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다의 기도

글. 정인신

‘봄바람은 사(私)가 없이 평등하게 불어 주지마는 산 나무라야 그 기운을 받아 자라고, 성현들은 사가 없이 평등하게 법을 설하여 주지마는 신 있는 사람이라야 그 법을 오롯이 받아 갈 수 있나니라.’ <대종경> 신성품 11장 법문을 마음에 담고 봄바람 불어오는 ‘바람모퉁이 길’을 걸었습니다.
원기 3년(1918) 4월, 영광에서 화해까지 120리 길을 걸어오시어 정산 종사님을 만나셨던 소태산 대종사님. 스승님께서 지나오신 그 바람모퉁이 길에 봄이 열리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숨을 고르는 계절, 시절 인연 따라 꽃망울이 벙글고 나무들의 푸르른 숨결이 들리는 듯 합니다.
나에게도 봄바람은 부는가? 만남의 성지에 살며 나의 신성은 어떤가? 새삼 돌아보며 천천히 제우지비를 지나 정산 종사께서 머무셨던 집터를 지나 영주가 새겨진 기도비를 돌고 교당으로 내려옵니다.

‘내가 전라도를 가야 만날 사람을 만나고 큰 공부를 성취할 것이다.’라며 스승 찾아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발길을 옮겼던 정산 종사님, ‘이 자리를 채울 사람이 와야만 우리의 일이 성사 된다.’며 중앙자리를 비워두고 간절히 그 인연을 찾아야 했던 소태산 대종사님, 한 인간의 존재가 새 역사의 문을 여는데 얼마나 큰 의미가 있기에 그토록 찾고 기다렸을까! 두 스승님 만남의 과정은 아름다움을 넘어 선각자의 고뇌가 얼마나 컸던가를 생각하게 하는 4월입니다.
만남 100주년을 앞두고 시작한 1천일기도, 어느덧 꿈같이 흘러간 시간이지만 교도님과 날마다 올렸던 그 기도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소중한 정진이었습니다. 직장에 나가지 않는 어른님들을 위해 나는 날마다 간식을 준비하고 함께 감사일기를 쓰며 법문공부를 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이 무릎 가까이 앉아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함께 했던 날들…  끈끈한 정으로 법연의 소중함을 알게 했지요.

건넛마을에서 숨 가쁘게 걸어온 학타원님을 보며 교도회장님은 “핀둥이(풍뎅이) 맹키로 부지런도 헝게!”라며 감동의 미소를 보냅니다. 해가 긴 여름날엔 오전 8시에 기도를 하는데 아랫마을 현타원님은 낮에 한숨 쉬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8시가 되어 ‘아! 기도시간이다.’ 하고 벌떡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교당으로 왔지만 아무도 없었다는군요. “내가 미쳤지요. 때도 모르니 정신 나갔지라우.” 하지만 불편한 몸으로 기도시간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귀한 마음인가요.

김해운 할머니와 인연이 깊어 입교하게 된 아랫집 유타원님. 김해운 할머니는 정산 종사님을 극진히 모시며 앞으로 돌아올 세상에 대해 들은 내용을 늘 자랑스럽게 유타원님에게 전해주셨다지요. 그런데 어느 날은 ‘앞으로는 방 윗목에서 똥싸고 아랫목에서 밥 먹는다.’ 하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는군요. 그런데 지금은 현실이 된 거죠. 종교에 큰 관심이 없어 뺑돌거렸는데 어느 날 입교하겠다고 하니 김해운 님은 막걸리 한 병 사들고 내장까지 찾아오시어 그렇게 기뻐하셨다는 유타원입니다. 그 인연으로 일원가족을 만든 교도님입니다.

천일기도를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주었던 원타원님, 교무가 자리를 비울 때는 그 자리를 채워주고 기도방과 정산 종사 기도터를 청소해 주었던 신심 장한 교도님이죠. 묻고 대답하며 법력이 쌓인 교도님들은 기도회향을 하며 우리교당에 좋은 기운이 쌓인 것 같다고 하네요.
기도는 신앙의 기본이 되고 수행의 기초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기도를 통해 원력이 뭉치고 감응을 얻어 우리가 원하는 서원을 이루어갈 수 있으니까요. 정산 종사님의 간절한 기도가 큰 공부를 성취할 스승님을 만났듯이 말입니다.

기도도량에 살며 나는 교도님들께 백일기도를 권유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무더운 여름날도, 추운 겨울날도 날마다 교당에 와서 백일동안 적공하면서 어려웠던 일들이 풀리고 공부길이 잡혀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기도가 이어지는 목탁소리가 들립니다.
꽃바다(화해)에 살며 날마다 올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여기 꽃바다에서 올리는 기도를 통해 누구라도 아프고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고 미워하고 원망했던 마음이 감사와 사랑으로 변하여 삼세의 모든 업장이 녹아나고 청정심이 되기를 염원합니다. 여기, 꽃바다에서 올리는 기도를 통해 누구라도 정법에 대한 서원이 살아나고 우리 모두가 부처임을 확인할 수 있는 은혜롭고 행복한 삶이 되기를 염원합니다.’

지금 세상은 예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19로 인해 평범했던 일상이 사라져 아프고 불안하고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네요. 4월의 총선이 잘 마무리 되고 코로나19가 사라져서 꽃향기로 그윽한 아름다운 봄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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