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大醫), 세상을
구하는 의사
윤권하 원광대학교병원장

취재. 장지해 편집장

그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금오공고 졸업 후 직업군인으로 살았던 이력이나, 제대 후 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했다가 27세에 다시 의대로 진학할 때도 그랬다. 그뿐인가. 영상의학이 전공인 그는 의사가 되어서도 늘 새로운 의료 장비와 기술을 개발하는 굵직한 역할을 해왔다. 그에게 도전이란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해결’이라는데…. 영상의학 분야에 있어 국내 선구자로 손꼽히는 윤권하(법명 세종) 원광대학교병원장의 이야기다.
스스로를 ‘의사이자 개발자’라고 소개하는 윤 병원장. 그런 그의 꿈은 단순히 병원 하나를 잘 운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병원이 그 지역과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열어가고, 나아가 세상에 의료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
격동의 80년대 초, 험한 사회 속에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구하고 싶은 꿈을 꿨던 윤 병원장. 그의 고민을 들은 스승(경영학과 교수)의 “의대를 가면 네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조언을 따라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그가 생각하는 의사는 세 종류다. 소의(小醫)는 병만 치료하는 의사이고, 명의(名醫)는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이며, 대의(大醫)는 사회를 치료하는 의사라는 것. 의사로서 그의 초심은 ‘세상을 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원광대학교병원의 설립목적인 ‘제생의세(濟生醫世)’와도 꼭 들어맞는다.


● 원광대학교병원이 올해 개원 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40주년을 맞이해서 그동안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길게 백 년을 내다보는 비전을 마련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40주년 행사는 축소 진행했지만, 행사 여부와 관계없이 올 1월에 출범한 미래발전위원회를 계속 가동하면서 개원 40주년이라는 이 시기에 우리 병원의 역할을 정립하고, 미래발전을 준비하고 있죠. 상급종합병원이자 권역을 책임지는 의료기관으로서 교육·연구·진료라는 세 가지 미션이 우리 병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책임입니다. 우리 기관이 전북 지역을 이끌어가는 기관으로서 해낼 일들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원광대학교병원 미래발전위원회는 올 1월, 미래 의료 환경 변화를 대비하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주요 가치들과 어젠다 발굴을 목적으로 출범했다. 특징이라면 구성원 모두를 3040 젊은 세대로 꾸렸다는 것. 이는 후배 세대들이 미래의 주인으로서 역할해주길 바라는 윤 병원장의 마음이 담긴 것이기도 하다.

● 전라북도에 위치한 상급종합병원으로서,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클 텐데요. “우리 지역에서 가장 고급두뇌와 인력이 집적화되어 있는 곳이 어디일까를 생각해보면, 원광대학교병원과 원광대학교에 주어진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아요. 우리가 가진 이 폭넓은 의료인프라를 활용해서 익산지역을 행복하게 만들어보자는 것이 ‘의료행복도시 익산’이라는 슬로건입니다. 의료행복도시가 만들어지는 배경에는 인구감소, 도시 위축,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키워드가 있어요.”

그가 말하는 의료행복도시는, 단순히 의료적인 서비스를 만족함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의료를 통해 의료산업을 이끌고, 의료산업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게 함으로써 일자리와 소득 창출까지 이뤄내고자 하는 것. 지역의 의료를 책임지는 것을 넘어서서, 지역 전체가 행복한 도시가 되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깊게 고민하는 것이다.

● 코로나19 초기대응에서도 원광대학교병원이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병원 구성원들에게 늘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강조하는데, 그런 것들이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 것 같아요. 물론 코로나19는 현재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있지요. 특히 코로나19 확산이 아주 초기였던 2월에 전국 8번 확진자에 대한 대처가 꽤 화제가 되었는데, 이재훈 감염내과 교수가 빠른 판단으로 격리조치를 한 덕분에 병원에도 지역사회에도 큰 타격이 없었죠.”

