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하는 기술이
제일 근본

김영택 원로교무

취재. 장지해 편집장

40여 년에 걸쳐 몸에 밴 습관이 쉬이 사라질 리 없다. 퇴임한 지 7년째에 접어든 김영택 원로교무만 봐도 그렇다. 출가 후 대부분 교단의 경제와 재정 영역에서 근무해 온 그는, 오랜 습관에 따라 지금도 매일 아침마다 경제신문을 꼼꼼히 챙겨 읽는다. “경제 분야에 오래 있어서인지, 지금도 그 분야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는 그에게는 한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살아온 노하우가 깊게 배어있다. 재무부 주사부터 시작해 교정원 재정부원장까지, 그야말로 교단의 재산과 경제의 역사를 꿰뚫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 사이 모신 교정원장만 해도 일곱 분이라고 하니,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 것이다.
부지런히 총부 살림과 관리를 해왔던 습관 역시 여전히 발휘된다. 퇴임 후 원로원에 들어오며 ‘1일 1선(善)을 실천하자.’고 다짐했던 그는, 일이 보이면 손을 보태거나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총부 차밭 관리나 나무 전지, 원로원 텃밭 가꾸기 등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뿐인가. 원불교 사진동호회 1세대이기도 한 김 원로교무는 여전히 사진을 즐겨 찍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산신령 같은 넉넉한 미소는 아마, 꾸준히 주변을 둘러보고 살아온 습관과 여전히 풍부한 문화적 감성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른다. 김 원로교무가 직접 찻잎을 따서 만들었다는 발효차 한 잔에, 그의 일생 이야기가 함께 담겨 흐른다.

● 퇴임 후에도 건강하게 지내시네요. “사람 마음이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잖아요. 그러면 몸이 게을러지고 기운도 더
 가라앉아요. 오히려 가벼운 운동, 가벼운 일거리가 기운을 충전하는 방법이 되죠. 그래서 지금도 바깥에 나가서 전지를 하든지, 텃밭을 가꾸면서 몸을 계속 움직이려고 해요.”

김 원로교무가 특별히 유념하는 것은 하루 네 번(좌선 후, 아침·점심·저녁 식후) 걷기 운동이다.  하루에 1만 2~3천 보를 걷는 것만으로도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을 얻는 것.

● 안 그래도 넉넉하지 않던 교단 경제가, 코로나19로 인해 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교단 경제 걱정이 정말 많이 돼요. 각 현장도 그렇겠지만, 총부 살림을 해봤기 때문에 총부가 요즘 정말 힘들 거라는 건 안 봐도 눈에 훤하죠. 지금의 위기를 견뎌내려면, 총부가 먼저 긴축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감내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그래야 현장에서도 힘든 상황을 견뎌낼 수 있어요.”

교단 재정문제와 관련해, 그는 “교단 경제를 보다 전문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전문 경제팀이 구성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금리 시대, 투자 흐름의 변화 등 여러 경제 동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연구하면서 경제 마인드를 바꿔갈 필요가 있다는 것. 총부 살림에 대한 걱정은 여전히 그의 화두다.

● 총부 안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셨는데요, 과거와 현재의 총부 환경이 많이 달라졌죠?
“과거에는 그래도 가족적인 분위기와 공동체라는 의식이 상당히 크게 있었죠. 세월이 변했다 하더라도 변치 않아야 할 것이 동지간의 정(情), 끈끈한 동지애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보면 요즘, 가끔씩 아쉬울 때가 있어요. 개개인들이 가진 뛰어난 역량과 실력이 응집력을 통해 더 발휘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전무출신을 직장인처럼 생각하면 안 돼요.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일이 되어야죠.”

● 총부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실 총부도 참 어렵고 고생을 많이 해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총부에 살면 뭔가를 크게 누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세상의 흐름 자체가 상하관계에서 수평관계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위와 중앙에 무조건 따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일단 중앙을 향해서는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시선보다 먼저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언젠간 내가 저 자리에서 저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역지사지가 되잖아요. 하나로 뭉치는 힘, 일심합력, 그게 우리 교단의 큰 자산이에요.”

이어 들려주는 이야기 한 토막. 예비교무 시절, 방학을 맞이해 부산교당(당시 경남지부)에 인
사를 갔을 때다. 큰 절로 인사를 하려는 그를 두고 당시 항타원 이경순 종사(당시 교감)는 교당 식구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러더니 “총부는 우리 마음의 고향이고, 사람의 심장 같은 곳이다. 우리의 마음과 머리는 늘 소태산 대종사님과 정산 종사님 그리고 종법사님이 계시는 총부로 향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인사를 올려라.”라며, 절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닌가. 예비교무임에도 총부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큰 인사를 받은 그날, 그는 ‘총부를 향하는 마음’을 깊이 새겼다.

