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발전

마이클 리어던(이어돈) 신부

취재, 장지해 편집장

제주와 성이시돌 목장에 발을 들인 건 수의사로서였다.
그렇다고 특별한 뜻이 있어 온 것은 아니었다. 당시 아일랜드에서 수의학을 전공하고 있었던 그는 학장에게 다른 추천서를 부탁하러 갔다가 ‘한국에 있는 아일랜드 신부님이 수의사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제주에 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는데….
“신부님이 수의사 자원봉사자를 찾는다고 했어요. 그때 저는 다른 곳에 제출할 추천서를 학장님에게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잘 보여야 하니까, ‘아, 네. 알아봐주세요’ 하고 별 생각 없이 말했죠. 그랬는데 얼마 후 와달라고 답장이 왔다는 거예요.”
이후 본인 의지와는 별개로 상황이 진행되면서 한국행이 결정된 그.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를 두고 자원봉사를, 그것도 낯설 디 낯선 한국으로 가는 것은 대부분의 지인들이 말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출국 날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왜인지 평화가 느껴졌다. 그때 느낀 마음의 평화를 신부의 길을 선택할 때도, 이시돌농촌산업개발회(이하 이시돌협회) 이사장직을 맡게 될 때도 똑같이 느꼈다고 말하는 마이클 리어던(한국명 이어돈) 신부. 그리고 그 느낌은 ‘이 느낌을 따라가면 어려움이 있어도 행복하다’라는 선택 기준이 되었다.
제주의 대표관광지인 성이시돌 목장과 새미은총의 동산.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예수의 사랑을 현실에서 실천해내고자 했던 이시돌협회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들여다보게 된다.

● 신부로서 이시돌협회 이사장직을 겸하고 계시지요?
“이시돌협회를 처음 만든 故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님의 후임으로 이사장이 된 지 10년 정도 되었어요. 이사장직은 종교적인 일이 아니지만, 사제와 마찬가지로 성소(聖召)라고 생각해요.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초대받는 일인 거죠. 지금도 저는 능력이 없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나에게 맞는 일이다’라는 걸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시돌협회의 기원(?)은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1954년에 제주에 온 故 임피제 신부(2018년 선종)는 당시 매우 빈곤하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한 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길을 고민한다. 이때 성당 주변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새끼 밴 돼지 한 마리를 들여와 양돈업을 시작한 것이 아시아 최대 양돈 목장이자 제주 근대 목축업의 시초가 되었다.

● 양돈 목장 외에도 신용협동조합, 사료공장, 한림수직사 등 사람들의 자립을 위한 다양한 일들을 해왔습니다.
“이시돌협회의 모든 일은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시작하지 않았어요. 모두 어떤 상황 때문에 하게 된 것들이죠. 예를 들면 임 신부님이 제주에 막 들어왔을 당시 제주 농민들의 자살율이 매우 높았어요. 빚 때문이었죠. 교회의 가르침에 ‘자살하면 안 된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와 같은 가르침이 있지만, 그 말은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줘야죠. 그래서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역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고, 성공했어요.”

그의 말처럼, 이시돌협회의 모든 일은 ‘지금 이들에게(이곳에) 필요한 것이 뭘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비롯됐다. 복지의원, 유치원, 요양원(양로원), 청소년회복 지원시설 등 여러 복지 분야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크게 시작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하나씩 더해가는 것이 이들의 방식인 것. 예를 들면 최근 운영을 시작하게 된 청소년회복 지원시설도 그렇다. 아이들과 더 가깝게 지내며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최소 인원으로 구성되는 1호 보호시설 운영을 선택한 것. 이후 큰 시설이 필요하게 되면 두 번째, 세 번째 1호 시설을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 처음부터 크게 시작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예수님은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 주면 충분하다. 물 한 잔이라도 건넨 사람은 상 받을 것’이라고 했어요. 꼭 큰일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시시하고 작은 일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충분해요. 예수님은 신이니까 구원이 가능하고, 우리는 불가능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병을 거두는 건 할 수 없지만, 기도해줄 수 있고, 손 잡아줄 수 있고, 같이 옆에 앉아줄 수 있잖아요.” 

