 도시가 낫고요.” 그럴 때마다 그는 귀농을 결정하게 했던 ‘농적 삶’을 떠올리곤 한다. “쉽지 않은 면도 있지만 자연과 가까이 호흡하는 생활에서 오는 한적함과 직접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점은 귀농의 장점이에요.”
당장 수확물이 없는 만큼 하우스에 나가지 않는 일요일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 외 시간에는 마을교사 등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그. 그렇게 그는 땅을 일구는 ‘농부’의 신념을 지켜나갈 생각이다. “가끔은 ‘내가 왜 내려왔나’ 자문하기도 해요. 외로울 때도 있고 특유의 농촌 문화에 지칠 때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꿈꿨던 ‘생명을 살리는 농업’은 실현해보고싶어요. 농사를 짓겠다는 결심을 하고 내려왔는데 안하면 후회되잖아요.”
생명농업의 핵심은 결국 땅. 화학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잡초를 뽑을 때도 뿌리는 남겨둬 미생물이 땅 속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건강한 땅을 조성하는 게 과제다. 자신의 텃밭에서 수확한 찐 감자를 먹으며 그는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에 대해 말한다. “농사를 인간과 대지의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한 피에르 라비도 처음에는 주변에서 무시당했어요. 하지만  결국 자연적으로 가꾼 그의 땅이 풍요로워지면서 경제적으로도 옳았다는 점을 증명했잖아요. 반면 화약 재료를 쓴 땅들은 생명력을 잃었죠. 갈수록 자연과 생명의 중요성은 입증될 거라고 생각해요.” 마침 그에게 다가오는 네 살배기 진돗개 영수. 영수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에 묻은 땀과 풀과 햇빛이 ‘생명’을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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