● 한 길을 오롯이 걸어오신 남다른 보람이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나는 이 일(세무, 회계, 부동산 등 경제 관련 행정)을 안 하려고 출가 했어요. 경남 고성군청과 부산진 동부군청 지적과에서 딱 10년을 근무하고 사표를 낼 때 ‘정법회상 만난 기회에 성불 한 번 해보자.’ 하는 서원뿐이었거든요. 교화 준비를 정말 많이 했는데, 처음부터 총부 법인사무국으로 발령이 났으니 얼마나 가기 싫었겠어요. 버티다가 보름 늦게 부임해서 맡겨진 일을 보니까 출가 전에 했던 그 일인 거예요. 그러니 수월하긴 했죠. 1년이 지나니까 그제야 ‘전무출신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교단에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3년여에 걸쳐 그는 교산 일체조사를 진행했다. 재산대장에 빠진 교산을 찾기 위해 군청에 출근하듯 드나들며 토지대장과 등기를 샅샅이 열람한 것. 당시의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 이렇다. ‘불법연구회’로 등록되어 있는 재산. ‘박중빈’ 또는 송도성 선진의 일본식 이름인 ‘일원도정’이나 속명 ‘송도열’ 등과 같이 선진들의 개인 명의로 되어있는 재산 등. 동시에 교단이 미처 관리하지 못하는 동안 부동산특별조치법에 의해 넘어간 교산도 찾아왔다. 잃어버린 교산(망실교산)을 찾는 작업을 하면서 ‘교단에 전문인이 필요한 이유’를 절실히 느꼈다는 그다.
또 원광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기 위해 학교법인 명의로 귀속되었던 재산을 다시 원불교로 환원하는 일도 해야만 했다. 가능성 여부를 놓고 우려도 있었지만 당시 그에게는 신념이 있었다.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하는 일이라면 내가 메겠다. 개인적 욕심으로 하는 일이 아니고, 교단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기에 나는 떳떳하다. 반드시 잘 될 것이다.’

● 전무출신들의 사기를 어떻게 높여갈 수 있을까요?
“경제적인 부분에서 생각할 때, 이제는 전무출신 용금을 최저임금제에 맞춰야 하는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래야 ‘크게 잘 살진 않아도 기본 생활은 보장할 수 있으니 교역자로서 긍지를 가지고 보람 있는 일을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나지 않을까요? 우리는 현재 ‘현역 땐 적게 주고 노후를 보장해주겠다.’고 해요. 지금도 불가능한데, 수명이 더 길어지는 상황에서 가능할까요? 현역 때 최저임금을 맞춰주고 노후는 각자 해결하게 하면, 빠듯하더라도 그 안에서 계획하며 살 수 있어요. 앞으로 들어올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래야 희망이 보일 것 같아요.”

● 혹 한 분야에서만 살아온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딱 3년밖에 해보지 못한 현장 교화(대신교당)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있죠. 하지만 살아오면서는 주로 ‘한우물만 파자. 전문인이 되어서,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평생 한 분야라도 교단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자기 잣대로 이리 저리 재면서 이익을 위해 옮겨 다니는 사람 치고 잘 된 경우가 없더라고요. 주어진 것에서 은혜를 느끼면 늘 만족스러운 삶이 돼요. 어느 정도 비울 줄도 알아야죠.”

●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나눠주세요.
“어릴 때부터 정산 종사님 법문 중에 ‘인화하는 기술이 제일 근본 되는 기술이다. 사람 잘 화하는 기술은 모든 기술을 총섭하나니, 인화하는 기술이 없으면 모든 기술이 다 잘 활용되지 못한다.’는 말씀을 새기며 살아왔어요. 그러다 언젠가 대산 종사께서 세상 살아가는 비결을 뭐라고 생각하냐 물으시기에 ‘인화술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그 말이 맞지만, 화합한다고 해서 무조건 한통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화이부동(和而不同) 해야 한다.’고 해주셨죠. 그 말씀까지 듣고 나서 화합에 대한 표준이 완벽히 섰어요.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 잘 지내요. 상대의 마음 날씨와 내 마음 날씨를 살피면서 때로는 조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농담도 건네면서요. 화이부동하면 누구와도 마음 상할 일이 없어요.”

● 도(道)가 뭘까요?
“열린 마음, 깨어있는 마음이 곧 도예요. 까닭 없이 세월과 현실에 끌려 다니는 건 죽은 삶이지요. 깨어있는 의식 그 자체가 도이지, 다른데 있지 않아요. 현실 속 진리를 깨닫고 까닭 있게 살면 진리의 도를 ‘부리며’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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