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8가지 과오’ 저지르고 있지 않나

장자의 5계로 해결… 그것이 바로 삶의 선순환 구조 가지는 유무념 공부법

글. 박정원  월간<산>  편집장·전 조선일보 기자

입춘도 지났고, 얼마 안 있어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봄을 맞으러 깨어나는 경칩(驚蟄)이다. 새해를 엊그제 맞이한 거 같은데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나고 있다. 세월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뭔가를 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인생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때로는 ‘아휴,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나만 그렇게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시 생각해본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미래를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설계하기 위해서 인생을 살피는데, 지나온 세월 속에 후회스런 일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기분이 안 좋아진다. ‘그때 왜 내가 그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컴퓨터처럼 포맷해서 후회스런 세월을 없앨 수만 있다면 정말 깡그리 지우고 싶은 순간들이 한두 장면이 아니다. 이생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내생을 기약한다. 내생을 기약하려면 매사에 덕을 쌓고 감사생활을 해야 한다. 책을 읽다가 마침 좋은 문구를 접했다.

장자(莊子)의 ‘사람이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8가지 과오’에 관한 내용이다. 첫째가 자기 할 일이 아닌데 덤비는 주착(做錯)이다. 둘째, 상대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의견을 말하는 망령(妄靈)이다. 셋째,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말하는 아첨(阿諂)이다. 넷째, 시비를 가리지 않고 마구 말을 하는 푼수(分數)다. 다섯째, 남의 단점을 말하기 좋아하는 참소(讒訴)다. 여섯째, 타인의 관계를 갈라놓는 이간(離間)질이다. 일곱째, 나쁜 짓을 칭찬하여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간특(奸慝)이다. 여덟째,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비위를 맞춰 상대방의 속셈을 뽑아보는 음흉(陰凶)이다. 장자는 이 여덟 가지를 살아가면서 유념하라고 교훈을 남겼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장자의 어떤 말이라도 허투루 넘길 수 없지만 60세를 바라보는 지금, 이 여덟 가지가 더욱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내가 평소에 저지른 부분이 없는지 돌아볼 기회도 가져본다. 그럴수록 과거의 잘못된 행동과 지금까지 고치지 못한 행동들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다. 다시 반복된다. 악순환이다. 선업으로, 선행으로, 선순환으로 바꿔야 하는데 악순환 되는 기분이다. ‘아, 역시 중생이긴 중생이구나.’ 싶다. 하긴 옛날엔 이런 생각조차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장자의 8가지 교훈은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인간사 만고불변의 진리 같다. 흔히 우리가 나이든 분들한테 ‘주책이다.’라는 말을 뒤돌아서서 자주 하는데, 그 주책은 8가지 교훈을 두루 다 아우르는 내용이다. 일단 주책부터 부리지 말아야겠고, 주착과 망령, 아첨과 푼수, 참소와 이간질, 간특과 음흉을 유무념으로 두고 생활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장자는 8가지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5계를 세우라고 가르친다. 생계(生計), 신계(身計), 가계(家計), 노계(老計), 사계(死計)가 그것이다. 생계는 내 일생을 어떤 모습으로 만드느냐에 관한 것이고, 신계는 이 몸을 어떻게 처신하느냐의 계획이며, 가계는 가족과 집안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계획이다. 노계는 노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관한 계획이고, 사계는 어떤 모습으로 죽을 것인가의 설계에 관한 부분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전부 원불교 경전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다. 이를 원불교식으로 하자면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바탕으로 진행 4조(신·분·의·성)를 활용하면서 사연 4조(불신·탐욕·나·우)를 제거하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평소 유무념 공부만 확실히 해도 5계는 자연스레 세워지고 8가지 과오를 방지할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원불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지금까지 뭘 했나.’ 하고 후회하는 내용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번엔 선순환으로 돌려보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8가지 과오를 확실히 유무념에 두고 5계를 세워 실천해보자고 긍정적으로 판단한다.
원망과 불평은 기쁨을 잃고, 사랑은 기쁨을 얻고, 자비는 천상천하를 얻는다. 간사와 아첨은 진심을 잃고, 신의는 이웃을 얻는다. 용서는 평안을 얻고, 인내는 지혜를 얻는다. 겸손은 의로운 스승을 얻는다는 글귀가 눈에 쏙 들어온다.

나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기분이 나빠지는 악순환을 계속할 것인지, 나쁜 행동은 진정한 참회로 다시 반복되지 않고 선순환 될 수 있도록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의 마음에 달렸다. 굳이 일체유심조라는 문구를 되뇌지 않더라도, 마음작용은 이미 나의 뇌 작용보다 훨씬 넓은 (우주)세계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의 잘못된 과거를 보며 기분이 나쁠 게 아니라 미래의 변화된 긍정적 모습과 이생의 전체 모습, 그리고 내생까지 그리며 무한한 자성의 세계를 관조하면서 인생의 5계를 세우면 나의 여생이 조금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생각하니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생각하다 스멀스멀 나빠진 기분이 한결 상쾌해진다. 현재까지 나의 인생을 만든 주범은 나의 과거의 행동이고, 미래의 나를 만들 주범도 결국 나의 미래의 행동이다.

<채근담>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늙어서 나는 병은 이 모두가 젊었을 때 불러온 것이며, 쇠한 뒤의 재앙도 모두 성시(盛時)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가장 성할 때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군자가 아니더라도 성주괴공의 원리를 실천하면 된다. 영원한 것은 없다. 법문 새기며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좋은 관계를 만들면서 선업을 지으면 영생이 선순환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결국은 마음공부다. 굳이 종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선업을 쌓고 명상을 통한 마음공부를 하면 훨씬 인생의 확장성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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