● 임 신부님과 함께 한 40여 년 동안 추억도 많죠?
“수의사로 봉사를 하러 왔을 땐 별로 같이 생활 안했어요. 미사 때 가끔 보는 게 전부였고, 주로 간섭하지 않고 일을 맡겨줬죠. 같은 나라 출신이지만 나이 차이가 25년 정도 나기도 했고요. 그러다 사제가 되어 다시 와서 10년 정도 매일 밤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면서 깊은 대화를 많이 했어요. 임 신부님에게 배운 것 중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게 있는 데, 임 신부님은 다른 사람의 사업이 잘 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매우 좋아했어요. 당신은 힘들고 걱정이 있어도 옆 목장 잘 되면 질투 없이 함께 기뻐했죠.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음 배우면 세상이 더 행복할 텐데요.(웃음)”

언젠가 임 신부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돈사를 지어서 운영하면 돈을 더 크게 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임 신부는 ‘가능하면 이웃과 경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말라’고 했다. 자본주의적 사고였다면 불가능했을 말이다.

● 물질만능주의로 흘러가는 세상에 대한 고민도 할 것 같습니다.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어요.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실제로 사업을 하다 보면 자본주의에 의지도 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자본주의는 욕심을 따라가는 것이라서 돈 외에 다른 가치가 아무 것도 없죠. 우리는 현재 새미은총의 동산 관리비로 몇 천만 원이 들지만, 입장료를 받지 않아요. 그렇지만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필요하죠. 몇 년 전부터 성이시돌 목장 테쉬폰(곡선 형태로 합판을 말아 고정한 후 가마니와 시멘트 등을 덧발라 만들어진 집)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철거하자, 입장료 받자’ 등 여러 의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그 옆에 다른 회사와 함께 작은 아이스크림 카페를 열었죠. 테쉬폰을 보기 위해 돈 내라는 것이 아니에요. 부담되지 않게, 억지스럽지 않게 서로 좋은 방법을 찾는 거죠.”

땅을 팔라는 제안도 많이 받지만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당장의 큰 돈보다, 생태와 자연을 위해 푸른 초원을 잘 유지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사람다움’의 가치는 회계 상 수입·지출 계산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다.

● 힘든 순간들도 있었을 텐데요. 그 땐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직원 문제로 힘들었을 때가 있었어요. 노조까지 설립되어 고용주 입장에서 교섭이라는 것도 하게 되었어요. 그 때 몇 가지 이해관계 때문에 사람과 다퉈야 하는 게 가장 괴롭더라고요. 그때마다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빨리 해결해달라고 계속 기도했지만 전혀 응답을 못 받았어요. 그러다 갈수록 사람에 대한 미운 마음이 생기는 나를 발견했고, 다시 기도했어요. ‘일은 해결 안 해주셔도 좋으니까 이 사람들 미워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요. 그 기도에는 대답 해주셨어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인정하니까 일도 해결됐고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건 나쁜 일이지만, 그것이 나쁜 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좋은 가르침을 주셨잖아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일어나도 그 경험을 통해 다시 좋은 일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 새미은총의 동산이나 성이시돌 목장은 종교가 사람들과 편안하게 만나는 공간이 된 것 같습니다.
“새미은총의 동산이나 성이시돌 목장은 종교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니에요. 동산을 설계할 때 생각한 중요한 역할 몇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천주교 신자들이 와서 기도하고 예수님을 묵상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거였죠.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굳이 종교를 바꾸지 않아도, 예수님이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관계 안에서 마음 편해질 수 있잖아요. 요즘 ‘종교’라는 단어, 갈수록 부정적으로 느껴져요. ‘이 종교 믿어라. 이 종교가 맞다. 이 종교는 옳지 않다’라며 나누는 건 진짜 역할이 아닌 것 같아요. 예수님도 비유대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으니까요.”

● 세상을 위한 종교와 종교인들 역할에 대한 고민도 많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면 돼요. 하지만 모두 다 빛이 되면 눈 아프고, 모두가 다 소금 되면 짜서 못 먹어요.(웃음) 종교와 종교인들은 빛과 소금처럼 사회 안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해야죠. 그렇다고 종교가 너무 힘이 없으면 무시 또는 외면당하기 쉽고, 너무 힘을 가지면 사회와 부정행위를 같이 하게 돼요. 종교의 힘이 적당할 때 가장 좋은 영향 줄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처럼 모시고 싶어 했지만, 예수님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셨어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예수님께서 삶으로 보여주셨다고 생각해요.”

●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지 마세요. 사랑을 제대로 아는 방법은 남에게 사랑을 받는 게 아니에요. 내가 사랑을 할 때 사랑을 느낄 수 있어요. 행복도, 찾으려고 하면 절대 찾을 수 없어요. ‘이 물건 가지면 행복할거야, 강남에서 살면 행복할거야, 해외여행가면 행복할거야’라면서 끊임없이 찾지만 행복하지 않잖아요.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때 진짜 행복할지 몰라요. 이거, 포기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할 때 진짜 행복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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