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
산뽕나무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철마 위에서 산뽕나무가 통일을
염원하며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글. 김광원

2018년 어느 가을날, 난 홀로 임진강을 향하여 여행을 떠났다. 아마 나는 그날 ‘이제야 빚을 갚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기차에 몸을 실었을 것이다.
삼 십여 년 전 젊은 나이에 임진강을 떠올리며 연시조 한 편을 썼는데, 그때 나는 임진강에 간 적이 없었다. 그 까닭으로 ‘처용굿’ 이라는 내 작품에는 켕기는 느낌이 따라다녔다. 이 시에는 ‘임진강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렸다. ‘처용’이 간절한 뜻으로 임진강에서 굿을 함으로써 ‘남북분단’이라는 ‘역귀’를 물러가게 하고 새 기운을 불러온다는 내용이다.
“탱자꽃이 터지는 밤 / 달무리도 흘러오고 / 풀어 내린 긴 머리 / 달빛 푸른 강 자락은 / 진양조 가락이어라 / 드러누운 한반도 // 시리도록 흘러가도 / 다시 오는 세월이라 / 설피설피 춤사위 / 익어지면 신명인가 / 깊은 골 차고 넘쳐라 / 발목을 적시는 밤 // 일어서는 소맷자락 / 돌고 도는 새벽이면 / 목이 잠겨 텅 빈 하늘 / 이미 떠난 목숨이여 / 문 저쪽 흘러서 온다 / 꿈만 같은 물소리.” - ‘처용굿’ 전문
당도해 보니 그곳은 이미 ‘임진각평화누리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고,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실향민들이 참배하는 ‘망배단’, 긴 철조망에 수없이 매달려 나부끼는 뜨거운 리본들, 국군 포로들이 걸어서 돌아온 ‘자유의 다리’, 끊어진 철교와 강 건너편이 한눈에 보이는 ‘독개다리’ 등을 돌아보며 나는 분단을 새로 실감하며 감회에 젖었다.
그날 마주한 것 중 큰 인상으로 다가오는 게 총탄 흔적을 수없이 간직하고 있는 증기기관차와 그 옆의 산뽕나무다. 산뽕나무는 멈춰선 증기기관차의 화통 위에서 자라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철마 위에서 산뽕나무가 통일을 염원하며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남북을 오가던 어떤 새가 날아와 오디똥을 싸고 갔으리라.
사진의 상세정보, ‘2018년 10월 18일 오후 1시 47분’ 빛나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꿈꾸듯이 서 있던 그 푸른 산뽕나무는 나에게 한 장의 사진으로 곱게 남았고, 이제 한 편의 시로 기념이 되었다. 졸작에 불과하나, 빚을 갚은 다소 편안한 심정으로 여기 공개한다.
“강물도 여릿여릿 흘러가는 / 여기에서는 / 쏟아지던 총알도, 파편도 / 증기기관차도 모두 / 흙먼지로 돌아가는가. / 성자를 닮은 어떤 새, / 기관차 화통 위에 날아와 / 달빛씨알 하나 묻어 놓고 / 떠나갔을까. / 바람 불고, 눈 내리고 / 긴 강물 다시 흐르고 / 아름드리 산뽕나무 서 있을 / 여기 평화공원에 / 너와 나의, 우리들의, / 신혼 같은 달밤은 찾아오리라.” - ‘임진각 산뽕나무’ 전문


장수
사진팀과의 추억


지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사진 한 장. 그 사진 속 모습에
온기를 더해준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

