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시간

어린아이가 친구 관계로 힘들어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글. 박성근

어린이 법회 시작 10분 전. 어김없이 상현(가명)이는 법당문을 열고 들어와 나에게 공손하게 합장 인사를 했다. 그러고선 잰걸음으로 컴퓨터로 향한다. 경쟁상대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최상의 타이밍이었다. 나는 가만히 상현이를 지켜봤고, 상현이는 직감적으로 내가 어떻게 할지 알았을 터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상현아~.” 하고 넌지시 부르자 태연하게 불단으로 몸을 틀었다. ‘전 처음부터 이렇게 하려고 했어요.’라는 듯, 상현이는 시치미를 뚝 떼며 법신불 일원상을 응시하며 향을 피우고 심고를 올리고 사배를 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컴퓨터로 향했다. 코로나19의 영향은 돈암교당도 비껴가지 못했다. 상현이는 오늘 어린이 법회에 출석한 처음이자 마지막 어린이였다. 상현이는 주인 없는 빈 방석들을 보면서 “교무님~ 오늘 저 혼자 법회 보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오늘은 상현이 혼자 법회를 봐야 하는데, 형 누나들 없이도 법회 잘 볼 수 있지?”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럼 싱글 플레이네요! 와~ 기대된다.” 하면서 강한 자신감과 의욕을 보였다. 덧붙여 말하길 “교무님! 저 잘할 수 있습니다~ 이젠 선배잖아요!”라며 유독 선배를 강조했다.

상현이는 혼자라서 그런지 평상시보다 큰 목소리로 일원상 서원문과 독경을 따라 했다. 또한 평소의 상현이는 감사 일기를 쓸 때마다 2개 이상을 넘기지 못했는데, 오늘은 4개씩이나 적어 놓았다. 그중에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다. ‘1년 동안 버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무슨 내용일까 하고 상현이에게 자세하게 물어보았다. “상현아 여기 보니까 ‘1년 동안 버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게 무슨 의미일까? 교무님이 잘 이해가 안 가는데 혹시 말해줄 수 있겠어?” 그러자 상현이는 금세 표정이 시무룩해지더니, 담담하게 학교에서 반 아이들과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아픔을 털어놓았다. 비록 힘들었지만 참고 잘 버텼다는 내용이었다.

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린아이가 친구 관계로 힘들어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상현이는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새로운 학년이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제는 그때와 다른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라고 했다. “부디 올해에는 상현이가 친구들과 좋은 관계로 지내길 교무님이 기도할게.” 하고 상현이의 마음을 토닥여줬다.

법회를 마치고 상현이에게 오늘 소감을 물어보았다. “혼자 법회 봤는데 상현이 기분이 어땠어? 안 힘들었어?” 그러자 상현이가 말했다. “교무님! 혼자 법회 봤는데, 편안하기도 하고, 개운하기도 하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 것 같아요.” 죽비를 치고 법회를 마치자 상현이는 “마음공부 잘합시다!”를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까지 들었던 상현이의 목소리 중 가장 크고, 자신감 넘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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