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業)의 윤회는 과학이다
 
사은(四恩)공부, 이 중에도 특히 부모은(恩) 동포은(恩)을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저급한 마음공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글. 여도언

 해운대교당이 세입자 월세를 전액 감면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구청장이 교당을 직접 찾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부산시장은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부산일보와 울산매일을 비롯한 많은 언론사가 교당의 선행에 대한 보도를 쏟아냈다. ‘착한 임대인’ 캠페인이 나오기 열흘 전에 김경은 교무가 선제적 단행을 했으니 시중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선한 행위는 그 행위자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일회성 상찬으로 끝나는가, 아니면 그의 가슴에 안겨 수없는 생사를 왕래하며 선업으로 쌓여 기록되는가. 우리는 이 세상을 한번 구경하고 마는 것이 전부일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코끼리로, 사슴으로, 고래로, 사람으로 다양한 몸을 받아 이 세상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왔다가 갔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 허구일까. 사실이라면 과학적 근거를 댈 수 있고, 허구이면 한낱 우화적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 개의 분자는 최소 두 개의 원자로 구성된다. 서로 연결된 원자는 다양한 밀도의 소재들을 만들어낸다.” 초등학교 시절 자연과학 수업시간에 담임 선생님께 배웠던 이론이다. 원자는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으며 만져지지도 않는다. 원자는 그래서 모든 것을 관통할 수 있고, 성질이 다른 소재로도 변한다. 원자가 움직이는 물질이라는 설명은 이 미세한 물질 속에 변화의 생명이 있다는 말이다. 원자가 영원히 존재하니 이 생명 또한 무한한 것이다. 해운대백사장의 모래알이든 돼지의 앞다리 뼈이든 모든 물질은 나누고 또 나누면 원자로 분리된다. 원자가 결합하여 물질을 만들 때 전자(電子)가 빠르게 움직인다. 이 전자가 원자의 생명과 특질을 조절한다. 마음이 모든 형태의 생명체에게 영향을 끼쳐 행동을 유도해 특질을 드러내는 이치와 같다.

육체 안에 있는 영혼은 미세한 물질적 존재이다. 그렇다 해서 육체와 영혼이 하나의 연결고리에 걸린 운명공동체는 아니다. 전자가 원자 안에 있어도 이 둘은 늘 분리되어 동일한 하나가 아닌 것과 같다. 전자는 원자가 환경변화를 맞으면 다른 원자를 찾아 외부로 나온다. 카르마도 마찬가지다. 육체가 생명의 변화를 맞으면 카르마는 영혼과 함께 다른 육체를 찾아 다음 생을 시작한다. 카르마는 겨울 가면 봄 오듯, 사계절처럼 끝없이 윤회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윤회는 그래서 실체적 진실이다. 

조상 누군가의 몸을 빌려 태어난 이가 자식이다. 부모는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고 잘 키우려 애쓴다. 자식이 내 조상이기 때문이다. 내리사랑이 치사랑보다 더 애틋하고 찐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들 조상은 아프리카, 유럽 또는 몽골에서 태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은(四恩)공부, 이 중에도 특히 부모은(恩) 동포은(恩)을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저급한 마음공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다음 세상에 올 때 영혼은 반드시 카르마를 동반한다. 카르마는 누구에게도 넘길 수 없는 양도불가의 소재이다.
오늘의 존재는 지난 행동의 결과이다. 과거의 우리가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냈다. 업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모든 존재는 먼 과거로부터 현재로 또 까마득한 미래에까지 이어지는 시간 속의 한 존재일 뿐이다. 사람의 행위는 업으로 남는다. 악업은 오는 대로 받아 없애고, 선업은 힘들지만 쌓아 올려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의 내가 다음 생의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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