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 못한 약속

‘공연이 취소된다면 부담 없이 나도 취소하겠건만….’

글. 박성근

미안한 마음이 한동안 떠나질 않았다.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이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전 천수(가명)에게 안부를 물었다. ‘천수야~ 요즘 교당에서 얼굴 보기 힘들다. 요즘 무슨 일 있는 것임?’ 그러자 천수는 ‘아니에요ㅠㅠ 요즘 공연 준비 때문에 매주 토요일 합주 연습을 해서요. 이번 주에는 오전에 연습이 끝나니 꼭 찾아뵐게요.’라고 나와 약속을 했다.
약속한 대로 천수는 기타를 짊어지고 교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법회에 참석한 김에 천수는 공지 시간을 이용하여 직접 마이크를 잡고 공연을 홍보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나와 청년들은 벌써 공연장에 온 듯 들떴다. 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만든 인디밴드에 활동하고 있는 천수는 2월 말 홍대에서 있을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수가 군대를 전역하고 열심히 준비한 첫 공연이었기에 돈암교당 청년들도 함께 자리를 빛내고 싶었다.
그러나! 금방 진화될 것 같았던 코로나19는 계속해서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급증하게 했다. 정부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종교집회 활동 자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계속 당부했다. ‘어떡하지? 이런 상황이 올 줄을 몰랐는데…. 어떡하지?’ 천수의 공연은 취소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공연이 취소된다면 부담 없이 나도 취소하겠건만….’ 하는 얕은 생각마저 들었다. ‘혹시나 내가, 또는 청년들이 밀폐된 공연장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다면?’이라고 가정하니 아찔했다. ‘교당 건물이 폐쇄되면, 1층에 있는 어린이집도 폐쇄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몇 청년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어느 청년은 “교무님, 저 참석하기 힘들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사실 공연장을 가기가 두려워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청년은 회사로부터 주말 외출을 삼가라는 강력한 요청을 받은 터라 역시 참석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전국적으로 코로가19 공포가 확산된 마당에 많은 이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부담을 주는 약속이었다. 결국, 나는 천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청년들에게 법회를 휴회하는 공지와 함께 공연 참석 취소도 알렸다. 공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며칠이 지나 천수에게 연락을 했다. ‘천수야, 시간 나면 우리 밥이나 같이 먹을까? 나는 언제든지 상관없고, 네가 편한 시간에 보자!’ 그러자 답장이 왔다. ‘교무님! 그러면 다음 주 월요일 저녁에 뵐게요!’
나와 천수가 만나기로 한 당일, 주임교무님은 천수와의 저녁 약속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손수 저녁 식사를 마련해주시겠다는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모여 앉은 식탁에 메인 요리가 올라왔다. 올해 자취 생활을 시작한 천수는 정말 맛있게 음식을 즐겼다. 맛있게 먹고 있는 천수에게도 감사하고, 정성스럽게 저녁 식사를 준비해주신 주임교무님께도 감사했다. 이 모든 순간이 은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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