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삶을  건지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할머니의 바구니가 무겁습니다.
“끙~차.”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팔딱팔딱 뛰는 생선들이 머리 위에서도 몸부림을 칩니다.
“허허~, 가만히 있으래두.”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지들도 살려고 태어난 생명들인데~.’ 하지만 어린 손자를 떠올리고 바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아들을 생각하면서 이내 머리를 흔들어 그 처량한 생각을 떨쳐버리죠. 머리에 올린 바구니가 한결 가벼워집니다. 이놈들을 잘 구워서 저녁 밥상에 올릴 생각이며, 가족들의 깔깔 웃음 가득한 젓가락질을 생각하니 절로 행복이 피어나죠. 세월의 바다가 아무리 모질게 굴어도 좁은 골목길엔 가족이 기다리고 있기에 살맛이 납니다.
할머니의 아침이 바빠집니다.
꼬일 대로 꼬인 가느다란 그물을 하나하나 펼칠 때마다 지난 세월의 추억도 함께 끌려 올라옵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리도 악다구니를 하며 살았는지….’
산다는 게 지나고 나면 별일이 아니지만 철 없을 당시에는 하늘이 무너지고 바다가 뒤집히는 일이었죠. 그 넓은 바다 한 가운데서도 좀 더 많은 바다를 차지하기 위해 눈을 흘기고, 남이 잡은 물고기는 언제나 내가 잡은 물고기보다 더 큰 것 같아 가슴을 태우며, 뱃전에 부딪혀 세차게 튀어 오른 포말을 보고서는 욕을 한바탕 기어이 쏟아내야 속이 시원해지던 시절. 아마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악다구니였을 겁니다. 처절하지만 살아내야 했던 시절이었던 거죠.
‘바다가 내 모든 걸 뺏어갔지만 또 바다 때문에 살았지.’
할머니의 얼굴에 바다가 담겼습니다.

넘실넘실 파도가 울렁이는 주름살 사이로 배 한 척이 삐거덕 삐거덕 흔들리고 있죠. 오래 전에 떠나간 뒤 돌아오지 못한 배입니다. 그 어디, 표식을 할 수 없는 바다 깊은 곳에 꼭꼭 숨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죠.
‘그 놈의 영감, 보고 싶지도 않은 모양이제.’
그래서 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이면 바다를 내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 가라앉은 배가 그 풍랑을 타고 돌아올까 싶은 거죠. 괜한 기다림이란 걸 왜 모르겠습니까. 바닷물로 그리움만 가득 채웠습니다.

바다에 어둠이 내립니다.
방금까지 파랗던 바다가 검게 모습을 바꿉니다. 간혹 처얼썩 치는 파도가 아직 잠들지 않은 바다의 숨결을 알려줍니다. 항구로 돌아온 배는 모처럼 두 다리를 편히 뻗어 잠에 들고, 항구를 떠난 배는 밤새 뜬눈으로 그물을 던지겠죠.

항구에 다시 불이 켜집니다. 배 한 척, 아침 항구로 미끄러져 들어옵니다. 아침 햇살을 한가득 실어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갈매기들이 먼저 알고 마중을 나갑니다. 검붉은 팔뚝의 사내가 배 바닥에서 물고기 몇 마리 건져내 힘껏 던집니다. ‘옜다. 기분이다. 함께 먹고 살아야지.’ 사내의 힘찬 목소리에 항구의 배들이 화답이라도 하듯 일제히 몸을 흔듭니다. 아침 바다는 그래서 늘 기분이 좋습니다.
저 멀리 언덕 위에서 보이지도 않는 손 하나가 흔들립니다. 밤새 몸을 뒤척이던 할머니가 비로소 긴 숨을 내쉬며 중얼거리죠. “무사했구나. 고맙다.” 조심조심, 아침의 바다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