또 원광대학교병원은 대구·경북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에 보건복지부, 전라북도와 빠른 협의를 거쳐 음압병실을 과감히 내놓고 환자를 이송받았다. ‘혹 우리 지역에서 환자가 발생하면 사용해야 하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타지역 환자 이송을 주저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대구에서 이송돼 치료를 받았던 한 고령의 환자는, 치료 후 지역으로 돌아가며 병원 관계자들의 정성과 노고에 감사하다며 성금을 기탁했다. ‘우리 병원’ 또는 ‘우리 지역’만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가져온 결과들이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한 장거리 이동 자제는, 원광대학교병원이 가진 의료실력을 다방면으로 더욱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 최근 국내 최초로 모바일(이동형) CT를 개발하셨는데요.
“영상의학은 ‘Seeing is believing.’, 즉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예술적·의학적 주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분야예요. 특히 병이라는 것은 신체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그 병의 모습을 직접 열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는 게 진단이나 치료에 크게 영향을 미치죠. 기존의 CT는 환자가 장비가 있는 곳으로 가야 검사가 가능했다면, 모바일 CT는 이동형이기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다가가서 검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영상의학은 의학 분야 중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흐름과 그 발전의 결이 밀접하게 닿아있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경우 환자가 검사를 위해 이동을 하면 해당 동선은 모두 차단되어야 하는데, 이동이 자유로운 모바일 CT는 환자와 병원 모두가 안전한 검사를 진행할 수 있게 했다. 환자가 장비가 있는 곳으로 가야 검사가 가능했던 기존의 방식을, 장비가 환자를 찾아오는 방식으로 역발상한 결과물인 것. 의료기술 역시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환자)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윤 병원장이다.

● 환자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시네요.
“병원이 좋다고 아무리 홍보해도, 실제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면 환자들은 절대 찾아오지 않아요. 이번에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많은 분들이 느꼈겠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세계화·도시화·개인화 됐던 문화들이 탈세계화·지방화·공공화로 옮겨갈 텐데, 그럴 때 우리 병원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봐요.”

윤 병원장이 환자들의 입장과 지역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작년 취임 후, 지역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자 현안이었던 장점마을 주민들의 건강검진을 무료로 진행한 것이다. 지역사회 건강에 책임이 있는 의료기관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역할을 고민한 결과였다는데…. 마을을 찾아가 필요한 것을 직접 물었다는 그. 주민들은 ‘내가 암에 걸렸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고 했고, 이에 단계적으로 주민들의 건강 검진을 실시했다. 벌써 몇 개월이 지난 일임에도 길에서 장점마을 주민들을 마주치면 감사인사를 몇 차례나 건네받는다. ‘원광대학교병원은 우리 지역과 함께한다.’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 영상의학 선구자로서, 여러 제안을 받기도 했을 텐데요.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갔다가 다시 우리 학교로 오게 됐는데, 그때 융산 송천은 전 총장님이 의학 기술 개발에 적극 지지를 해주셨어요. 누구를 만나보라고도 하고, 그 일을 꼭 해보라고도 하고…. 그때 제 나이가 마흔한 살이었는데, 정부에서 150억을 받아 결국 엑스선 현미경 개발에 성공했어요. 송 총장님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셨고, 끝까지 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셨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죠. 서로에 대한 믿음이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실제로 영상의학 기기 개발이나 연구 등과 관련해서 많은 제안을 받기도 했었는데, 그때마다 ‘신의(信義)를 지켜야 한다.’는 말씀 때문에 계속 우리 병원에 머물게 됐어요.(웃음) 대의와 신의 중에, 신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 의사로서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언제인가요?
“젊었을 때 가졌던 꿈이 하나하나 실현되는 것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보람이에요. 예를 들면 단순히 이동형 CT를 개발한 것보다, 그것이 환자들에게 정말 도움 되는 게 더 큰 보람이죠. 저는 의사이자 개발자예요. 직접 환자를 치료하면 그 한 명에게만 도움이 되지만, 뭔가를 개발하면 더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잖아요. 잘 키운 자녀와 제자들처럼 장비가 여러 곳에 보급되어 잘 사용되고 있으면 그게 큰 기쁨이죠.”

● 평소 어떤 마음표준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제 고향이 전라남도 강진인데, 그러다 보니 다산 정약용의 사상을 어릴 때부터 많이 접했어요. 다산의 정신을 요약하면 애민사상과 실사구시가 핵심이죠. 그 두 가지는 제 평소 철학과도 닿아있어요.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기본적인 철학을 가지되,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천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마음 먹은 게 있으면, 실천에 옮겨야지요.”

● 병원의 구성원들, 그리고 병원 이용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제 정년은 몇년 밖에 남지않았지만(웃음), 우리 대학과 병원은 앞으로 백 년 이백 년 천년을 가야할 곳이에요. 젊은 후배들이 주인정신을 가지고 준비해서 미래를 잘 이끌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곧 주인이다.’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병원은 의료의 질을 더욱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병원을 이용하는 분들께서는 ‘지역을 사랑하는 것이 건강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함께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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