글. 송혜정

어수선해 보이는 이 사진은 주민조직화 사업으로 ‘장수사진팀’ 활동에 참여하던 모습이다. 주민조직화 사업은 복지관이 어떠한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그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관계를 살려서 이웃과 함께 어우러져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사진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주민들이 모여, 재능과 관계들을 활용해서 조금 더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고자 시작한 게 ‘어르신들 장수사진(영정사진) 찍어드리기’다. ‘죽음을 대비해 사진을 찍는다니, 조금은 씁쓸할 수도 있을 그 시간을 우리 이웃과 함께 편안한 추억으로 만들어 드릴 수는 없을까?’ ‘동네 잔칫집에 다녀온 듯 가벼운 기분으로 사진을 찍고 가실 수 있도록 해보자.’는 마음을 담은 일이다.
주민들은 역할을 나누어 지역의 어르신들을 살펴보고, 사진이 필요한 어르신을 찾아 초대했다. 어르신들과 함께 나눌 떡과 음료, 다과 등을 준비하고, 사진이 잘 나오도록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도 해드렸다.
초대를 받고 참석하신 어르신들은 어느새 서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시더니, 금세 친해져서 준비해온 옷을 바꿔 입어보며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진발’을 기대하며 웃으신다. 본인의 한복을 기꺼이 빌려주시는 어르신들의 마음이 참 곱다.
“이렇게 영정사진까지 찍어두면 내가 갑자기 가더라도 우리 아들이 당황하지는 않겠지 싶어서… 아들 때문에 찍어두는 거지 뭐….” 어르신들의 말을 들으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식들 걱정뿐이시다.
이렇게 사진 찍기를 마치면, 재능기부를 해주는 이웃의 포토샵 솜씨를 통해 더 전문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완성된 사진은 액자에 넣어, 참여했던 어르신들과 또 한 번의 잔치 같은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 직접 전해드린다. 점점 이웃과의 관계가 삭막해져 가는 요즘, 정말 멋진 일이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한 부부가 복지관에 찾아왔다.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영정사진이 없어 곤란하던 중, “복지관에서 사진을 찍고 왔다.”던 어머님의 말씀이 기억났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지만, 서둘러 사진을 찾아 전해드렸다.
며칠 후 그 부부는 과일박스를 들고 복지관에 인사를 오셔서 “덕분에 어머님의 장례식을 잘 마쳤다.”고 말씀하셨다.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한편으로 어르신과 장수사진팀 활동 주민들과 만남이 이루어졌던 것에 감사했다.
이생에서의 지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사진 한 장. 그 사진 속 모습에 온기를 더해준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북극곰

내 진심이 닿길 고대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오랜 시간
하이에나를 바라봤다.

글. 최홍민

지난 학기, 사진예술의 이해라는 수업을 받을 때 교수님께서 ‘북극곰’을 주제로 과제를 내주셨다. 하지만 2018년 에버랜드에 살던 북극곰 ‘통키’의 죽음을 끝으로, 국내에 더 이상 북극곰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북극곰의 자취라도 담고 싶었다. 대전에 위치한 동물원(오월드)에 한때 북극곰이 살았다고 하길래 카메라를 챙겨 오월드로 향했다.
어린 시절, 동물원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TV나 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동물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호랑이와 사자를 정말 좋아했다. 그러나 더 이상 동물원에 가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동물들은 자연에 있을 때 가장 빛나는 법이다.
오월드에서 북극곰(남극이)이 생전에 살
았던 곳의 위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남극이’가 살았던 곳은 이름과는 다르게 뙤약
볕 아래였다. 남극이가 여름마다 겪었을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늘로 떠난 지 2년째 되던 작년 가을, 남극이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그 자리에는 또 다른 흑곰 한 마리가 있
을 뿐이었다.
동물원에서 하루하루 자연을 그리워하
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동물들은 제2의 ‘남극
이’였다. 난 그들을 찍기 시작했다. 동물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런데 여러 동물들 중, 하이에나가 유독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관광객들은 하이에나를 향해 나쁜 동물이라고 소리쳤
다. 기가 죽은 하이에나의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다. 하이에나는 구석에서 나를 지켜
보고 있었다. 나는 하이에나와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싶었다. 내 진심이 닿길 고대
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오랜 시간 하이에나를 바라봤다.
1시간쯤 지났을까? 하이에나는 서서히 움직이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마치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는 10분 정도 내 앞을 서성였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하이에나의 구슬픈 눈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벽의 작은 틈에 주둥이를 내밀고 끙끙거리던 그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아마 ‘남극이’가 생전 말하고 싶던 메시지가, 하이에나가 나에게 전한 메시지와 같지 않았을까. 그것은 자연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군 생활을 하며 원불교 법회에서 사은(四恩)을 배웠다. 사은 중 동포은(同胞
恩)은 금수와 초목을 포함한다. 모든 사람은 동포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동물원은 인간의 자리타해(自利他害)가 아닐까
한다. 이기심을 경계하고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을 항상 가슴 깊이 새긴다면 모
든 생명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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