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느티나무를
                만 나 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1.
울퉁불퉁, 볼품이 없습니다.
기둥으로 쓰자니 곧지 못해 쓰임새가 없고, 땔감으로 쓰자니 쑥쑥 커가는 모습에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냥 그냥, 방치하듯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동네어귀에 큰 그늘이 생겼습니다. ‘멍청하기도, 멍청하기도….’ 말 한 마디 없이 혼자 외로이 섰습니다. 
가끔, 새들이 잎사귀를 헤집고 다니며 숨바꼭질을 합니다. 또 가끔, 강아지들이 한쪽 다리를 들어 오줌을 찍 싸고 지나가며 컹컹 괜히 트집을 부립니다. 저녁이면 태양은 햇살 몇 개를 꺾어 가지 사이에 몰래 숨기며 다음날을 기약하죠. 
길에서 만난 스승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돕니다. “멍텅구리처럼 살아야 한다. 겉똑똑이가 되면 안 된다.” 오래오래 그늘이 되라는 말씀이었군요.

2.
풍파가 왜 없었겠습니까.
살아온 세월이 많으니 온갖 악다구니가 바람처럼 지나갑니다. 어느 날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가 했더니, 어느새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사자처럼 으르렁거리고 벼락이 떨어집니다. 그래도 정 못 견딜 땐 별 수 없습니다. 생가지라도 몇 개 찢어 그 상처를 보듬으며 견딜 수밖에요.
사람의 1,000년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해 100여 년이 지나고, 강감찬 장군이 거란의 침입을 막고, 이자겸과 묘청의 난이 일어나고, 몽고군이 침입해 온 민족을 떨게 했죠. 그리고 600여 년 전 조선이 건국되고, 왕자의 난과 왜구의 침입, 전염병의 창궐, 일제강점기 시절을 거쳐 민족 간의 동란 등등.
이해되시나요? 산다는 건 난파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일이기도 하죠. 얼마나 조마조마해 하며 지나왔을까요. “휴~.” 그래서, 말하기를 ‘어눌한 듯 조심히 하고 일 당하면 바보인 듯 삼가 행하라’고 했겠죠.

3.
애간장이 녹아내립니다.
이것도 걱정이고 저것도 걱정, 낮에도 걱정이고 밤에도 걱정, 기뻐서 걱정이고 슬퍼서 걱정, 좋아도 걱정이고 미워도 걱정, 부자라서 걱정이고 가난해서 걱정, 그리고 걱정도 걱정입니다. 그렇게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그래야 후회가 없다. 너만 행복하면 난 걱정이 없다.” 늙은 엄마는 늘 나이 든 자식 걱정에, ‘걱정 없다’는 말로 걱정을 놓지 못합니다.
그러니, 천년을 살아온 나무인들 어찌 걱정이 없었겠습니까. 그 안에 천년의 걱정을 담고 사느라 몸통은 울퉁불퉁해지고, 애간장이 녹아 속은 텅 비어버렸죠. 아마, 비우지 않으면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았기에 속을 텅 도려낸 것이겠죠.
“야, 우리 나무통 속에 들어가서 숨자. 낄낄.” 철부지 아이들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띄고 숨바꼭질을 합니다. 그 속이 엄마 품 같이 포근한 걸, 아이들만 압니다.

4.
그래서, 큰 그늘이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바람은 지나갈 뿐, 그 자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거센 바람은 더 빨리 지나갈 뿐이죠.
400년, 800년, 1000년을 지켜온 나무그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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