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부처가족이 산다

천불천탑 운주사에서

취재. 노태형 편집인

1.
“소식 들었어? 저기 산 위에 있던 부처님이 벌떡 일어났다네.”
“뭐~? 천 년을 누워있던 부처님이 일어났다고…? 누가 봤대?”
“눈 오는 날 새벽녘에 저기 위 외딴집 사람이 물 길으러 가다가 봤다는데?”
“어떻게 하고 있었대?”
“부부 부처님이 손을 꼭 잡고는 이산 저산을 둘러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는데….”
“세상에, 이제야 좋은 세상이 오려나보네. 우리,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지. 얼른 가서 확인해 보세.”
“그러세, 이제야 좀 살만해지려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지막한 산을 오릅니다. 이내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그게 대수겠습니까. 누워있던 부처님이 일어나는 날이면 새 세상이 열린다는데….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는 금세 실망감으로 바뀝니다.
“아니, 이게 뭐야. 그대로잖아. 그럼 그렇지. 누워 있는 부처가 어떻게 일어나. 참~.”
“그러게…. 저 윗집 사람이 분명히 봤다는데~.”
“순 거짓말이야. 쯧, 우리가 언제 좋은 세상이나 구경해 볼 팔자겠어.”
터덜터덜 산 아래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힘이 빠집니다.

2.
“부처님, 부처님~. 왜 부처님은 사람들을 자꾸 속이세요?”
“이놈아, 내가 뭘 속였다고 그래.”
“아니,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는데,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안돼요?”
“이렇게 누워있는 게 얼마나 한가하고 좋은데 그러냐.”
“새벽마다 일어나 봉우리들을 돌아다니시잖아요. 굳이 감출 필요가 있어요?”
마냥 누워서 딴청만 피우는 와불 부처 부부에게 투정하듯 애기 부처님이 따지죠. 그래서 귀찮은 듯 몇 마디를 던집니다.
“세상은 벌써 좋아져 있어. 내가 일어난다고 더 좋아질 세상이 아냐.”
“왜요?”
“사람들은 내가 누워있으면 천년이고 만년이고 희망을 갖고 기다리지만, 만약 내가 일어나면 ‘왜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냐’고 원망할 걸.”
“왜 원망을 해요?”
“요즘 사람들은 옛날의 임금처럼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지만 늘 허기져 하고, 그 욕심의 바닥은 구멍 난 항아리처럼 뻥 뚫려있어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 그래서 원망으로 가득하단다.”
“그럼 세상은 어떻게 해요?”
“세상은 늘 좋았다. 햇볕은 따듯했고, 공기는 맑았으며, 물은 부드러웠지.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 넉넉했고, 서로서로 조금만 힘을 합치면 부족한 게 없어. 그런데도 목말라해. 자기가 원하는 걸 가지지 못하면 이내 원망심을 내지. 그래서 내가 늘 일어서있는데도 누워있다고 불평을 하고 가는 거야.”

3.
애기 부처님이 엄마 부처님에게 안겨 칭얼칭얼 어리광을 부립니다.
“더 자고 싶어요. 엄마 품이 제일 좋아요. 아침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
“그런다고 아침이 오지 않는 게 아니에요. 자, 일어나세요. 끙차~.”
애기 부처님을 달래는 엄마 부처님의 얼굴에 사랑이 가득합니다. 부처님도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제발 좀 양말은 신고 다녀. 이 추운 날 맨발로 어딜 그리 싸돌아다니는지.”
“걱정 마세요. 알아서 한다니까요. 나도 다 컸다고요.”
노는데 정신이 팔려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 부처님을 바라보는 아빠 부처님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엄마의 따듯한 품이 있어, 아빠의 큰 울타리가 있기에,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의 천진한 장난기가 있어 집집마다 사는 부처님들은 행복합니다.
천년을 누워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부처님이 새해를 살아갈 행복의 비법을 알려줍니다.
“그래, 감사하는 마음만 꼭 품고 살면 어디나 다 부처가 사는 세상이지.”
그렇게 개벽세상이 매일매일 밝아옵니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