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여 명 아들을 위한
삼시 세끼

귀공자들의 학교 급식소

취재. 이현경 기자

7월의 한가로운 오전.
익산 원광고등학교 정문을 한 발짝 넘어서자 왼쪽 강당에서 남학생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오고, 바로 앞에는 호랑이 동상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어른들에겐 학창 시절 추억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급식소 유리문을 열자 분위기는 반전된다.
“여긴 전쟁터예요. 전쟁터!” 코로나19로 인해 좌석마다 가림막을 친 350석의 급식소. 그 가장 안쪽에 자리한 조리실에서는 점심을 향한 땀나는 전투가 펼쳐진다. 조리원(조리장 박혜경) 10명이 구역별로 나눠 1,000인분의 음식을 조리하고, 임남수 영양사(대전교당)와 최은지 영양실무사가 조리현황을 실시간으로 체크 중이다.

수요일인 오늘은 ‘차슈덮밥, 얼큰한 콩나물국, 호박잎 쌈, 얼갈이배추 겉절이, 총각김치, 핫도그&케첩, 사과 주스’로 일품요리를 선보일 예정. 이름만으로도 군침이 먼저 도는 메뉴에는 손길과 정성이 많이 필요하다.
일반작업구역(전처리실)에서는 조리원 두 명이 초록 물결 속에서 세척한 배춧잎을 큰 채반에 담아 물기를 탁탁 털어내고, 청결작업구역(조리실)에서는 덮밥에 올릴 돼지고기와 계란프라이 및 다양한 재료들이 먹음직스러운 색과 열기를 뽐낸다. 어느 조리원은 큰 나무 주걱을 들고 서서 덮밥 소스를 만드는 중인데, 금세 다른 한곳에 조리원들과 영양사가 모여든다.
“맛이 어떤가요?” 세 명의 조리원이 갓 무쳐낸 얼갈이배추 겉절이를 임 영양사가 검식한다. 조심스레 맛을 보는 임 영양사에게서 웃음이 나오면, 깨를 솔솔솔 뿌려서 음식을 통에 담아 배식대로 옮긴다. 비었던 배식대가 하나둘 푸짐해지면 어느덧 12시. 조리원들과 이들이 만든 음식들은 늘 그렇듯 학생들을 먼저 기다린다.

한편 급식소 밖에는 4교시를 끝낸 학생들이 발열 체크를 마치고 줄을 섰다. 그중 맨 앞에 선 한 학생은 마치 달리기 출발 신호를 기다리듯 바닥에 손을 짚고 한쪽 무릎을 꿇더니, 급식소에 들어가자마자 손발 소독을 하고, 바닥에 붙은 노란 테이프 간격에 따라 거리 두기를 의젓하게 실천한다.
배식대를 향해 두 갈래 줄로 나뉜 학생들은 큰 목소리로 “더 주세요~.” “많이 주세요~.” “고맙습니다.”라며 마주치는 조리원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 해맑은 모습은 흰 조리모와 흰 마스크에 가려진 조리원들의 얼굴에 눈웃음을 짓게 한다. 양손 바쁘게 음식을 턱턱 얹어주던 손길이 한 번 더 정답게 식판 위로 향한다.

“모두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일해요~.” 박혜경 조리장은 “가정에서는 딸만 있는 엄마이지만, 이곳에서는 900여 명이 넘는 아들이 있는 엄마로 변신한다.”며 아들 키우는 재미에 일이 더욱 즐겁다고 말한다. 일명 삼식(三食) 학교로서 하루 세 번 학생들 얼굴을 매일 마주하고, 어버이날에는 감사 인사와 꽃, 어깨 안마까지 선물 받으니, 오히려 조리원이 학생들을 “아들~.”이라고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러울 정도다.
1·2·3학년 전체 학생들에게 배식을 마치면 1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하기야 매일 점심밥을 만드는 양이 쌀 120kg 분량이니, 그만큼 오늘도 학생들은 더 성장한 셈. 어느 학생이 조리원에게 “학교에 오면 더 많이 먹게 돼요. 오늘 진짜 짱이에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자 이들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실 학교의 모든 교직원들과 이경서 교무는 학생과의 이러한 일상을 애타게 바라왔다. 코로나19로 개학이 미뤄질 때, 특히 급식소 운영을 비롯한 학교 전체 살림을 담당하는 한애경 행정실장(어양교당)은 코로나19에 대비한 안전한 교정 만들기에 힘썼고, 이는 현재 진행형으로 꾸준하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배테랑 면모를 보이며 교내 대형 사업에서부터 급식소의 식자재까지 섬세한 손길로 교내 곳곳에 교육의 바탕을 든든히 한다. “학생들이 입학해서 졸업하면 마치 내 자식을 길러낸 것처럼 큰 보람이 있죠. 몸과 마음이 건강한 귀공자를 길러낼 거예요.”

조리원들이 사랑의 온도로 조리한 음식을 학생들에게 내어주듯, 학생들을 향한 교직원들의 관심도 교정의 햇살처럼 교내 곳곳을 비춘다. 학생과 더불어 교직원도 인성노트(귀공자노트)를 작성하며 마음공부를 한다. 학교 안의 모두가 함께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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